미술계 소식
전시장 아닌 무대에 선 청년작가들…‘2025 아르코데이’ 파격 실험
2025.09.08
키아프리즈 기간, 아르코예술극장서 개최
청년 예술가 10인, 퍼포먼스~해프닝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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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데이 작가 홍은주 프레젠테이션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왜 꼭 그림은 벽에 걸려야 하지? 왜 미술은 무대에 서면 안 되는 거지?”
지난 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 전시장 대신 무대 위에 선 청년 예술가 10인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자신들의 작업을 움직임과 몸짓으로 풀어냈다.
국제적 아트페어인 프리즈·키아프와 ‘대한민국 미술축제’가 동시에 열린 이번 시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 산하 아르코미술관은 신진 청년예술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25 아르코데이'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 젊은 작가들은 회화·조각의 틀을 넘어 퍼포먼스 쇼케이스, 렉처 퍼포먼스, 스크리닝, 해프닝, 플래시몹 등으로 무대를 채우며 미술의 경계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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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데이 작가 장영해 프레젠테이션 *재판매 및 DB 금지 |
올해 프리즈 라이브에 참여했던 장영해는 전작 '3'의 후속편 '애프터 ‘3’를 무대화해 주목을 받았다. 오후 3시의 햇살처럼 쏟아지는 조명 아래, 골프공처럼 날아온 공이 벽에 부딪혀 레몬으로 터져 나오는 장면은 현실과 허구, 안전과 위협, 관객과 무대 사이의 경계를 교란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박아름빛은 '나쁜 것을 말해줄게'에서 AI 학습 뒤편의 노동과 윤리 문제를 드러내며 “인공지능의 그늘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무대에 올렸다.
사운드 아티스트 서민우는 40년 된 아르코예술극장 자체를 거대한 악기로 삼아, 기계장치의 움직임과 소음을 음악처럼 변주하는 '장면들'을 선보였다. 홍은주는 자신의 얼굴을 본뜬 3D 인형으로 전통 인형극 무대를 채웠고, 김상하는 물을 담은 OHP와 사진 투사로 무성영화 같은 환영을 불러냈다. 황예지는 '나는 사진하는 여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로 사진문화의 남성적 시선을 전복하는 제스처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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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데이 작가 원정백화점 프레젠테이션 *재판매 및 DB 금지 |
행사의 피날레는 원정백화점의 '세계의 많은 것들이 쌓여있다'가 장식했다. 무대 위 퍼포머들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카메라에 담기고, 이후 영상 작업 '나리빌 플리커'로 이어지며 ‘퍼포먼스와 기록의 경계’가 데자뷔처럼 교차하는 순간을 만들었다. 이어진 네트워킹 파티 '캐주얼한 네트-워커를 위한 캐주얼한 산책'은 관객과 작가가 함께 어울리며 예술과 일상을 잇는 새로운 형식을 모색했다.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예술의 몸이 살아 움직이는 장이었다. 캔버스를 넘어선 무대, 거래와 시장의 이면에서 울린 청년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오늘의 불안을 비추는 동시에 내일의 예술을 예감케 했다. 그날 밤 아르코예술극장에 모인 관객은, 전시가 아닌 무대 위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한국 미술의 미래를 미리 목격하는 꿈의 리허설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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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데이 작가 박정연 프레젠테이션 *재판매 및 DB 금지 |
'2025 아르코데이'의 키워드는 ‘긴 꼬리(The Long Tail)’였다. 상위 20%의 주류보다 오히려 80%의 비주류 다수가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롱테일 법칙’을 차용해, 한국 미술의 저변을 지탱하는 기초예술과 잠재력 있는 창작자들의 힘을 조명한 것이다. 미술시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는 지금, 아르코는 화려한 거래의 전면이 아닌 ‘긴 꼬리’의 힘에서 미래 예술의 지속성을 찾았다. 이번 기획에는 권태현 큐레이터가 협력 큐레이터로 참여해 새로운 시각을 보탰다.
현장을 찾은 테사 청 싱가포르예술위원회 시각예술 디렉터는 “청년 작가들이 극장 무대를 매개 삼아 실험적 시도를 보여준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며 “아르코가 저력 있는 청년 작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