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국제갤러리서 루이즈 부르주아…피빛 드로잉·은빛 강철에 묶인 연인 매혹

2025.09.02

국제갤러리 K3, 한옥서 개인전 10월 26일까지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2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개인전 'Rocking to Infinity'를 개최한다. 2025.09.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인간은 풀려야 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끝내 얽혀 있어야 하는 존재인가.'

피처럼 번진 붉은 손 드로잉이 사방을 둘러싼다. 잡으려는 듯, 밀어내려는 듯, 닿을 듯 말 듯한 손들이 공기를 가르며 뻗어 있다. 그 한가운데 은빛으로 뒤엉킨 조각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팔다리는 매듭처럼 얽혀 있고, 그 끝에서 네 개의 발이 내려온다. 발은 ‘둘’임을 드러내지만 전체는 하나로 묶여 있다. 부르주아의 세계는 결국 존재론적 매듭을 말한다. 사랑과 불안, 결속과 구속, 친밀과 고립이 동시에 얽힌 상태다.

국제갤러리에서 2일 개막한 루이즈 부르주아 개인전 'Rocking to Infinity'는 호암미술관 대규모 회고전의 압축판이다. 그러나 부르주아는 이 작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강렬하다.

전시 제목은 작가의 글에서 가져온 문구로, 아이를 품에 안아 달래는 어머니의 이미지가 지닌 안정감과 친밀함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일곱 번째 개인전으로,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어지는 특별한 관계를 보여준다.

이날 전시 설명에 나선 루이즈 부르주아 재단의 필립 라랏-스미스(Philip Larratt-Smith) 큐레이터는 “시간의 흐름을 강조하고, ‘두 사람(couple)’이라는 주제가 부르주아 작업에서 핵심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3 전시장에서는 직물 작업과 드로잉이 네 벽을 가득 둘러싸며 강한 몰입감을 만든다. 붉은 과슈로 두 손이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장면을 다양하게 변주한 연작이 대위법처럼 배치됐다. 위쪽의 손과 나선, 아래쪽의 텍스트와 신체 드로잉은 서로 다른 악보처럼 울린다.

라랏-스미스 큐레이터는 “부르주아가 예술가가 되기 전 수학을 공부했다”며 “나선은 심장의 박동 같기도 하고, 은하의 궤적 같기도 하다. 부르주아는 나선을 안으로 말리면 공포, 밖으로 퍼지면 자유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2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개인전 'Rocking to Infinity'를 개최한다. 2025.09.02.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2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개인전 'Rocking to Infinity'를 개최하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9.02. [email protected]


파리에서 태어나 평생 프랑스어를 사용했던 부르주아는 종종 한 문장 안에서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섞어 썼다. 언어처럼 그녀가 집착한 또 다른 상징은 붉은색이었다. 그는 붉은색을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액체, 출산과 상처의 기억”으로 여겼다. 그래서 드로잉과 조각, 글자 작업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붉음을 반복적으로 불러냈다.

붉은색은 이번 전시의 공통 언어다. ‘ROUGE’라는 글자 드로잉이 선언처럼 걸려 있고, 임신한 여인의 실루엣과 아이를 품은 나체 드로잉까지 모두 피처럼 번진 붉음으로 물들어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세 점의 주요 조각이 자리한다. 분홍 대리석으로 포개어진 손을 형상화한 'Untitled (No. 5)'(1998), 두 언덕이 나선형 무한대(∞) 형태를 이루는 'Fountain'(1999), 은빛 매듭 속에 남녀가 뒤엉킨 'The Couple'(2007–2009). 모두 관계와 시간, 불안을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갤러리는 2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3에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개인전 'Rocking to Infinity'를 개최하고 주요 작품은 선보이고 있다. 2025.09.02. [email protected]


associate_pic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Rouge〉(detail)
2008 Gouache on paper, suite of 10 45.7 x 61 cm, each sheet ©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VAGA at ARS, New York),/(SACK, Korea)
사진: Christopher Burke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한옥 공간에서는 드물게 공개되는 ‘커피 필터 드로잉’이 눈길을 끈다. 생활용품을 캔버스로 전환한 이 실험은 가사(domestic)와 여성의 삶을 은유하는 동시에 르네상스 ‘톤도(tondo)’ 회화를 연상시킨다. 1994년에 제작된 이후 단 한 차례만 공개됐던 이 드로잉은 부르주아 작업에서 보기 드문 원형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떠올렸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필립 라랏-스미스 큐레이터는 “성모와 아이를 주제로 한 톤도처럼, 부르주아의 원형 드로잉에는 모성과 회귀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며 “동시에 원형은 시계의 이미지와 겹쳐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번 전시는 나선–순환–영원의 구조 속에서 인간 존재를 매듭짓는다. 붉은색은 피와 생명, 욕망과 불안을 동시에 의미하며, 손과 신체는 관계의 결속을 드러낸다. 부르주아는 인간을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그러나 끝없이 되풀이되는 순환으로 그려냈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내면과 삶의 서사를 깊이 있게 마주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키아프리즈’ 기간에 서울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붉은색과 은빛 매듭의 심리적 우주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며, 여전히 존재론적 질문을 현재형으로 울려 퍼지게 한다.

전시는 오는 10월 26일까지. 관람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보기

"미술관이 이 정도는 해야지"…아트선재센터, SF 영화 세트장 전시 화제

프리즈·키아프서울 개막…아르코, 전국 시각·다원예술 프로젝트 소개

'프리즈 서울 2025' 개막…화이트 큐브, 트레이시 에민 청동 조각 주목

'프리즈 서울' 개막…'묘법' 박서보 색채, LG OLED로 부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