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배고픈 거 아니잖아 문이나 제대로 닫아"…정수영, 린넨 회화 '팬트리'
2025.05.28
삼청동 학고재서 첫 개인전
신작 '펜트리' 시리즈 등 30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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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정수영 개인전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는 초대받고 싶지만, 참석하고 싶진 않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 작가 정수영(38)은 익숙한 사물과 공간을 통해 사적인 감정의 결을 화면 위에 펼쳐 놓았다.
'I want to be invited, but I don't want to attend.'라는 제목처럼, 정수영의 회화는 사물들의 조용한 반란이다. 특히 신작 '팬트리(Pantry)' 시리즈는 감정을 사물에 수납하고, 리넨 화면 위에 침묵의 언어로 풀어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신작 30여 점이 공개됐다.
팬트리는 원래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수납하는 공간이지만, 작가는 이 은밀한 저장실을 개인의 욕망, 불안, 취향이 고스란히 축적되는 장소로 바라본다.
사물은 더 이상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자,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는 열쇠가 된다.
작가는 화면에 사람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발끝이 들어오거나, 거울에 비친 반신욕 중의 모습, 살짝 열린 수납장처럼, '존재의 흔적'이 은밀하게 침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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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2025, Acrylic on linen, 100x100cm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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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h it, 2024, Acrylic on linen, 90x85cm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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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drobe Optimist, 2025, Acrylic on linen, 100x120cm *재판매 및 DB 금지 |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찾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눈에 밟히는 사물이나 장면을 따라가는 방식에 가깝다. 그렇게 대상을 좇다 보면 ‘왜 이것이 눈에 들어왔을까?’라는 질문이 남고, 그 질문이 그림의 출발점이 된다.”(화가 정수영)
특히 캔버스 대신 리넨을 사용하는 점도 특징적이다. 결이 살아있는 리넨은 비어 있는 듯하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 않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모순적 감각을 화면 위에 새긴다. 이러한 ‘비움의 미감’은 작품 전반에 일관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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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정수영 펜트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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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ry1 , 2025 , Acrylic on linen ,120x120cm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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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try12, 2025 , Acrylic on linen, 120x120cm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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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정수영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 말미의 설치 공간은 관람자가 마치 하나의 팬트리 안으로 들어선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일상의 먹거리, 물건들이 가득 쌓인 그림들. 그 끝을 마주하게 되는 마지막 작품은 단출한 문장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YOU’RE NOT HUNGRY / SHUT THE DAMN DOOR.'(배고픈 거 아니잖아. 문이나 제대로 닫아.)
냉장고 문에 붙은 듯한 이 문구는, 감정의 팬트리를 열어본 이들에게 전하는 정수영의 재치 있는 퇴장 멘트이자, 이 전시의 조용한 클로징 크레딧이다. 사물로 감정을 저장하고, 기억을 꺼내보는 이번 전시는 결국 그 문을 ‘언제 어떻게 다시 닫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남긴다.
이번 전시는 정수영에게 있어 회화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사물과 감정 사이의 거리를 조심스럽게 좁혀온 이번 작품들은, 정수영이 단단한 회화 언어를 가진 작가임을 분명히 각인시킨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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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영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
◆작가 정수영은?
1987년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대 회화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18년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플레이 스테이션'(2023, 아뜰리에 아키, 서울), 'Self on the Shelf'(2023, 매드독스 갤러리, 런던, 영국), '87년생 정수영'(2022, 도잉아트; 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원 오디너리데이'(2021, 노블레스 컬렉션, 서울), '파라미타'(2016, 갤러리도스,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주요 단체전으로 '하우스 오브 테이스트'(2024, 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아시아나우'(2022, 파리, 프랑스), '나와 나 사이 거리'(2022, 파워롱 아트 센터, 상하이, 중국), '뱅가드'(2022, 아뜰리에 아키,서울), '추상:리얼리티'(2018, 사치 갤러리, 런던, 영국) 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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