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다르게 보면, 세계가 달라진다”…예술가 31명의 시선 기술

2025.11.29

[신간]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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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알에이치코리아)책.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나오는 길, 문득 어떤 작품은 오래 기억되고 어떤 장면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예술가들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보고, 우리는 그들의 시선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윌 곰퍼츠의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BBC 미술 전문 기자였던 저자는 한 통의 메일에서 시작된 인생의 힌트를 따라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31가지 방식’을 탐구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모든 예술가는 보는 일의 전문가이며, 그들의 시선은 우리 삶의 방향을 재조정한다.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다”
책의 첫 장은 데이비드 호크니로 열린다.

호크니가 그린 나무가 보랏빛인 이유는 단순한 변주가 아니라, 빛과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본 결과다.

하나의 시점에 고정된 사진과 달리, 예술가는 ‘여러 시간의 층위가 겹치는 현실’을 포착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가는 사람과 장소, 사물에게 집요하게 질문한다.” 예술은 결국 질문하는 눈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고통을 보는 법: 칼로와 야요이의 방식
프리다 칼로는 시종일관 ‘고통을 보기 위한 예술’을 했다.

교통사고, 멕시코의 역사, 디에고 리베라와의 소용돌이 같은 사적인 상처들. 칼로는 그것을 도피하지 않고 붉은 색채와 상징의 언어로 직면했다.

구사마 야요이는 달랐다. 그는 공포와 불안이 점처럼 번지는 환각을 그대로 예술의 패턴으로 전환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물방울무늬는 그녀의 심리적 파동이자 치유의 리듬이다.

고통은 숨기지 않았을 때 비로소 예술적 언어가 된다. 두 사람은 그것을 증명해 보인다.

31명의 예술가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다루는 장면이다.

조각가 패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깨달았고, 이를 통해 ‘부재’가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는지 보여준다.

예술가의 시선은 물리적 장면보다 보이지 않는 틈, 결핍, 침묵을 더 정교하게 포착한다.

◆“잘 보고 싶다면, 장벽을 넘어야 한다”
책 후반부는 관계와 감정의 시선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니콜라 넬의 작업을 예로 들며 “방어막을 세우면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내면을 보려면 그 장벽을 우회하거나 뚫고 들어가야 한다.

‘보는 방식’이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관계와 감정의 기술, 그리고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인 것이다.

예술가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저자는 예술 작품을 감상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을 세계 읽기의 방식으로 끌어올린다.

해변에서 조약돌을 고르고 기억 속 작은 상흔을 포착하며 일상의 균열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예술가의 시선에 닿는다.

이 책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단순한 예술 해설책이 아니다. 예술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 자신의 시각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순간 세계는 다른 색으로 펼쳐진다.

“보는 방식을 바꾸는 순간, 삶은 놀랄 만큼 다채로워진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 오래 남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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