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AI로 기록한 오늘의 덧없음…이진준 '샴페인 슈퍼노바'

2025.08.26

존재의 궤적을 묻는 88개의 눈동자

하이브리드 콜라주 페인팅 연작 공개

BB&M에서 10월 18일까지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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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view, Champagne Supernova, BB&M, Seoul, 2025. Works by Jinjoon Lee.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샴페인처럼 터지는 이례적인 찬란한 폭발. 눈부심은 왜 언제나 사라짐을 예고하는가.”

미디어 아티스트 이진준(49)의 개인전 'Champagne Supernova'는 이 물음을 영상의 파동 위에 새긴다. 푸른 심연 위에서 터져 나오는 곡선과 색채는 마치 우주의 맥박처럼 일렁이다가, 곧 사라질 듯 떨린다. 황홀의 순간은 곧 소멸의 예고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서울 성북로 BB&M에서 열린 '샴페인 슈퍼노바' 전시는 가장 눈부신 찰나가 가장 빠른 소멸을 예비한다는 동시대 존재의 역설을 호출한다.

‘슈퍼노바’라는 이름은 한때 청춘의 황홀과 허무를 노래한 팝의 상징이자, 물리학이 발견한 초신성의 이름이었다. 문화와 과학, 기술과 은유가 겹쳐진 이 명명은, 이진준의 손에서 다시 존재론적 질문으로 되살아난다.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기억과 정보는 얼마나 유한하며 또 얼마나 확장 가능한가.”

그의 홍채 실험은 이 질문의 압축 파일이다. 88개의 홍채는 더 이상 개인을 특정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추출한 빛과 색의 패턴은 이제 생체 정보가 아닌 우주의 데이터, 순수한 빛의 흔적으로 환원된다. 홍채는 개인의 지문이 아니라 별의 궤적이 되고, 존재는 사라짐 속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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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emosyne No.2, 2023 – 2025. Artist-customized turntable and speaker, computer,  38 x 45.5 x 76.5 cm
Login Odyssey No.3, 2025. Acrylic paint on scanned collage on vinyl LP, 30 x 30 x 0.2 cm (49.8 x 49.8 x 4.2 cm 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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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in Odyssey No.1, 2025. Acrylic paint on scanned collage on vinyl LP, 30 x 30 x 0.2 cm (49.8 x 49.8 x 4.2 cm 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기억의 극장 'Memory Theatre'와 'Mnemosyne Theater'는 기억의 퇴적과 데이터의 회전을 통해 관객을 감싼다. 르네상스 철학자 줄리오 카밀로가 상정한 ‘기억의 극장’이 AI에 의해 재구성되는 순간,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경계는 무너진다. 끝없이 회전하는 데이터와 눈동자의 파노라마는 관객을 응시하며, 그 응시는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LP판 위에 입혀진 이미지는 소리로 변환되고, 화면 위에 겹쳐진 디지털 콜라주는 바니타스적 잔상으로 남는다. 모든 장치들이 반복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단 하나다.

“보는 것인가, 보이는 것인가.”

하이브리드 콜라주 페인팅 연작 'On Some Faraway Shore'는 이 질문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응답한다. AI가 텍스트로부터 생성한 시각 데이터를 회화적 제스처로 다시 재구성하면서, 인공적이면서도 생물학적인 풍경을 드러낸다. 산란한 색채와 파열된 선들이 기묘하게 낯선 풍경을 만들어내며, 소멸을 전제로 피어나는 기이한 아름다움, 현대적 바니타스를 호출한다.

오래전 화가들이 해골에 덧씌워진 꽃을 통해 죽음과 생명의 순환을 노래했듯, 이진준은 데이터와 AI로 오늘의 덧없음을 기록한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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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ome Faraway Shore No.6, 2025. Acrylic paint on scanned collage on canvas, 145 x 112.4 x 3 cm (147 x 115 x 4.5 cm fram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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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준 작가. BB&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디어아티스트 이진준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출발했지만, 미술로 전공을 전환해 서울대 조소과에서 학·석사를,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석사, 옥스퍼드대 러스킨 미술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에서 미술로, 다시 과학과 기술로 이어진 전환의 이력은 곧 그의 작품 세계가 서 있는 교차점을 잘 말해준다.

독일 카를스루에 미디어아트센터(ZKM) 헤르츠랩 초청 작가(2023), 미국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펠로우(2024) 등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부교수, 옥스퍼드대학 펠로우, 뉴욕대학교(NYU) 겸직교수로서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며, 영국 왕립예술학회(FRSA) 펠로우이자 왕립조각가협회(MRSS) 정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Bloomberg New Contemporaries 2021 최종 작가로 선정된 그는 'MMCA 옥상 프로젝트 2024'(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18 SeMA 신소장품'(서울시립미술관), ZKM 전시 및 레지던시(2023), 프라하 국립미술관, 불가리아 국립미술관, 주영한국문화원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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