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韓 현대미술, 한한령 넘다…박종규, 광동미술관 ‘외국인 생존 작가’ 첫 전시

2025.08.05

한한령 뚫고 한국 작가 최초 국가미술관 진출

3년 준비 끝…5일 ‘비트의 유령들’ 개인전 개막

디지털 노이즈 회화…기술과 감각의 시각 실험

박종규, 中 전시 이어 이집트·사우디 중동으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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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중국 광저우 광동미술관에서 생존작가 외국인 최초로 개인전을 연 박종규 작가가 '비트의 유령들'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저우=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박종규는 동양 철학의 허무와 서양 정보 논리의 이진 체계를 시각 언어로 통합해온 작가입니다.”

중국 광저우 광동미술관 왕샤오창(王绍强) 관장은 박 작가를 ‘시각철학의 실천자’라 칭하며, 이번 전시를 “기술과 신체, 기억과 시간,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시대에, 사라진 듯 보이지만 여전히 현존하는 존재들을 다시 감각하는 자리”라고 평가했다.

5일 광동미술관에서 개막한 박종규(59)의 개인전 '비트의 유령들'은 단순한 해외 초대전이 아니다.

광동미술관 개관 이래, 외국인 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바이에탄관 2층 전관을 단독 사용하는 대형 기획전이자, 한한령 이후 사실상 멈춰 있던 한국 현대미술의 중국 진출에 다시 불을 지핀 신호탄이다.

이날 뉴시스와 단독으로 만난 왕샤오창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단순한 작가 초청을 넘어선, 동아시아 예술 네트워크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광동미술관이 한국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동아시아 예술가 간의 교류를 본격화하려는 첫 번째 시도입니다. 앞으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이 지역 예술계가 더 깊이 연결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감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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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광동미술관에서 개막한 박종규 개인전 비트의 유령들전을 펼친 왕샤오창(王绍强) 관장이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997년 개관한 광동미술관(Guangdong Museum of Art)은 중국 제3의 도시 광저우를 대표하는 공공 미술기관이다. 본관·바이에탄관·동산관 등 총 세 개의 전시관을 운영하며, 전체 건축 면적은 약 70,000㎡로,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 기준 약 20,000㎡)의 3배를 웃돈다.

박종규의 전시가 열린 바이에탄관은 2021년 새롭게 개관한 신관으로, 중국 내 최신 미술관 건축 양식과 운영 시스템을 반영한 전시 플랫폼이다.

박 작가는 2층의 두개 공간  400여 평을 가득 채워 디지털 노이즈 기반의 회화와 미디어 설치작업을 대규모로 선보인다.

 300호 크기의 대형 회화 20여 점, 영상 설치 40여 점을 포함해, 시트지와 물감을 겹겹이 쌓아 제작한 캔버스, LED 전광판, 몰입형 영상 룸 등이 관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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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5일 광동미술관에서 박종규 작가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동미술관은 지금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예요. 그런 공간에서, 살아 있는 한국 작가로서 최초로 개인전을 연다는 건 정말 큰 영광이죠. 중국에서 한국 작가가 국가급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 자체가 아주 드문 일이니까요.”
전시장에서 만난 박종규 작가는 "제 인생에 있어 뜻깊은 전시이고 한국 작가로서도 매우 뜻깊은 전시”라며 감개무량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한국도 중국을 좀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고, 중국도 한국을 그렇게 크게 보지 않는 면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3년에 걸쳐 세 차례의 심사를 통과해 이 전시를 열 수 있었다는 건, 제 인생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박 작가의 이 말은 단순한 해외 전시를 넘어 양국 문화 교류의 실질적인 가능성과 예술 외교의 장을 열었다는 자부심으로 읽힌다.

전시장 전체는 온통 하얀색으로 꾸며져, 마치 가상세계에 발을 디딘 듯한 비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종규 작가는 “현실에서 살짝 떠 있는 느낌이었으면 했다”며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공간이라기보다는, 마치 비인간적인 정제된 세계를 상상하며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제 작업은 굉장히 기계적이고, 빈틈 없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관객이 걸을 때 살짝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어요. 현실 공간이 아니라 가상공간 같고, 사람이 만든 것 같지 않은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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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광동미술관 박종규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의도는 조명과 바닥 연출에도 직접 반영됐다.

“실제로 처음엔 조도를 더 밝게 설정했어요. 하지만 미술관 쪽에서 어린이 관객들의 시각 적응 문제로 인해 현재 조도는 당초 계획보다 절반 정도인 45% 수준으로 조정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흰 바닥 위를 걸을 때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걷게 되는 경험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은, 이번 전시가 '감각을 리셋하는 시각적 플랫폼’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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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광동미술관에서 개막한 박종규 개인전 영상 설치 작품 전경. 2025.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광동미술관 개관 이래, 외국인 생존 작가로서는 처음 열리는 개인전. 폭우가 쏟아지던 평일 낮임에도 전시장은 북적였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 연인, 노년의 관객들까지 자유롭게 오가며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전시제 ‘비트의 유령들’이라는 낯선 개념과 달리, 중국 관객들은 이 ‘비가시적 회화’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았다.

“중국은 QR코드에 사는 나라예요. 그래서 이 전시는 본능적으로 이해된다"는 한 관람객의 말처럼 디지털 감각에 훈련된 도시인들은 박종규의 유령들을 ‘감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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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미술관 박종규 개인전 전시 전경. 사진= 박종규 스튜디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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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광동미술관 박종규 개인전 비트의 유령들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을 찾은 한 20대 남성 관람객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마치 잡음 같은 노이즈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게 시각 언어로 전환되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끊어진 선들, 파열된 단편들이 결국 하나의 시간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험이었어요.”

그는 작품을 “손끝으로 느껴지는 전자파장 같았다”고 덧붙이며, “소리의 파동 같기도 하고,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 같았어요. 그냥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시간과 감각을 체험하는 전시같다"고 했다.

다른 20대 여성 관람객은 “이런 현대적인 방식의 한국 작가 전시는 처음"이라며 "확실히 독특하고 개념적인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미술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감각으로 연결해주는 최고의 수단이라는 걸 느꼈다"는 그녀는 이번 전시가 갖는 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미술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사고 방식을 경험하는 거예요. 박종규 작가의 작품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디지털 언어로 어떻게 전환되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줬어요. 이런 문화교류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화가이자 평론가인 왕샤오창 관장은 이번 전시 서문을 직접 쓰고 박종규를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를 넘나드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라고 소개하며, 특히 ‘비트 스트림(bitstream)’ 개념을 박 작가 작업의 핵심 키워드로 짚었다.

그는 "데이터 전송의 리듬을 뜻하는 이 용어는 인간 지각과 존재의 기본 단위로서의 상징으로,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신호, 심장 박동, 의식의 흐름 등 다층적 생명의 리듬을 아우른다"며 이렇게 분석했다. “박종규는 '팬텀(phantom)', 즉 기술사회에서 점차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작동하는 존재 상태를 조명한다. 디지털 파편으로 구성된 이미지 안에서 관객은 ‘조용히 뛰는 심장’을 볼 수 있고, 지연된 시간의 간극에서는 ‘사라진 몸이 남긴 움직임의 잔향’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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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박종규 작가가 광동미술관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2025.08.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전시는 3년 전부터 준비돼 왔다.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서구 바깥의 감각 회로를 확장해온 박종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전시가 무산된 뒤 중국과의 협력에 집중했다.
“정권 교체로 문화 정책이 유연해지면서 정말 운 좋게 이 시점에 열 수 있었어요.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민간 외교겠죠.”
한한령 이후, 중국 국립미술관의 벽을 넘은 첫 번째 한국 작가가 된 박종규는 자신의 회화가 국경을 넘어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지를 묵직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우리는 두 개의 세상을 살아야 해요. 현실과 가상.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들. 그것이 제가 말하는 유령입니다.”

중국 첫 진출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박종규는 올해 하반기, 이집트·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으로 활동 무대를 더욱 확장할 예정이다.

한편 박종규 작가는 계명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했다. 대구시립미술관과 후쿠오카시립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뉴욕 아모리쇼 포커스 섹션 선정, 러시아 모스크바국립아카데미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미술관, 멕시코 국립미술관, 쿠바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제3회 하인두예술상을 수상했다.

광동미술관 박종규 개인전은 오는 10월 8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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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5일 광동미술관 박종규 개인전 전시 입구.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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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광동미술관 박종규 비트의 유령들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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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박종규 작가가 생존작가 외국인으로 최초로 개인전을 여는 광동미술관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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