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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한국 첫 소개한 1세대 화랑주…정기용 원화랑 대표 별세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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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정기용 대표와 백남준 작가. 사진=강운구 사진작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한국 1세대 화랑주 정기용 원화랑 대표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故) 정기용 대표는 1978년 서울 인사동에 원화랑을 설립한 이후 반세기 가까이 국내외 현대미술 작가들을 소개하며, 한국 화랑계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고인은 1932년 인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대학 시절부터 고미술 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화랑 활동에 뛰어들어, 신사실파(김환기·유영국·이중섭·장욱진 등) 회고전을 기획하며 국내 현대미술사의 장을 열었다.

특히 백남준의 국내 첫 전시를 후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백남준의 대표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소개하고 1984년 2월 원화랑에서 전시를 열며, 뉴욕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미술계에서는 정 대표를 “작가보다 작가를 더 잘 아는 화랑인”으로 기억한다. 그는 생전에 “작가가 70세까지 생존할 수 있어야 미술계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지론을 지켜왔다.

정현 조각가는 “원화랑은 1980년대 명동화랑, 동산방화랑과 함께 한국의 3대 화랑으로 꼽히던 곳”이라며 “정 대표는 단순한 상업 화랑인이 아니라, 작가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안목을 지닌 조력자였다”고 회고했다.

정 대표는 국내외를 막론한 감식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조각가 김종영을 재조명하고, 미국의 임충섭·존 배, 독일의 노은님 등 해외 작가들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프랑스 68혁명 이후 아방가르드 미술운동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urface)’의 작가 클로드 비알라, 피에르 뷔라글리오의 주요 작품을 조기에 수집했고, 이후 퐁피두 미술관이 회고전을 위해 해당 작품을 대여해 간 일화도 전해진다.

정현 작가는 “프랑스에서도 정 대표는 최고의 안목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았다”며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어떤 것이 좋은지 정확히 짚어내는 분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작품은 한국 미술의 미래를 위한 밀알이 될 만한 것만 신중히 골랐다’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고 전했다.

또한 “최근까지 건강하셨지만 5년 전 넘어지며 골반을 다치셨다. 올 초에는 보조기 없이도 잘 걷는 모습이었고, 3주 전에도 건강하게 뵈었는데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며 “신화 같은 일화를 남긴 분”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평소 나서기를 꺼리는 성품으로도 잘 알려졌다. 불교 유물을 동국대 박물관에 기증하고도 이름 붙은 전시실이나 감사패를 모두 고사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종영, 백남준, 노은님, 요제프 보이스 등 주요 작가의 작품 14점을 조용히 기증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6일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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