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1000억의 수평과 수직’… 션 스컬리 “대구미술관, 최고 전시다”
2025.06.10
현대 추상회화의 거장…국내 최초 대규모 회고전
작가의 작품세계 아우르는 대표작 70여 점 소개
상설전 대구 근대 회화의 흐름'전도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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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대구미술관 1층에 선보인 션 스컬리 조각 'DAEGU STACK'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대구=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는 반복한다. 그 안에 답이 있다.”(션 스컬리Sean Scully)
세계적인 추상화 거장 션 스컬리의 회고전이 대구미술관(관장 노중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수준의 작품 규모와 밀도다. 션 스컬리가 소장한 작품 700여 점 중 대구미술관이 95%를 선별해 구성했다. 회화, 드로잉, 조각, 디지털 드로잉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대표 연작인 ‘빛의 벽(Wall of Light)’과 ‘랜드라인(Landline)’을 중심으로, 1960년대의 초기 구상회화, 1970년대 정밀한 격자 구조의 ‘슈퍼그리드(Supergrid)’, 1980년대 인셋(Inset) 기법의 대형 회화까지 스컬리 예술의 전 과정을 아우른다. 수채화, 연필 드로잉, 디지털 프린트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도 함께 선보여, 그의 세계를 다층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9일 대구미술관에서 만난 전시기획팀 이정희 팀장은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의 추정 가치는 무려 1000억 원대에 달한다"고 했다.
‘수평과 수직’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그의 캔버스는 가로와 세로의 굵고 두꺼운 줄무늬로 채워져 있다. 대형회화로 구성된 전시는 반복되는 형태지만 지루하지 않다. 미묘한 색채의 조화, 겹겹이 칠해진 붓 자국이 만들어내는 질감과 구조가 몰입시킨다.
이정희 팀장은 “여든을 앞둔 그는 여전히 붓을 들지만, 지금 그의 중심은 열여덟 살 아들 오이신”이라고 전했다. 스컬리는 “나는 여전히 작업을 하지만, 지금 내 우주는 아이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 사랑은 그의 그림 속에서 가장 사적이고 따뜻한 언어로, 알록달록 부드럽게 발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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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이정희 전시팀장이 션 스컬리가 아들과 부인과 함께 하는 그린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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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대구미술관 이정희 전시팀장이 션 스컬리의 수평 수직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06.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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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션 스컬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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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션 스컬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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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대구미술관 션 스컬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대구미술관 야외에 처음 설치된 철제 조각 'DAEGU STACK'이다. 작가 특유의 수평 구조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이 작품은 거대한 철판을 층층이 쌓아올려 랜드라인 시리즈의 회화적 언어를 공간 속에 실현한 조형물이다. 어미홀에 설치된 알루미늄 조각 '38'도 눈길을 끈다.
한편 전시장 한 켠에는 시인 켈리 그로비에(Kelly Grovier)와 협업한 디지털 드로잉 연작도 소개된다. 멸종 위기 조류를 소재로 한 60여 점의 작업에는 시가 병치되어 있어 회화와 언어가 교차하는 감성적 실험이 펼쳐진다. "짹짹거림이 없네. 그저 공허만이 있을 뿐." 새들의 이름 아래 적힌 문장은 마치 사라지는 세계의 속삭임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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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 대구미술관, 2025년 국제전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 전시 (사진=대구미술관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194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션 스컬리는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한 독자적인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여러 겹으로 덧칠함으로써 얻어지는 풍부하면서도 미묘한 색채감과 강한 공간감은 그의 회화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꼽힌다.
1989년과 1993년 두 차례 터너상 후보에 올랐다. 현재 그의 작품은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의 수와 크기에서 압도적이다. 한 작가의 인생을 한 자리에서 조망하는 감동 뒤에는, 수평과 수직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리듬에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너무 많고 너무 커서, 그림의 목소리가 잠시 멀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션 스컬리는 지난 3월 개막식에서 “이보다 더 멋진 전시는 없을 것”, “더없이 행복한 전시”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아일랜드인이자 영국인, 미국인이며 독일에서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 소개하며, “추상회화를 통해 맥락을 낯설게 만들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매력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이어 “재즈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의 음악처럼, 내 작업도 반복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생성한다”고 덧붙였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가 “현대 추상회화의 거장 션 스컬리의 예술세계를 국내에 밀도 있게 소개하는 드문 기회”라고 강조했다. 앞선 ‘와엘 샤키’ 전시에 이어, 잇단 해외 작가 초청 전시는 대구를 ‘문화의 도시’로 발돋움하게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전시는 8월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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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대구 근대 회화의 흐름’ 전시 입구.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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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 회화의 흐름’ 전시. *재판매 및 DB 금지 |
한편, 션 스컬리 전시와 함께 대구미술관에서는 한국 근대미술의 흐름을 짚는 상설전 ‘대구 근대 회화의 흐름’도 열리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한국전쟁을 거쳐 전후 신세대에 이르기까지, 대구 지역 미술사의 궤적을 60여 점의 소장품과 아카이브 자료로 조망하는 전시다.
회화 작품뿐 아니라 당대 예술가들의 사진, 서신, 초기 출판물 등 아카이브 자료도 함께 공개돼, 창작의 환경과 사상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작가들의 자필 수기와 해방 직후 미술계 동향을 기록한 문서는, 교과서에 담기지 않은 미술사적 증언으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전시는 2028년 2월 29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