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빛을 통과하는 몸…존재를 조각한 '안소니 맥콜'[박현주 아트클럽]
2025.04.29
푸투라서울서 아시아 첫 개인전
빛과 안개, 공간의 시네마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 공개
50여 년 작업 세계 주요 작품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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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푸투라 서울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Between You and I(당신과 나 사이)'를 선보이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것.
빛과 시간의 경계에서, 안소니 맥콜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미지는 물리적 경험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예술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
미디어아트의 살아 있는 전설,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78)이 서울 푸투라서울(Futura Seoul)에서 아시아 최초 개인전 'Anthony McCall: Works 1972–2020'을 연다. 전시는 5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열린다.
28일 서울 삼청동 푸투라서울에서 직접 작품 설명에 나선 맥콜은 진지했다. 빛, 소리, 시간, 공간을 조각 하는 그는 "관객이 직접 내 작품 속을 걷고 통과하며 몰입형 체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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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28일 미국에서 내한한 작가 안소니 맥콜이 푸투라 서울에 전시한 1972년~2013년 제작한 '트래블링 웨이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백색소음으로 구성된 고밀도의 음파는 파도 소리로 극대화 되어 공간적 감각을 자극한다. 2025.04.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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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푸투라 서울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전시장은 웅장한 파도 소리로 열린다. 5개의 바리톤 반구형 스피커가 전시장 바닥을 따라 12m 길이로 설치됐다. 단순한 기계 장치 같은 설치물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점차 속도와 볼륨이 증가한다. 천천히 시작해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공간을 채워 몸의 감각을 깨운다. 맥콜은 "순수한 소리 파동이 눈에 보일 정도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이 파동은 청각을 통해 별 것 없는 공간을 새롭게 감각하게 만든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지하 공간에서 펼쳐진다.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시리즈의 최신작 'Skylight'(2020)가 압도적이다. 빛, 안개, 소리, 시간으로만 이루어진 설치 작품이다. 2층에서 내려다보며 만나는 3개의 삼각 빛 기둥은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미래로 가는 비행선' 착륙장 같기도 하다.
안개 속에 투사 된 것 같은 빛은 3차원 공간 속 입체적 조각을 만들어 신비한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2020년 소형 버전으로 제작됐던 이 작품은 이번 푸투라 전시에서 처음 실물 크기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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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푸투라 서울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Between You and I(당신과 나 사이)'를 선보이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쏟아지는 삼각형의 '빛의 커튼'을 가르며 걸어 들어가는 순간, 안다. 몸으로 시간을 가르고, 공간을 조각하는 행위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빛은 투명한 유리처럼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허공을 휘젓는 손끝에서 부서지는 듯한 감각. 그 허망한 순간, 소리의 울림이 온 몸에 들어선다.
'빛'과 '어둠' 사이의 긴장감은 존재론적 울림을 던진다. 폭풍우 소리,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는 마치 원시 동굴 속에 있는 듯 묘한 불안감과 떨림을 자극한다. 빛 속의 '나'라는 존재와 빛 밖의 '너', 타자의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하며 인간 관계의 상호작용을 시각적으로 눈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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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예술은 물리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안소니 맥콜은 지난 50여 년 동안 시네마, 설치, 조각, 드로잉,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확장 시네마(Expanded Cinema)’라는 혁신적 예술 영역을 구축했다.
빛과 시간을 주요 재료로 삼고,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구조를 제시했다.
1970년대 초, 뉴욕의 어두운 다락방. 맥콜은 필름 영사기를 이용해 연기 속에 빛을 쏘아 공기 중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어냈다. 대표작 'Line Describing a Cone'(1973)에서는, 빛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자라나고, 관객이 그 궤적을 따라 움직이며 작품을 완성한다.
그러나 초기 작업은 기술적 제약에 부딪혔다. 전시장 공기가 지나치게 깨끗해, 원했던 빛의 조각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던 것.
맥콜은 1970년대 후반부터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예술 작업을 잠시 중단했다. 1990년대 후반, 디지털 프로젝터와 헤이즈 기계의 개발은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2001년 휘트니 미술관 전시를 시작으로, 휘트니 비엔날레, 퐁피두센터, 서펜타인 갤러리, 구겐하임 빌바오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그의 작업은 재조명됐다.
푸투라 서울 전시에서는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 외에도, 초기 실험 영화, 드로잉, 아이디어 스케치, 아카이브 자료가 함께 소개된다.
“맥콜은 관람객을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켜 이미지와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한 작가다. ‘인터랙티브’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진정한 상호작용의 예술을 완성한 작가는 영상, 설치, 드로잉, 조각, 시네마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예술은 때로는 기술보다 앞선다는 걸 증명한 작가다."(구다회 푸투라 서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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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푸투라 서울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Between You and I(당신과 나 사이)'를 선보이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맥콜은 빛이라는 비물질을 조형의 재료로 삼게 된 계기는 "빛으로 조각 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닌 영화 때문 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영화에 매료됐던 그는 "'영화의 근본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영화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반하는 과정에서 나온 작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970년대 당시 미니멀 개념 미술이 대세였는데 형태의 단순화에 고민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영화는 영화인데, 관객이 스크린 쪽으로 등지고 감상하는 영화를 착안했다. 스크린 쪽으로 돌리는 빛을 쓸 수밖에 없었다. 빛을 쓰다 보니 투사가 되고 입체'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가 탄생했다."
생계 문제로 그래픽 회사를 운영하며 20년 간 쉬는 과정에서 시대의 변화도 느꼈다. '소리'가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해방을 시켜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매체의 순수성을 위해서 소리를 배제하고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그는 "이제 그 시대는 갔다. 이전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작업을 해왔다면 지금은 서사를 드러나게 해주는데 소리가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맥콜은 "이번 푸투라 서울 전시에 1972년 작품 3개를 선보였는데, 과거의 그때 시절로 돌아가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었다"면서 "다시 소리를 입힌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새 작품을 하는데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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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푸투라 서울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품 'Between You and I(당신과 나 사이)'를 선보이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푸투라 서울의 수직 구조(천장고 10.8m)를 살린 전시 공간은 빛과 시간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현재 영국 테이트 모던에서도 전시를 진행 중인 맥콜은 "테이트모던 전시가 원 뿔을 그리는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의 수평적인 연대기적 확장이라면, 푸투라는 수직적 작업과 퍼포먼스를 기록한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결이 다른 전시"라고 소개했다. "푸투라는 수직 구조의 작품을 전시하기 아주 좋은 공간"이라며 "푸투라가 전시 제안을 해왔을 때, 기회를 꽉 잡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바로 응했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시대의 속도에 맞서, 맥콜은 "느림의 미학"을 지향한다. 이는 "철학적 사유보다는 조각이라는 매체 때문"이라며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 천천히 탐색하고 관조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늘날 세상은 많은 미디어가 여러 채널을 동시에 소비해, 어떤 영화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솔리드 라이트'는 조각이라는 형태로 구상 됐다. 만약 내 작품이 빠르게 움직인다면, 관람자는 그 자리에 정지해서 시청하는 모드가 된다. 나는 관람자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주위를 움직이면서 천천히 탐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구성을 천천히 흘러가도록 했는데, 너무 느려서 정지 되어 있는 작품으로 오해를 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간다. 느리게 구성했기 때문에 관람자가 더 깊이 수용하게 되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관조하게 되는, 관람객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천천히 했을 때 우리의 인지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느림의 미학을 구현하는 작품을 한다."(안소니 맥콜)
오늘날 설치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몰입형 작품'이, 이미 50년 전 맥콜에 의해 구현됐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빛과 시간과 소리, 먼지까지 입체적인 체험을 선사 하는 이 전시는, 21세기를 앞서 도달한 예술가 안소니 맥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예술은 이미지가 아닌 경험 자체로 존재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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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푸투라 서울은 28일 서울 종로구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 작가 개인전 '1972-2020 작품'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4.28. [email protected] |
◆'빛의 조각가' 안소니 맥콜은?
1946년 영국 세인트 폴스 크레이(St Paul’s Cray)에서 태어나 뉴욕 맨하탄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1973년 'Line Describing a Cone'(원뿔을 그리는 선) 으로 시작된 '고체 빛 (solid-light)' 설치 작품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맥콜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2004), 런던 테이트 브리튼 (2004),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2007),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2007-8), 밀라노 앵거 비코카 (2009),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2009), 포르투갈 포르투 세랄베스 (2011),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현대미술관 (2012), 스위스 생갈렌 미술관–로크레미제 (2013), 암스테르담 아이 필름 뮤지엄 (2014), 스위스 루가노 예술문화센터 (2015), 뉴욕 파이오니어 웍스 (2018), 헵워스 웨이크필드 (2018),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 (2019), 그리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2024) 등에서도 전시되었다.
2008년 존 사이먼 구겐하임 기념 재단 펠로우십, 2014년 The Berlin Prize, American Academy in Berlin 펠로우십, 2015년 Arts and Letters Award in Art,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 2024년 내셔널 아카데미 오브 디자인 회원으로 선출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