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그림은 존재의 명상록’…시인화가 박항률, 13년 만의 개인전

2025.10.28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스페이스 97서 전시

‘달빛과 별빛이 속삭이는 곳’ 11월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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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률, 저 너머에, 2024, Acrylic on canvas, 130 x 194cm 51.2 x 76.4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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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은 화려한 치장을 벗겨내고 삶의 원형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시인이자 화가인 박항률(75)이 13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스페이스 97에서 열리는 ‘달빛과 별빛이 속삭이는 곳’은 신작을 포함해 회화, 브론즈 조각, 목탄 드로잉 등 30여 점을 선보인다. 한층 완숙해진 회화의 시적 서정미로, ‘존재의 명상록’ 같은 전시다.

전시 제목인 ‘달빛과 별빛이 속삭이는 곳’은 2020년 발표한 시집 ‘별들의 놀이터’에 실린 시의 일부에서 따온 것으로, 박항률 특유의 서정성과 시적 정취가 돋보인다.

박항률의 화폭에는 언제나 고요가 흐른다. 화면 속 인물들은 침묵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나비와 새, 나무와 꽃은 그 명상의 호흡이 된다.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것이다. 작품 속 인물들은 다른 사람을 모델로 그리는 것 같지만 실은 ‘나’를 그리는 것이다. 내 존재에 대한 다양성을 드러내고 비쳐본다고 할 수 있다. 내 속에는 소년도 있고 소녀도 존재한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전작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다. 이전보다 맑고 선명해진 색채가 화면을 채운다.

주요 작품 ‘새벽’(2025)은 화면 측면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고, 꽃이 핀 나뭇가지, 새와 나비 모두 한 방향을 향한다. 소녀는 무언가를 기다리거나 바라보는 듯하지만, 표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그저 고요히 침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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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률, 새벽, 2025 , Acrylic on canvas  45.5 x 37.9cm  17.9 x 14.9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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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률, 기다림, 2025, Acrylic on canvas 90.9 x 72.7cm 35.7 x 28.6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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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률에게 그림은 치유이자 회복, 그리고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언어다.

그는 오랜 시간 투병 중인 아내를 곁에서 돌보며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사랑의 본질을 깊이 응시했다. 아내와의 사별 이후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으나, 상실의 아픔을 견디며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그에게 작업은 슬픔을 감추는 수단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언어이자,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아내가 생전에 “시집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한 소망을 기억한 그는, 그녀를 향한 애정과 그리움을 담아 시집 ‘별들의 놀이터’(2020)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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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률, 낮 꿈, 2010, Acrylic on canvas, 182 x 227cm, 71.7 x 89.4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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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경북 김천 출생인 박항률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초기 작품들은 미니멀한 형태와 색채의 기하학적 추상 및 오브제가 주를 이뤘으나, 1991년 첫 시집 ‘비공간의 삶’ 이후 구상으로 화풍이 변모했다.

추상에서 구상으로의 대담한 변화는 그의 문학적 감수성에서 비롯됐다. 화가이자 시인인 그는 1970년대 초반부터 시 쓰기와 회화 작업을 병행해왔으며, 절제된 언어로 여백을 만들고 상상의 공간을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그 둘은 닮아 있다.

가나아트센터는 “박항률의 작업은 시(詩)적이다. 그는 시적 언어와 회화적 형상성을 결합하는 데 탁월하며, 단순한 구도와 부드러운 색감, 서정적인 터치에서 평화로움과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소개했다.

박항률은 말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연과 같이 호흡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 바로 그것이 명상의 화두다. 나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전시는 11월 16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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