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퀴어성과 회화 사이…몽크리프, 첫 아시아 개인전
2025.05.20
가나아트한남서 'Moment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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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몽크리프 Distort.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은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 단지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존재했지만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일까.
캐나다 출신의 작가 앤드류 몽크리프(38)의 회화는 보이지 않는 감정과 존재의 결을 탐색한다.
그의 화면은 구체와 추상, 정신과 육체, 현실과 비현실이 맞물리는 지각의 접점이자, 감각의 균열 속에서 형성되는 ‘현존(presence)’의 실험실이다. 그는 감정, 기억, 시간이라는 비가시적 층위에 주목하며, 신체 일부만을 절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파편화된 감각과 불완전한 존재를 은유한다.
서울 용산구 가나아트한남에서 열리고 있는 'Moment Point'는 몽크리프가 아시아에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퀴어 정체성, 남성성, 신체 이상화 등 사회적 담론에서 출발해, 그의 신작 25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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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do No.2, 2024, Oil Paint on Linen, 200 x 180 cm *재판매 및 DB 금지 |
가나아트한남에 따르면, 이번 전시 제목 ‘Moment Point’는 제인 로버츠의 '세스의 말'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바로 그 ‘지금 이 순간’에서 창조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시간은 직선처럼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과 감정, 기억이 겹쳐지는 하나의 ‘지점’이자 ‘교차점’으로 이해된다.
전시작 중 하나인 'Bardo'(2024)는 이러한 사유를 응축해 보여준다. ‘바르도’는 티베트 불교에서 죽음과 다음 생 사이, 존재가 전환을 겪는 과도기를 의미한다.
격렬한 붓질, 뒤틀린 제스처, 조각난 신체 형상은 자아 해체의 심리적 진폭을 드러내며, 회화가 단지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존재와 감각 사이의 틈을 감지하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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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garette Hand Study #4, 2024, Oil Paint on Linen, 50 x 40 cm *재판매 및 DB 금지 |
몽크리프의 신작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담배를 쥔 손’ 모티프는, 미국 화가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1913~1980)의 후기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거스턴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과 민권운동 등 정치적 격동 속에서 추상 회화를 벗어나, 손·담배·후드·벽돌과 같은 구체적 기호를 통해 사회의 불안과 내면의 모순을 시각화했다. 몽크리프 역시 현대 사회의 급변하는 정체성과 신체 인식, 디지털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회화 언어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거스턴에게 담배를 든 손이 고뇌의 자화상이었다면, 몽크리프의 손은 정체성의 경계가 해체된 동시대의 자화상이다.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몽크리프는 캐나다 몬트리올 콘코디아대학교에서 회화와 드로잉을 전공했다. 2016년 유타 현대미술관 개인전과 솔트 스프링 국립 미술상 최종 후보 지명을 통해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고, 2022년에는 구찌(GUCCI)와의 협업으로 대중문화와 미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을 시도했다. 전시는 6월1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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