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나무 뒤에 흰 천을 세웠더니…사진·회화 경계 허문 이명호
2026.10.27
사비나미술관서 12월13일까지 개인전
사진·설치·행위 넘나든 20년 작업세계 조명
갤러리현대서도 29일부터 신작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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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itage #7_Workers, 2024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붓질 한 번 하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 뒤에 거대한 흰 천을 세웠을 뿐이다. 풍경의 일부였던 나무가 한 폭의 그림이 됐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그림을 만든 셈이다.
사진가이자 현대미술작가 이명호(51)는 이렇게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들었다. 카메라로 대상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 속에 캔버스를 설치하는 행위 자체를 작품으로 끌어들였다.
단순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제작 과정은 거대하다. 나무 뒤에 10m가 넘는 철골 구조물을 세우고 흰 광목천을 매다는 작업에는 여러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대규모 설치작업이다.
그가 20여 년간 이어온 작업의 과정과 생각을 한자리에서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사비나미술관은 이명호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를 오는 12월 13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04년부터 이어온 '사진-행위 프로젝트(Photography-Act Project)'를 중심으로 작품을 탄생시킨 질문과 연작 사이의 관계를 조명한다.
대표작 '나무(Tree)' 연작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문 작업이다. 자연 속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촬영하는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로 삼았다. 익숙한 풍경에서 나무 한 그루를 떼어내 독립적인 존재로 바라보게 한다.
작업은 나무에서 역사와 기후위기로 확장됐다.
2층 전시장에서는 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에서 제작한 '키리바시(KIRIBATI)' 연작을 선보인다.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에서 현지 주민들과 구조물을 세우고 촬영한 작품이다.
지역의 재료와 기술, 주민들과의 협업을 통해 기후위기를 추상적인 환경 문제가 아닌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로 드러낸다.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 연작에서는 캔버스가 비어 있다. 특정한 피사체가 없는 흰 화면은 오히려 관객의 기억과 상상을 불러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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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리바시 #1_1_1, 키리바시 #1_1_2, 2026, 종이 위 잉크, 360x360cm *재판매 및 DB 금지 |
3층에서는 덕수궁 회화나무를 다룬 '유산(Heritage)'과 제주에서 촬영한 '나무' 연작 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장 벽면에 펼쳐진 작가의 개념도(Concept Map)다.
완성된 사진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작품의 출발점과 제작 과정, 서로 다른 연작의 연결 관계를 보여준다. 하나의 질문이 어떻게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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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호 <사진-행위 프로젝트> 개념도, 3층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3층 벽면에 펼쳐진 개념도는 20여 년간 축적된 작업의 내용과 형식, 연작 사이의 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라며 "완성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탄생시킨 생각의 구조를 함께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같은 시기 갤러리현대에서도 이명호 개인전이 열린다.
갤러리현대는 오는 29일부터 12월 20일까지 '(no)thing'을 개최한다. 사비나미술관이 지난 20여 년의 작업 과정과 개념적 토대를 조망한다면, 갤러리현대는 최근 제작한 신작에 초점을 맞춘다.
나무 뒤에 흰 천을 세우는 기발한 발상으로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 이명호의 작품은 미국 장 폴 게티미술관과 프랑스국립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문화유산 관련 홍보대사 활동과 궁궐 복원 현장의 아트펜스, 덕수궁 회화나무 프로젝트 등을 통해 사진이 역사와 공공 공간을 만나는 작업도 이어 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