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토템에서 외계까지 열린 감각…이즈미 카토, ‘무제’의 얼굴

2025.08.26

페로탕 서울서 7년 만의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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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품은 설명하려고 만든 게 아닙니다. 같은 석양을 봐도 어떤 이는 힘을 얻고, 또 다른 이는 눈물을 흘리잖아요. 제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26일 페로탕 서울에서 만난 일본 현대미술가 이즈미 카토(加藤泉)는 한국 관객에게 ‘설명보다 감각’을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특정한 의미를 강요하지 않는다. 작품 앞에 선 관객의 감정과 상상이 곧 의미가 된다.

페로탕 서울은 2018년 첫 개인전에 이어 두 번째로 카토의 개인전을 마련했다. 1969년 일본 시마네현에서 태어난 그는 무사시노 미술대학 유화과를 졸업한 뒤 홍콩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해왔다.

회화에서 출발한 그는 목재, 돌, 천, 소프트 비닐, 프라모델 등 자연적·산업적 재료를 넘나들며 원시적이면서도 토템적인 형상을 구축해왔다. 머리가 크고 눈이 두드러진 생명체는 팔과 다리 끝이 모호하게 표현돼, 외계 존재이자 자연의 정령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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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대표 갤러리 페로탕(Perrotin)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의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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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대표 갤러리 페로탕(Perrotin)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의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전시장에는 돌처럼 보이지만 스테인리스로 대체한 육중한 조각, 프라모델 비행기와 얽힌 토템, 바다와 불꽃을 품은 회화가 관객을 맞는다.

그는 “돌은 너무 무거워 스테인리스로 바꿨다”고 말했지만, 그 묵직함은 오히려 영속성의 은유처럼 작동한다. 프라모델 비행기를 앞 뒤로 단 인체는 전쟁과 폭력의 흔적을 드리우면서도, 장난감 같은 유희성을 띤다. 조개껍질과 물고기는 생명의 기원과 자연의 에너지를 환기한다.

겉으로는 인체 조각상처럼 보이지만, 카토는 이를 사람을 묘사한 형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사람 형상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람을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인간을 빌려 온 듯한 얼굴과 몸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불러내는 장치다. 그래서 그의 형상은 친근하면서도 낯설고, 현실과 비현실을 동시에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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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대표 갤러리 페로탕(Perrotin)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의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회화는 더욱 원초적이다. 카토는 붓 대신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를 문지른다. 문명 이전의 제스처를 닮은 이 방식은 물감이 스며드는 과정을 신체적으로 느끼게 하고, 색의 경계를 흐리며 화면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그는 한 존재를 두세 개의 캔버스로 나누거나, 다른 천을 스티치로 이어붙이기도 한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절된 인체는 마치 서로 다른 차원에 걸쳐 존재하는 듯 보인다. 언어 이전의 직관과 본능적 에너지가 그의 회화와 조각을 관통하며, 매혹적인 초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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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대표 갤러리 페로탕(Perrotin)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의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그의 예술은 일본 전통의 애니미즘과도 깊게 닿아 있다. 시마네현은 신토의 성소 이즈모 타이샤가 있는 지역으로, 그는 “어릴 적부터 귀신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 회상한다. 고향의 신화와 정령에 대한 기억은 작품 세계에 스며들었고, 인류 보편적 상징과 맞물려 토템적 형상으로 변주된다.

조각은 나무에서 돌, 알루미늄으로 확장됐다. 목각인형 같은 나무 조각, 자연 그대로의 돌, 플라스틱 장난감과 알루미늄 주조 작업까지 자연과 산업, 원초성과 기술, 대량 생산과 고유성의 긴장이 교차한다. 최근 회화에는 바다 생물들이 등장한다. 물고기, 소라, 성게, 문어는 바닷가에서 자라며 낚시를 즐긴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모티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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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프랑스 대표 갤러리 페로탕(Perrotin)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의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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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일본 현대미술 작가 이즈미 카토(Izumi Kato)가 26일 서울 강남구 페로탕 서울에서 일본 개인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08.26. [email protected]

작품에는 제목이 없다. 모두 ‘무제(無題)’다. 카토는 “처음에는 제목을 붙여보았지만 어느 순간 고갈됐다”고 털어놓았다. 작은 서사가 작품 속에 숨어 있지만, 들키는 순간 효과가 사라진다고 했다. 대신 그는 해석의 여백을 관객에게 내어준다.

작업을 ‘애니미즘적 상상력’이나 ‘포스트휴머니즘’의 맥락으로 읽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대안을 제시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관객들이 스스로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특정한 이론의 봉인이 아니라, 열린 해석의 장치로서 예술을 두는 태도다.

결국 그의 ‘무제’는 제목 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감정과 해석을 품을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열린 이름이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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