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서울관 다원공간 '소리의 정원'…하이너 괴벨스의 '겐코-안 03062'
2025.07.21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프로젝트 '숲'
7월 프로그램…8월 10일까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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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너 괴벨스, 〈겐코-안 03062〉, 2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조명, 물, 물결 생성 장치, 60분 (반복), MMCA 서울 02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소리는 무엇의 그림자일까.
빛과 어둠, 리듬과 침묵, 언어의 껍질을 벗은 목소리들이 조용히 펼쳐진다. 사운드와 사유가 교차하는 ‘소리의 정원’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이 2025년 다원예술 프로젝트 '숲'의 7월 프로그램으로 독일의 거장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의 멀티미디어 설치작업 '겐코-안 03062'를 선보인다.
장소는 MMCA 서울관 다원공간, 기간은 8월 10일까지다. 25×20×11m의 공간을 고스란히 작업의 장으로 삼아, 관객은 마치 ‘소리의 숲’에 발을 들인 듯 몰입적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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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너 괴벨스, 〈겐코-안 03062〉, 2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조명, 물, 물결 생성 장치, 60분 (반복), MMCA 서울 01 *재판매 및 DB 금지 |
◆ ‘소리 없는 정원’을 걸으며
작업의 모티브는 1992년, 괴벨스가 일본 교토의 사찰 ‘겐코안’을 방문하면서 출발한다. 사원의 둥근 창과 사각 창, 같은 정원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그 시각적 구조가, 작가의 내면에서는 ‘청각적 구조’로 전이됐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방식으로도 세계를 구성할 수 있다.”
괴벨스의 '겐코-안' 시리즈는 이후 베를린, 리옹, 모스크바, 보고타 등 전 세계를 돌며 각 도시의 장소성과 우편번호를 작품 제목에 반영해왔다. 이번 서울 버전에는 서울관의 우편번호 ‘03062’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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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너 괴벨스, 〈겐코-안 03062〉, 2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조명, 물, 물결 생성 장치, 60분 (반복), MMCA 서울 03 *재판매 및 DB 금지 |
◆언어 이전의 언어, 음악 이후의 음악
이 설치는 퍼포머도, 내러티브도 없다. 그러나 그 비어 있음은 곧 충만함이 된다. 8채널 사운드와 진동, 물결, 사물의 운동이 빛과 어둠 속에 뒤섞이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소리의 결에 감응하며 정서의 여백을 만든다.
작품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출발한다. 자연 속 고요한 은둔과 관찰의 기록은 괴벨스의 해석 아래 하나의 ‘음향적 에세이’로 전환된다. 소로의 글을 바탕으로 존 케이지가 만든 '빈 단어들'(1974), 그리고 괴벨스 자신이 작곡한 '월든'(1998),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민족학적 필드레코딩 등이 교차한다.
그리고 사운드는 겹겹이 목소리를 더한다. 하이너 뮐러, 한나 아렌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거트루드 스타인, 알랭 로브그리예, 안나 아흐마토바… 언어는 의미가 아니라 질감으로, 정치가 아니라 시로 다가온다.
괴벨스는 말한다.
“소로는 기차 소리, 새 소리, 나무 소리 사이에 위계를 두지 않았다. 이 태도가 바로 오늘날 예술이 배워야 할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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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너 괴벨스, 〈겐코-안 03062〉, 2채널 비디오, 8채널 사운드, 조명, 물, 물결 생성 장치, 60분 (반복), MMCA 서울 04 *재판매 및 DB 금지 |
◆극장 너머의 극장, ‘다원공간’에서의 몰입
이번 설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연간 프로젝트 '숲'의 일부다. ‘인간과 자연, 예술의 만남’을 주제로, 매월 다른 형식과 예술언어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오늘날 다원예술이 감각을 여는 방식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작품을 두고 “빛과 어둠, 형태와 리듬, 시와 노래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내는 몰입적 경험”이라며 “새로운 감각의 회로를 여는 예술적 숲”이라고 표현했다.
이 정원에는 발을 딛는 방식이 따로 없다. 듣는 자만이, ‘들린다’는 감각만이, 이 숲을 지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