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계단·로비·연습실 ‘공연장으로 간 미술’…세종문화회관 ‘공간 큐레이팅’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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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계단에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가 설치되어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미술은 더 이상 미술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조용한 전시장 대신, 계단을 오르며 숨을 고르는 그 순간, 공연이 끝난 뒤 여운이 남는 로비, 연습실의 햇살이 번지는 창가. 그 모든 일상적 공간이 이제 ‘전시’의 무대가 된다.
세종문화회관이 기획한 '공연장으로 간 미술'은 공연장을 관람의 장소로 전환시키는 공간 큐레이팅의 실험장이다. 계단과 로비, 연습실 등 관객의 동선 위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미술은 무대 밖에서 관객과 우연히 조우하는 또 다른 공연이 된다. 공공공간과 시각예술의 접점을 재구성하는 실험이자, 화이트 큐브 이후의 전시 방식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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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계단에 선보인 아토마우스 이동기 작가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
◆하얀 박스를 벗어나, 동선 위로 스며든 예술
공공공간에서 미술을 구현하는 시도는 그간 퍼블릭 아트의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조금 다르다.
벽면에 단순히 작품을 ‘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공간의 기능과 흐름, 관객의 이동 동선에 맞춰 작품을 스며들게 한 점에서 ‘공간 큐레이팅’이라는 보다 주체적인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미술은 중립적이고 고요한 전시실에서만 감상되어야 한다”는 오랜 전제에 대한 유효한 반문이다.
공연을 기다리는 15분, 발레단 연습실 옆을 지나는 퇴근길에도 미술은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찰나의 감상이 오히려 더 깊은 예술적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세종문화회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이 삶의 리듬에 맞춰 호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연장 큐레이팅’이라는 새로운 전시 모델
이번 프로젝트는 공연장이라는 기능 중심 공간을 예술적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는 실험이자, 전시의 개념을 확장하는 구체적 사례다.
관객이 이동하고 대기하는 공간, 한때 유휴 공간으로 여겨졌던 장소들이 작품의 맥락과 감정선을 고려한 큐레이션을 통해 ‘사유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작품을 단순히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가진 고유의 리듬과 감각을 읽고, 그에 응답하는 예술적 개입이 이뤄진다.
세종문화회관은 공연이라는 시간예술의 흐름에 시각예술의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미술을 또 다른 ‘무대 뒤의 공연’으로 재인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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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동측) 서울시발레단 연습실 로비. 정다운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
◆공공성, 감각성, 그리고 돌봄의 미학
전시가 열리는 공간은 모두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이며, 관람은 무료다. 전시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예술을 상정한다. 이는 공공예술이 가져야 할 감각성과 친밀함, 그리고 소외된 감정에 다가가는 ‘돌봄의 윤리’를 함의한다.
이세현은 대극장 계단에 ‘붉은 산수’ 8점을 설치했다. 한국전쟁과 상실의 기억을 우주의 시선으로 환원시키며, 수직적 공간에 감정과 존재의 상승을 겹쳐낸다.
이동기는 대극장 북측 계단에 캐릭터 회화 5점을 배치했다. 팝아트의 언어로 대중성과 예술의 경계를 유쾌하게 넘나들며, 공연장이라는 공간에 놀이성과 색채의 충돌을 선사한다.
변경수의 설치 작품은 대극장 로비와 예술의 정원에 스며들 듯 배치되었다. 채도 높은 색감과 비대한 조형은 ‘달콤한 뚱땡이’라는 형상을 통해 감정의 무력과 현대인의 불안을 익살스럽게 드러낸다.
정다운은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 로비에 섬유 설치 작업을 펼친다. 빛, 천, 구조체가 만들어내는 패브릭 드로잉은 리듬과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하며, 지나치는 이들에게 조용한 감응의 순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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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 S씨어터. 변경수 작가 *재판매 및 DB 금지 |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은 “공연장의 유휴공간을 예술의 장면으로 치환한 이번 전시는, 예술과 관객이 조우하는 새로운 무대를 연 것”이라며 “앞으로도 일상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열린 공간으로서 시민들과 소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12월 28일까지 진행된다. 대극장은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종료 1시간 후까지,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 로비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모두 무료 관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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