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불통의 땅이 소통의 광장이 되기까지…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0년
2025.06.26
민현준 '셰이프리스 미술관'
건축, 도시, 공공성에 대한 1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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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10년은 건축에 있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설계자의 의도는 풍화되고, 공간은 시민들이 쌓아 올린 또 다른 기억의 층위로 채워진다.
건축가 민현준의 신간 '셰이프리스 미술관'(열화당)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MMCA 서울)의 건축적 탄생을 기록하는 동시에, 도시와 건축, 예술, 역사, 그리고 공공성에 대한 집요하고 예민한 사유를 담아낸다. 서울관이 어떻게 ‘불통의 땅’에서 ‘소통의 광장’으로 변모했는지, 그 과정은 한 건축가가 자신의 언어로 건축을 통해 답한 여정이다.
2023년 11월, 개관 10주년을 맞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민현준이 제안한 ‘셰이프리스(shapeless)’, 즉 무형(無形)의 개념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대표 사례다.
◆ 공간의 레이어, 도시의 문맥을 읽는 설계
서울관의 부지는 조선시대 종친부부터 일제강점기의 경성의학전문학교, 이후 기무사령부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통과한 장소다. 폐쇄성과 권력의 상징이었던 이 땅은 이제 열린 문화 인프라로 탈바꿈했다. 단순한 건축 해설서를 넘어,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도시사적 역전극의 기록이다.
민현준은 공모전 단계부터 문화재 심의, 주민 협상, 고도제한을 고려한 구조 설계까지 직접 관여하며, ‘공간은 전략이자 대화’라는 원칙을 실천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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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사진 제공 남궁선 *재판매 및 DB 금지 |
◆ ‘형상에서 전략으로’: 비물질적 건축을 향하여
그는 서울관을 “형상이 없는 미술관”이라 정의한다. 이는 조형미의 완성도보다 제약과 장소성에 따른 ‘움직이는 전략’으로 건축을 접근하겠다는 선언이다.
설계 도중 종친부 유구가 출토되면서 마당이 설계의 중심축으로 부상했고, 전시 공간 대부분이 지하에 배치되는 등 공간 구조는 수차례 조정됐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서울관 건축의 핵심 서사이자 “선례가 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완전히 실현되지 못한 이상과 그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히 기록한 대목은 책의 진정성을 더한다.
◆ 건축은 껍데기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서울관은 형태보다 ‘작동 방식’에 주목한 건축이다. 화이트큐브, 매직박스, 블랙박스 등 각기 다른 전시실 포맷은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을 반영한 공간적 시스템이다. 이는 관람객이 전시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체류자가 되도록 설계된 구조이기도 하다.
건축은 ‘무대’가 아니라 ‘도구’다. 선형이 아닌 군도형(群島型) 구조, 하나의 전시실이 하나의 건물이 되고, 연결 동선이 골목이 되는 방식. 이는 미술관을 ‘작은 도시’로 탈바꿈시킨다.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건축의 언어로 ‘공공성의 재구성’을 시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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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경. MMCA Seoul ©Park Jung Hoon |
◆ 십 년이 흐른 후에야 꺼낸 고백
저자가 책을 십 년 후에 낸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야 비로소 “건축 자체로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시민들의 걷는 길이 되고, 쉼이 되고, 일상 속의 열린 장이 되었다. 서울관은 단지 전시의 배경이 아니라, 사람들이 감응하고 작동시키는 장소가 되었다.
'셰이프리스 미술관'은 한 미술관의 설계 보고서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동시대 도시 공간과 예술, 그리고 건축이 어떻게 긴장하고 협력하며, 공공이라는 이름 아래 어떤 형식으로 묶이는지를 사유하는 지도다. 시행착오와 이상, 타협과 전진이 켜켜이 담겨 있다.
서울관은 여전히 움직이는 건축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움직임을 기록하며 묻는다.
“공공을 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