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김환기·박서보·이불…1950~90년대 한국미술 타임캡슐 열린다

2025.06.25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상설전 II 26일 개막

작가 70명 110점 공개…17점은 ‘이건희컬렉션’

김환기·윤형근 '작가의 방’ 사운드·향기 몰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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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MMCA·관장 김성희) 과천관이 26일 개막하는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I'는 1950~90년대를 압축한 ‘한국미술 타임캡슐’이다. 작가 70여 명의 작품 110점 중 17점은 ‘이건희컬렉션’으로 구성됐다.

지난달 공개된 1부(1880~1940년대)에 이은 이번 전시는 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 격동의 시대를 아우르며 한국미술사의 전환기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2부를 합쳐 과천관에서만 총 58점의 이건희컬렉션이 공개된다.

‘정부 수립과 미술’,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 등 11개 소주제는 미술사를 시대 흐름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풀어낸다. 임대근 과천관 부장은 “작가의 방은 매년 교체하고, 일부 전시작도 순환 배치해 한국근현대미술사를 폭넓게 조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방’이다. 김환기와 윤형근을 집중 조명하며, 향(香)과 음악을 더해 시각·청각·후각이 어우러지는 감각적 몰입의 공간으로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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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한국근현대미술 II'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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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와 향기로 더욱 몰입감을 높인 윤형근 작가의 방.  *재판매 및 DB 금지


◆1부:정부 수립과 미술
해방 직후 정부가 주도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는 작가들에게 생존 통로이자 공적 무대였다. 초대 대통령상 수상작인 류경채 '폐림지 근방'(1949) 은 전후 폐허를 사실·추상이 뒤섞인 색채로 묘사해 국전의 화풍 변화를 예고했다. 박노수 '선소운'(1955), 안상철 '청일'(1959) 은 수묵과 채색, 전통과 모더니즘 어법이 교차하며 ‘국전 한국화’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작품들이다. 이 섹션은 제도와 화단이 맞물려 형성한 ‘전후 미술의 초상’을 보여준다.

◆2부: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1950년대 후반 작가들은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되 토속적 정서를 결합하며 독자적 양식을 모색했다. 문우식 〈무명교를 위한 구도〉(1957) 는 건축적 화면 구성과 민속적 색감을 병치했다. 권옥연 〈토기〉(1964) 는 토속 기물을 현대적 평면에 올려놓아 ‘구상 속 추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내면과 현실을 새 언어로 번역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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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 〈원형질(原形質) 1-62〉, 1962, 캔버스에 유화 물감, 163×131cm *재판매 및 DB 금지


◆3부:추상미술의 확산
추상은 1960~70년대 한국 미술의 주역이었다. 박서보 '원형질 1-62'(1962) 가 보여주듯 앵포르멜 계열은 원초적 생명력을 표방했고, 이승조 '핵 No. G-99'(1968) 같은 기하 추상은 산업화·도시화의 시각적 리듬을 담아냈다. 한편 철조, 용접 등 ‘하드에지’ 재료 실험도 활발해 박석원 '초토'(1968), 송영수 '생의 형태'(1967) 가 시대 불안과 인간 감정을 물질로 형상화했다.

◆4부:작가의 방 Ⅰ – 김환기 '푸른 여백, 마음의 풍경'
초기 추상 '론도'(1938)의 리듬, 파리 시기 '산월'(1958)의 한국적 정서, 뉴욕 시기 '새벽 #3'(1964-65)의 점화(點畵)까지 김환기의 변주를 시기별로 배치한다. 협업 조향이 더해진 ‘푸른 여백’의 향은 관람객을 화가의 심상(心象) 속으로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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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극지로 가는 길 83년 11월〉, 1983,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29×194.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재판매 및 DB 금지


◆5부:모더니스트 여성 미술가들
주류 서사에서 소외된 여성 추상가들의 재발견. 이성자 '극지로 가는 길'(1983) 은 우주·여행의 서사를 캔버스에 펼치고, 최욱경 '환희'(1977) 는 본능적 색채로 여성 자아를 선언한다. 조각 김정숙, 태피스트리 박래현 등 다재료 실험도 병렬 배치해, 1960~80년대 여성 미술 다층성을 보여준다.

◆6부:행위·사물·개념 – 전위미술의 실험
‘물질→행위→담론’으로 확장한 1960~70년대 실험미술을 망라한다. 이승택 '바람 연작 드로잉'(1971) 은 바람 자국을 기록해 ‘보이지 않는 회화’를 제시했고, 이건용 '신체 드로잉 76-1'은 몸을 매개로 화면을 그리는 과정을 예술로 치환했다. 퍼포먼스 사진·드로잉·영상 등 매체 간 경계를 넘나든다.

◆7부:한국적 추상의 모색 – 단색화
1970년대 단색조 회화는 반복·여백·물성으로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구축했다. 이우환 '점으로부터'(1973), 하종현 '접합' 시리즈, 박서보 ‘묘법’ 연작 등은 ‘행위로서의 붓질’과 ‘캔버스 물성’이 만나는 지점을 탐색한다.

◆8부:작가의 방 Ⅱ – 윤형근 '청다색, 천지문'
'69-E8'(1969) 부터 '청다색 86-29'(1986) 까지 절제와 숭고의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별한 저음 위주의 사운드 스케이프가 청색·암갈색 화면과 공명해 ‘명상적 몰입’을 극대화한다.

◆9부:한국화의 새로운 전환
1980년대 한국화는 수묵·채색 구분을 넘었다. 박생광 '무속 4'(1980) 는 샤머니즘·민화를 현대 회화로 재해석했고, 천경자 '누가 울어 2'(1989) 는 채색과 강렬한 선으로 여성 서사를 그렸다. 전통영역 확장이라는 키워드가 돋보인다.

◆10부:형상의 회복과 현실의 반영
추상 전성기 속에서도 현실 참여적 형상미술이 급부상했다. 신학철 '한국근대사–종합'(1982-83), 서용선 '청계천에서'(1986-89) 는 사회 비판적 리얼리즘을 제시하고, 김강용 '현실+장 79'(1979) 는 오브제 사진 콜라주로 현실 단면을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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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소, 〈삼위일체〉, 1994, 종이에 커피, 콜라, 간장을 섞은 용액, 131×101cm *재판매 및 DB 금지


◆11부:동시대를 향하여 – 1990년대 이후
세계화·테크놀로지 시대에 미술은 ‘매체 실험’으로 이동한다. 박이소 '삼위일체'(1994), 안규철 '그 남자의 가방'(1993) 은 사물과 언어를 개념적으로 재구성했고, 이불 '스턴바우 No. 23'(2009) 은 기술 신체 융합을 통해 미래적 존재를 탐구한다. '스턴바우 No. 23'는 2025년 신소장품으로 수집되어 처음 선보여진다. 

2부 전시 관람 포인트는 '작가의 방’ 체험형 전시다. 김환기 공간은 맞춤형 향(수토메 아포테케리 협업), 윤형근 공간은 정재일 음악감독 플레이리스트로 시청각·후각을 결합했다.

또한 청소년 대상 ‘MMCA 하이라이트’, 장애통합학급 프로그램 ‘함께 보는 미술관 한 작품’, 월간 전시 연계 강연도 열린다.

김성희 관장은  “앞서 개막한 1부와 함께 한국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망하는 상설전시를 통해 국내외 관람객들에게 한국미술의 역사와 가치를 전하고,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동시대 한국미술의 근원을 살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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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MMCA 과천 상설전'한국근현대미술 II'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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