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안토니 곰리 “뮤지엄 SAN ‘그라운드’, 열린 무덤이자 생명의 장”

2025.06.19

뮤지엄 SAN 새 공간 ‘GROUND’ 공개

곰리+안도 타다오 협업 세계 최초 상설관

청조갤러리 전관서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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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19일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새롭게 탄생한 뮤지엄 산 '그라운드' 내부. 2025.06.19. [email protected]


[원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판테온이 닫힌 무덤이라면, 그라운드(GROUND)는 열려 있는 무덤이자 생명의 장입니다.”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74)가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함께 설계한 신작 공간 ‘GROUND’가 강원 원주 뮤지엄 SAN에서 처음 공개됐다. 건축, 조각, 자연이 하나로 호흡하는 이 공간은 작품이자 장소로 기능하며, 뮤지엄 SAN이 추구해온 ‘예술-자연-건축’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구현한다.

19일 현장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곰리는 “그라운드(GROUND)는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라며 “조각은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감각의 촉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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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가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개인전 'DRAWING ON SPACE' 언론 공개회를 하고 있다. 2025.06.19. [email protected]


◆ 조각, 건축, 자연이 호흡하는 공간
뮤지엄 SAN의 플라워 가든 아래 지하에 조성된 GROUND는 직경 25m, 천고 7.2m 규모의 원형 돔 공간이다. 지상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유리창 너머로 원형 본실이 펼쳐진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천창을 통해 유입되는 자연광은 시간에 따라 내부 분위기를 변화시키며, 공간 전반에는 곰리의 철제 인체 조각 7점이 흩어져 있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약 4분의 3 규모에 해당하는 웅장한 공간은 조각과 건축이 하나로 결합된 ‘장소 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로 기능한다. 

곰리는 “빛과 철, 침묵과 공기의 흐름을 통해 조각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첫 공개된 그라운드에 그도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시각적·청각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공간과 주 공간이 분리돼 있다. 유리창 너머로 산과 빛, 조각이 펼쳐지고, 관람자는 다른 관람자를 바라볼 수도 있다. 산과 예술의 관계를 고요하게 관찰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며 벅찬 소감을 전했다.

곰리는 “GROUND의 입구는 시신경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입구에 벤치가 있고 마치 초대를 받아 주 공간으로 들어가는 듯한, 전이의 경험을 의도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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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가 열린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GROUND(그라운드)'에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뮤지엄 산의 전시장 '그라운드'는 안토니 곰리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공동 설계한 새로운 공간이다. 건축, 조각, 자연이 하나로 호흡하는 ‘GROUND’는 작품인 동시에 장소로 기능하며, 뮤지엄 SAN이 설립 이래 지속해 온 ‘예술-자연-건축’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적 공간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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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토니 곰리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탄생한 '그라운드' 공간. 곰리의 녹슨 철조각 7점이 함께 설치됐다. *재판매 및 DB 금지


◆ “녹슨 철은 피와 흙의 색…변화의 상징”
곰리의 대표적인 조각은 녹슬게 보이는 사각 블록으로 구성된 인체 형상이다. “녹슨 철의 색은 피와 태양, 흙의 색과 연결돼 있으며, 변화의 상징입니다. 철은 시간이 지나며 자연과 호흡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몸을 상징합니다.”

조각을 철로 만든 이유에 대해 그는 “고체의 단단한 질량이 필요했다”며 “닻 같고, 에너지 배터리 같은 역할을 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교토 료안지 정원의 15개 바위에서 영감을 받아, “고요하고 정지된 정거장을 상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학습될지 흥미롭다”며 “침묵 속에 놓인 오브제들이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간 자체가 변화에 노출돼 있는데, 앞으로 공간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조망하는 일 역시 흥미롭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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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9일 안토니 곰리가 뮤지엄 산에서 한국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있다. 흰 패션에 빨간 양말이 인상적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내 조각은 모든 질문을 실체화한 것”
“조각을 통해 궁극적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곰리는 “그 자체가 질문”이라고 답했다.

“어떤 이념을 주장하는 것도, 우주론을 설명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인간이 이 세계 안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죠. 작품의 주제는 오히려 그것을 경험하는 관람자에게 있습니다. GROUND는 몸이 딛고 설 수 있는 땅이자, 감각과 사유의 장입니다.”

안토니 곰리는 인간의 몸을 중심에 둔 조각 실천을 통해 조형 언어의 전통적 개념을 재정의해 온 작가다. 그는 초기 작업에서 자신의 몸을 석고로 캐스팅하는 방식으로 조각을 제작했고, 이후 인체의 구조와 존재 조건에 대한 물리적·철학적 탐구를 통해 점차 비물질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조각을 확장했다. 전통적인 재현과 이상화에서 벗어난 그의 조각은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관람자의 신체적 참여와 감각적 인식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는 ‘촉매’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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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엄 산은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 언론 공개회가 열린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에서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 SAN 청조갤러리 전관(1, 2, 3관)에서 펼쳐지며 조각 7점, 드로잉 및 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으로 구성된 총 48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안토니 곰리 개인전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 “몸은 기체이자 흐름…전시는 물질의 세 가지 상태”
곰리의 대규모 개인전 'DRAWING ON SPACE'는 청조갤러리 전관(1~3관)에서 열린다. 조각 7점, 드로잉·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 등 총 48점이 전시된다.

곰리가 오랜 시간 천착한 조각과 공간, 신체의 관계를 드러낸다. 1관에서는 기포처럼 유동적인 인체 형상 ‘Liminal Field’ 연작을, 2관에서는 인간 내면의 감각을 그린 드로잉 'Body and Soul' 연작을, 3관에서는 우주의 궤도를 형상화한 대형 설치작업 'Orbit Field II'를 선보인다.

곰리는 “버블 형태의 조각은 인간의 연약함과 개방성을 표현한 것”이라며 “몸은 기체이자 에너지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라운드에서는 확고한 질량을 가진 형태로 몸이 구현되었기 때문에 이것과 상반된 개방되고 유연한 Liminal Fields 와 Orbit Field를 통해 균형을 잡고자 했다"면서 "버블 형태의 작품은 에너지를 다루는 작품이고, 그라운드의 작품은 질량을 가진 몸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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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엄 산은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 언론 공개회가 열린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에서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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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뮤지엄 산은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 언론 공개회가 열린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에서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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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영국 대표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개인전 'DRAWING ON SPACE'가 열린 20일 강원도 원주시 뮤지엄 산 'GROUND(그라운드)'에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뮤지엄 산의 전시장 '그라운드'는 안토니 곰리와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공동 설계한 새로운 공간이다. 2025.06.19. [email protected]

◆ “조각은 회복의 예술…몸은 우주의 매개체”
곰리는 “디지털 기기에 갇힌 시대, 조각은 다시 ‘만지는 세계’를 되찾게 한다”며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는 우주의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예술은 삶의 본질을 회복하는 실천입니다. GROUND는 그 출발점이자 실험장이 될 겁니다. 디지털 환경이 인간성을 잠식하는 시대, 예술은 인간성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처럼, 죽음과 삶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는 지금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적 현실과 대비된다”며 “조각가는 인간의 유한성을 다루는 사람이고, 그것을 알리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일인 20일에는 안토니 곰리가 직접 참여한 특별 강연도 열린다. 곰리가 직접 ‘GROUND’와 이번 전시에 담긴 철학적 관점을 소개하며, 인간 존재와 공간, 감각의 상호작용에 대한 사유를 관람객과 공유할 예정이다.

안토니 곰리의 개인전 'DRAWING ON SPACE'는 오는 11월 30일까지 뮤지엄 SAN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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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뉴시스] 박진희 기자 = 19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SAN의 새로운 공간 ‘GROUND’를 처음으로 공개하여 전시에 한층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조각가 안토니 곰리의 첫 협업으로 탄생한 ‘GROUND’는 내부 직경 25m, 천고 7.2m, 직경 2.4m의 원형 천창을 갖춘 돔 형태의 공간으로, 뮤지엄 SAN의 플라워 가든 아래에 조성되었다. 빛이 원형 천창으로 유입되는 ‘GROUND’는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약 4분의 3 규모에 해당하는 웅장함을 자랑한다. 2025.06.19.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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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안토니 곰리와 안도 타다오가 협업해 탄생한 뮤지엄 SAN 그라운드. 외부에서 본 공간은 열린 무덤처럼 보인다. 2025.06.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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