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그림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우리 뇌에 대하여

2025.06.11

에릭 캔델 '미술, 마음, 뇌'(프시케의숲)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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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을 볼 때, 우리는 종종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왜 어떤 그림은 몇 초 만에 시선을 사로잡고, 또 어떤 작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걸까?

세계적인 뇌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은 이 질문에 과학으로 답한다.

그의 신작 '미술, 마음, 뇌'(프시케의숲)는 미술과 뇌과학이 만나는 지점을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우리가 예술을 감상할 때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양한 미술 작품과 함께 설명한다.

캔델은 “그림을 감상한다는 건, 뇌가 반응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지각이 모두 동원된다는 것이다.

책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발한다. 클림트, 에곤 실레 같은 예술가들과 함께,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학자가 활동하던 시기다. 당시 예술가들은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무의식을 표현하려 했고, 캔델은 이런 예술이 뇌과학과 어떤 점에서 닮아 있는지 짚어본다.
"클림트는 생물학 기호를 자신의 작품에 통합하기 시작했다. 직사각형은 정자, 타원은 난자를 상징했다. 〈다나에〉에서 이 기호들을 볼 수 있다. 부친에게 감금되고 황금 빗줄기의 형태로 제우스를 통해 잉태를 하는 그리스 공주의 초상화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황금 빗방울 속에서 직사각형들을 볼 수 있다. 다나에의 맞은편에는 타원형들이 보인다. 배아, 수정된 난자다. 클림트는 다나에가 생식력을 통해서 정자를 생명의 최초 단계로 전환시키는 것을 보여준다."(38쪽)
그는 또 ‘감상자의 몫’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예술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관객이 바라보고 감정이입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메저슈미트의 기묘한 얼굴 조각을 보면, 우리의 뇌는 그 표정을 따라 하고, 그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된다. 얼굴을 보는 능력이 뛰어난 우리 뇌의 특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술의 한 가지 목적은 평소에 접하지 못했을 삶의 측면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이입을 통해서다. 감정이입은 뇌에서 강하게 표현된다. 우리는 메저슈미트의 머리를 볼 때 그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그의 두상은 우리 뇌의 생물학적 운동 체계와 모방을 담당하는 거울 뉴런 체계도 활성화한다. 따라서 메저슈미트의 두상을 볼 때, 우리는 그가 묘사하고 있는 감정을 내면에서 경험한다. 우리 뇌는 그의 표정을 모사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감정을 경험한다.(221쪽)
책 속에는 피카소, 샤갈, 수틴 같은 익숙한 작가들도 등장하고, 입체파의 시지각 실험이나 조각과 회화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다소 전문적인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왜 어떤 예술은 우리를 감동시키는가?”라는 질문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미술 감상의 비밀을, 뇌의 언어로 풀어내는 이 책은 예술을 ‘느끼는 일’에서 ‘이해하는 일’로 확장해준다. 그림 좋아하는 사람, 또는 감동받는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이 뇌를 ‘톡’ 건드려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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