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이강소×타데우스로팍 '연하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사마'
2025.06.12
지난해 전속 후 첫 개인전
설치, 회화, 조각, 판화 등 20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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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12일 이강소 화백이 타데우스 로팍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에서든, 조각에서든 나의 어떤 맑은 기운과 관조자의 맑은 기운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길 소망한다.”
이강소(80) 화백이 세계적인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과 전속 계약을 체결한 이후 첫 개인전을 서울에서 연다. 전시는 13일부터 8월 2일까지 서울 이태원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열린다. 설치, 회화, 조각,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 20여 점이 소개된다.
전시 제목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는 퇴계 이황의 시조 '도산십이곡' 제2곡에서 인용됐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자아를 우주적 질서에 조율하고자 했던 퇴계의 세계관은 이강소가 예술에 임하는 자세와도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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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 로팍 이강소 화백 개인전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는 “퇴계의 자연관에 깊이 공명하며, 나의 예술 또한 자아를 표출하거나 고정된 실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세계의 흐름과 조응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마음과 우주가 하나가 되면 이때 나도 남도 탈각한다”는 것.
1943년 대구 출생의 이강소는 한국 실험미술 1세대로 유명하다. 1965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특정 사조나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실험미술, 퍼포먼스, 비디오, 사진, 판화, 조각 등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을 이어왔다.
1975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닭을 활용한 ‘흔적 남기기’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분필가루로 둘러싼 나무 모이통에 닭을 묶어두고, 그 움직임의 흔적을 기록한 이 작업은 한국 실험미술의 상징적 퍼포먼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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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스 로팍 이강소 화백 개인전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의 회화는 동아시아 수묵화의 사유와 서예적 붓질, 인상주의적 색채가 공존한다. 그의 유려한 붓놀림은 윌렘 드 쿠닝, 사이 톰블리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는 자아를 전면화하기보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상태를 지향한다.
조각 역시 회화의 제스처가 공간으로 확장된 결과다. 청동작 ⟨무제‑94095⟩(1994)은 평면의 붓질을 입체로 구현했다. '팔진도'(1981/2017)는 마치 솟아오른 산맥처럼 공간을 장악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는다. 1990년대 이후 작가는 점토를 공중에 던져 중력에 맡기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조각’ 시리즈를 통해 자연의 우연성과 물질의 흐름을 조형 언어로 끌어냈다.
미술평론가 엘리너 하트니 (Eleanor Heartney)는 "점토, 세라믹, 청동,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료로 제작된 그의 조각은 균형과 붕괴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을 품고 있다"며 “자연 세계의 어떤 우연적 아름다움을 응축한 시적 조각으로 다가온다"고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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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타데우스 로팍 개인전 *재판매 및 DB 금지 |
이강소 화백은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을 비롯해 테이트 모던, 구겐하임 미술관, 브루클린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 전시에 참여하며 국제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2021년 갤러리현대 개인전에서는 ‘청명’ 시리즈와 ‘강에서’ 연작을 통해 ‘기(氣)’의 표현을 강조하며 유럽 수집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강소의 이번 개인전은 타데우스 로팍과의 협업을 알리는 첫 신호탄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철학적 깊이와 미학적 성취를 세계 무대에 드러내는 장이 될 전망이다.
한편 타데우스 로팍은 1983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출발해, 파리·런던·서울 등 국제 거점으로 확장된 글로벌 갤러리다. 2021년 문을 연 서울 지점은 안젤름 키퍼, 게오르그 바젤리츠, 이불, 정희민 등 세계적 작가들이 소속된 현대미술의 주요 허브로 자리 잡았다. 전시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