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작가와 갤러리 50:50?…불문율의 그림자 [박현주 아트클럽]
2025.08.18
작품 판매 대금을 똑같이 나누는 방식
SNS·AI시대 미국서 먼저 터져 나온 균열
"슬라이딩 스케일부터 디지털 판매까지
분배의 새로운 방정식” 논의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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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키아프 서울(Kiaf SEOUL) 2024'에 선보인 작품. 2024.09.04.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품을 만든 이는 작가인데, 왜 절반밖에 가져가지 못하는가.”
수십 년간 미술 시장을 지탱해온 ‘50:50 룰’. 작가와 갤러리가 판매 대금을 똑같이 나누는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논쟁은 미국에서 먼저 불붙었다. 그리고 그 불씨는 한국 시장에도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 분배 구조는 여전히 정당한가.
8월은 늘 뉴욕 미술계가 숨 고르는 달이지만, 올해의 정적은 유난히 무겁다. 미국 아트딜러협회(ADAA)의 대표 행사 The Art Show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페어는 단순한 거래의 장을 넘어, 130년 역사의 비영리 기관 헨리 스트리트 세틀먼트를 위해 지금까지 38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해온 사회적 플랫폼이었다. 그 공백은 곧장 작가, 갤러리, 커뮤니티, 나아가 미술 생태계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이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페어 취소’가 아니다. 갤러리 비즈니스 모델의 불안정성, 그리고 무엇보다 관행처럼 유지돼온 ‘50:50’ 수익 배분 구조가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사실 ‘50:50’은 한국 화랑시장에서도 오랜 불문율이었다. 작가는 갤러리의 몫을 의심 없이 인정했고, 화랑은 전시 공간과 홍보, 컬렉터 네트워크 제공을 명분 삼아왔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 인스타그램과 온라인 뷰잉룸을 통해 직접 고객을 만나고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이 질문은 더욱 예리하다.
“갤러리의 기여가 정말 절반에 해당하는가?”
정준모 미술비평가는 이 구조의 뿌리를 짚는다. 그는 “작가들이 수십 년간 각자도생하다가 70줄에 들어서야 작품이 팔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화랑이 절반을 가져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레오 카스텔리가 젊은 야스퍼 존스와 라우센버그를 발굴해 전 생애를 함께하며 ‘5:5 구조’를 만들어낸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 화랑들은 과연 그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물론 국내 화랑들이 KIAF, 프리즈 서울 등 국제 아트페어 참가 비용을 감당한다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정 비평가의 지적처럼, 실질적 지원과 관리가 부재한 구조에서 ‘절반의 몫’은 점점 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50:50 구조의 기원 자체를 문제 삼았다.
“사실 5:5가 굳어진 건 1990년대 말, 점잖은 화랑들을 중심으로 전속제가 시행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전속 개념도 없이 단기 전속이나 일회성 계약에도 5:5를 적용하는 건 무리지요. 외국은 20~30년에 걸친 전속 관계 속에서 ‘윈윈’하며 만들어진 구조인데, 한국 화랑들은 국제적 관례라는 이유로 분배 문제만 국제 룰을 들이대는 겁니다. 말이 안 되죠. 해외 화랑들은 작가의 미술관 전시를 위해 로비하고 펀딩을 하며, 고객들을 미술관 후원회에 가입시키는 등 온갖 일을 다 합니다.”
국내 화랑들이 KIAF, 프리즈 서울 등 국제 아트페어 참가 비용을 감당한다는 논리는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정 대표의 지적대로 실질적 지원과 관리가 부재한 상태에서 ‘절반의 몫’을 주장하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 발상에 가깝다.
같은 초대전 타이틀을 달고 열리는 개인전이라도, 갤러리의 투자와 지원 수준은 제각각이다. 한 전시기획자는 이렇게 꼬집는다.
“제대로 된 초대 개인전은 ‘도어 투 도어’를 기본으로, 작업실에서 전시장 설치와 반출까지 갤러리가 책임집니다. 개막식 케이터링, 홍보, 도록 제작, 고객 초청 및 관리, 부대 행사, 사후 관리까지 모두 지원하는 것이죠. 그런데 일부 갤러리는 단순히 공간 제공과 엽서 제작만 해놓고도 50% 배분을 요구합니다. 이는 공정하지 못한 사례입니다.”
그는 이번 논의가 단순히 분배 구조의 재검토를 넘어, “제대로 된 지원 체계를 지키는 갤러리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 그리고 컬렉터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다.
중견 작가 김남표는 단호했다. “갤러리는 본질적으로 공익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해외 갤러리가 더 낫다는 환상도 일축한다. “외국에는 갤러리를 견제할 컬렉터가 있지만 한국에는 없습니다. 사실은 갤러리보다 컬렉터가 더 심하죠. (작가인) 우리는 갤러리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어디서든 미술가는 이 조건을 견뎌왔고, 예술은 그 속에서 꽃을 피워왔습니다.”
신생 화랑들은 오랜 ‘룰’을 따르면서도 균열을 내고 있다.
개관 5년 차 호리아트스페이스 김나리 대표는 현실을 짚는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화랑은 한 달 전시에 평균 2000만 원을 지출합니다. 결국 작가와 화랑의 역할 분담이 먼저이며, 판매금 배분도 그 비중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실제로 세계 미술시장은 점점 더 ‘유연한 계약 모델(flexible contract model)’을 모색하는 추세다.
첫째, '슬라이딩 스케일(scaling model)'이다. 신진 작가일수록 갤러리의 투자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갤러리 몫을 높게, 반대로 경력이 쌓이고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한 작가일수록 작가 몫을 늘리는 방식이다. 고정된 산식 대신 성장 단계별 분배 구조를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둘째, 매니지먼트형 갤러리 모델이다. 단순히 작품을 판매하는 ‘중개상’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장기적 커리어를 관리하는 파트너로 기능할 때 비로소 50%라는 몫이 정당성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전시 기획, 국제 무대 진출, 미술관 네트워크까지 아우르는 전방위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디지털 판매 플랫폼이다. 온라인 뷰잉룸과 SNS 채널이 확산되면서 갤러리의 독점적 권위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작가가 직접 판매망을 구축하는 방식은 더 이상 미래형 가설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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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제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키아프 서울(Kiaf SEOUL) 2024' 개막식이 열린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키아프 학고재 전시장에 작품들이 전시되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2024.09.04. [email protected] |
결국 논점은 ‘누가 더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누가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가’다. 단순한 산식은 이미 무력해지고 있다.
화랑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작가의 동반자인가, 아니면 단순한 유통업자인가. 이 질문은 최근 불거진 ‘미술서비스업 신고제’ 논란과도 맞닿아 있다. 내년부터 시행될 신고제와 ‘재판매 보상청구권(추급권)’은 이 질문을 더욱 예리하게 던질 것이다.
예술 생태계는 단순한 장부 계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가와 화랑의 동행, 제도의 뒷받침, 컬렉터의 책임이 삼각형처럼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 미술시장은 여전히 ‘룰’을 두고 공방 중이다. 한국화랑협회 이성훈 회장은 “어영부영 시행되면 한국 화랑은 고사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50:50은 오랫동안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자체가 다시 질문이 된다. 이는 단순히 작가와 갤러리 사이의 ‘돈 문제’가 아니라, 누가 미래 미술 생태계의 주체가 될 것인가를 가르는 더 큰 물음이다.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자, 경제의 풍향계다. 그리고 지금, 그 풍향은 확실히 바뀌고 있다.
작가와 갤러리의 싸움은 이미 구시대의 프레임이다. 진짜 경쟁자는 알고리즘과 데이터다. 5:5라는 산식은 더 이상 정의도, 설득력도 되지 못한다. 바뀌지 않는 쪽이 먼저 시장에서 퇴장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