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시간을 건너온 '록의 전설' 패티 스미스, 남산 '피크닉'[박현주 아트클럽]

2025.04.21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와 협업전시

남산 피크닉서 아시아 최초 공개

비디오 영상 드로잉 등

이름의 무게로 구성된 몰입형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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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18일 오후 서울 남산 피크닉 전시장에 미국 록밴드 전설 패티 스미스가 내한 전시 설명을 하고 있다. 2025.04.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예술가도 행동하는 혁명가다.”

자유로운 그래피티 정신을 품은 록의 전설이 서울에 왔다.

미국 록 밴드의 대모이자 시인이자 예술가인 패티 스미스(78)가 서울 남산 피크닉(Piknic)에서 전시를 연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와 협업한 시, 사운드, 영상, 오브제를 아우르는 몰입형 전시로, 아시아에서는 처음 공개된다.

‘끝나지 않을 대화’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가 10여 년간 주고받은 서신과 예술적 교감을 바탕으로 한 시와 소리의 프로젝트다.

조지아 트빌리시 사진 및 멀티미디어 박물관(2023), 콜롬비아 메데인 현대미술관(2024), 오나시스 재단(2024), 미국 쿠리만주토 갤러리(2025)를 거쳐 아시아 순회전의 시작점으로 서울이 선택됐다. 이어 오는 4월 26일부터 6월 29일까지는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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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피크닉(Piknic)에서 여는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협업 전시 장면. 사진=피크닉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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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 전시가 남산 피크닉에서 개막했다.  *재판매 및 DB 금지


18일 피크닉 전시장에서 마주한 전설은 여전히 록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양 갈래로 흰 머리를 땋고, 청바지를 워커 안에 집어넣은 마른 노인은 똑바로 서 있었다. '록의 전설'이라는 이름이 시간 속에서 현재형으로 존재함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1975년 1집 '호시스(Horses)'로 데뷔한 스미스는 펑크록 가수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로큰롤의 대모'로 불린다. 남성 누드사진작가이자 미국의 현대사진작가인 고 로버트 메이플소프(1946~1989)와 동거하며 그의 뮤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를 쓰다 로큰롤에 우연히 빠진 스미스는 절묘한 시대적 감각을 음악 세계에 반영하며, 다른 예술 장르나 예술가와 함께 작업하는 일을 평생 해오고 있다.

이 전시에서 '전설'이라는 이름은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콘텐츠보다 이름이 먼저 설명되고, 감상보다 경외가 먼저 작동한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수용'하거나 '해석'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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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still from ‘Medea’ (diptych)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featuring original footage from ‘Medea’ by Pier Paolo Pasolini, 1969, courtesy of Cinemazero[piknic]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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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nic] Film still from ‘Burning 1946-2024’ (diptych) by Stephan Crasneanscki, 2024, ⓒ Soundwalk Collective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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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와 예술가와 자연>(The Acolyte, the Artist and Nature)와 <체르노빌의 아이들>(Children of Chernobyl)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는 기억, 자연, 기후 위기, 혁명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체르노빌 어린이 합창단의 목소리를 담은 사운드, 멸종 동물의 이름을 읊는 낭송 영상, 육필 노트와 자연물을 활용한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의 아카이브가 전시장 곳곳에 배치돼 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대형 산불, 동식물의 대량 멸종 등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조망하는 동시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파올로 파솔리니, 마리아 칼라스,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 역사적 인물들의 삶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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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협업전시는 영상과 소리와 함께 바닥에는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재판매 및 DB 금지


총 8편의 비디오 작품은 딥티크(Diptych) 형식의 스크린 배열로 서로 작용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시와 낭송은 반복되고, 정치적 선언은 명확하며, 자연물을 수집한 드로잉과 유물은 상징처럼 배치된다.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려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난다. 관객에게 사유의 시간을 건네기보다는, 명확한 관점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는 구조다.
"제가 로큰롤을 해온 지가 벌써 반세기가 되었는데 이제 만 78세의 나이에 저는 그래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거든요. 그래서 세계 이런 독재 정권들에 저항도 하고 싶고 여러 가지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스테판과 계속 작업을 하면서 이런 것들을 모두 시도를 해 나가고 있는 것이고요. 근데 저는 사실 굉장히 분석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애처럼순수한 창작을 하고 싶다는 열의에 차서 그냥 할 뿐입니다."(패티 스미스)
패티 스미스는 여전히 '혁명'을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강렬하고 단단하며, 육필 노트와 드로잉, 사운드 조각, 멸종 동물의 흔적들은 진정성 있는 작업임을 증명한다.

그러나 비디오와 사운드, '혁명'이라는 단어는 이제 무거운 울림보다는 그저 흐르는 시간처럼 인식된다. 기후 위기와 재난이 일상이 된 현대인에게, 결국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것은 이름이다. '패티 스미스'라는 존재가 전시 전체의 동력이자 이유다. 문제는 그 이름이 오늘의 관객에게 얼마나 새롭고, 또 개인적으로 의미 있게 다가오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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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스테판과 패티 스미스가 피크닉 4층 정원 공간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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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패티 스미스가 직접 한글로 쓴 문구.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는 한장 씩 가져갈 수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피크닉 4층 정원에는 한국 비무장지대(DMZ)에서 채집한 장소 특정적 설치 신작도 있다. 드로잉 작품 아래 작은 돌멩이가 누른 전단지는 캠페인 문구를 담은 '삐라'처럼 배치돼 있으며, 관객이 한 장씩 가져갈 수 있다. 패티 스미스가 직접 쓴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는 한글 메모와 사인이 함께 적혀 있다.

이번 전시는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수년간 협업의 결실이다. 이 그룹의 창립자인 스테판 크래슬러(Stephan Crasneanscki)와 스미스는 약 10년 전 비행기 안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예술과 문학, 소리와 언어를 넘나드는 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 내한해 직접 설명에 나선 패티와 스테판은 '피크닉 공간' 전시에 완전 만족한 모습이다.
 
"제 책 '저스트 키즈'에서 보여주듯이 한편으로는 아티스트와 그리고 예술 창작 과정 그 자체를 좀 기념하고자 하는 의미도 이 전시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각 층에는 우리 인류가 모두 직면해 있는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더불어서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로서 산다는 것에 가지고 있는 어떤 무게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또 함께 보여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전시가 모든 세대의 분들에게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제가 노래를 하던 시 낭독을 하든 드로잉을 하던 간에 결국은 정서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관람객들과 청중들과 소통한다는 측면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예전에 서울에서도 락 공연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저의 좀 다른 면을 서울에서 스테판과 함께 선보일 수 있게 돼서 대단히 기쁩니다."(패티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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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18일 오후 남산 피크닉에서 패티스미와 사운드워크컬렉티브 창시자 스테판과 피크닉 김범상 대표가 한자리에 앉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2025.04.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가 서울에 올 수 있었던 데는 한 개인의 오랜 팬심이 큰 역할을 했다. 피크닉 김범상 대표는 1995년 뉴욕에서 열린 패티 스미스의 시 낭송 공연을 단 몇 줄 차이로 보지 못했다. 그 아쉬움이 30년이 지나, 자신이 만든 공간에 직접 '전설'을 초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래된 열정의 잔광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전시일 수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패티 스미스의 이름을 다시 검색하게 된다. 1988년작 ‘피플 해브 더 파워(People Have the Power)’를 들으며 전시를 곱씹게 된다. 전시는 7월20일까지. 관람료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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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피크닉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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