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사라질 섬, 250년 된 나무…이명호가 사진에 담은 존재와 부재

2026.10.29

갤러리현대서 8년 만의 개인전 ‘(no)thing’

기후위기 키리바시·덕수궁 회화나무 신작 30여 점

사진 속 형상 지우며 사라지는 것과 남는 것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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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명호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태평양의 섬나라 키리바시. 해수면 상승으로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 곳이다. 사진작가 이명호는 이곳의 바다와 맹그로브 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인화한 사진에서 나무와 수평선의 형상을 칼로 긁어냈다.

사라진 형상은 오히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되묻게 한다.

나무 뒤에 거대한 흰색 캔버스를 세우는 ‘사진-행위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명호가 이번에는 사진 속 대상을 지우는 작업으로 존재와 부재의 관계를 탐구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는 이명호 개인전 ‘(no)thing’을 29일부터 12월 20일까지 개최한다. 2018년 이후 8년 만에 열리는 갤러리현대 개인전으로, 사진과 대형 캔버스 등 근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기후변화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태평양의 섬과 수백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나무를 통해 서로 다른 시간의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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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명호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1층 전시장에서 만나는 ‘키리바시’(2026) 연작은 사라질지 모르는 미래의 풍경을 담았다.

이명호는 현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쓰러진 나무에 야자 섬유를 성글게 엮은 반투명 구조물을 설치했다. 그 사이로 바다와 맹그로브 나무가 비쳐 보인다. 풍경을 완전히 가리지도, 온전히 드러내지도 않는 방식이다.

작가는 키리바시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 자연환경만은 아니라고 본다. 바다와 나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과 공동체의 기억도 위협받는다는 의미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사진 속 풍경을 직접 지워낸 작품을 선보인다. 수술용 메스와 건축용 칼로 인화된 사진의 나무와 수평선을 긁어냈다. 형상이 사라진 자리에는 종이 표면의 물리적 흔적만 남았다.

사진은 대상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매체다. 그런데 이명호는 기록된 대상을 다시 지워낸다. 사라진 자리를 통해 오히려 존재했던 것의 의미를 드러내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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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명호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2층에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헤리티지’(2024~2026) 연작의 주인공은 서울 덕수궁 선원전 터에 남아 있는 약 250년 된 회화나무다.

역대 왕의 어진을 모셨던 선원전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를 거치며 여러 변화를 겪었다. 건축물은 사라졌지만 나무는 그 자리를 지켰다.

이명호는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회화나무를 촬영하고, 사진 속 나무의 형상을 다시 긁어냈다. 나무가 있는 사진과 사라진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며 같은 장소에 축적된 시간을 환기한다.

특히 ‘Heritage…… #7_1’은 회화나무를 위에서 내려다본 이미지를 아홉 개의 캔버스에 펼쳐 보인 대형 작품이다. 현재 남아 있는 나무와 더 이상 볼 수 없는 과거의 풍경이 한 화면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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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명호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 제목 ‘(no)thing’은 괄호 안의 ‘no’를 포함하면 ‘없음(nothing)’, 제외하면 ‘있음(thing)’이 되는 말이다.

이명호는 “결국 드러내려 할수록 덜어내게 되고, 반대로 들어낼수록 더 많은 것이 드러나는 것, 나는 그 역설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 온 사진과 회화, 재현과 재연의 관계를 기후위기와 역사적 기억의 문제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편 사비나미술관에서도 이명호 개인전 ‘장막과 장면 사이 혹은 너머’가 12월 13일까지 열린다.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사진-행위 프로젝트’의 변화와 확장을 살펴보는 연구전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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