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나혜석, 붉은 글씨로 자신을 불러낸 이름 ‘羅’…101점 사진첩 첫 전면 공개

2025.09.25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 한국근현대미술전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유일한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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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사진첩 나혜석의 가족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빛바랜 흑백 사진 위에 붉은 글씨가 흔들리며 남아 있다. ‘羅(라).’ 나혜석은 사진 속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수전증으로 떨리던 만년의 손길이 남긴 이름표는, 붓보다도 절박하게 존재를 확인하려는 흔적이었다.

수원시립미술관(관장 남기민)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의 유일한 유품, '나혜석 사진첩'(101점)을 첫 전면 공개한다. 오는 26일 개막하는 한국 근현대미술전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에서다.

이번 전시에는 나혜석을 비롯해 박래현·박수근·배운성·백남순·백영수·서진달·임군홍·이응노·이종우·이중섭·장욱진·천경자 등 13인의 작품 55점이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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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수원시립미술관이 소장품이 나혜석의 사진첩을 공개했다. 2025.09.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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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사진첩 좌)의제 이현준, 나혜석, 여식 우)하얼빈에서 나혜석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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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사진첩 (내지)김부부 김나열 김선 김우영씨 나혜석(서명).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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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수원시립미술관에 나혜석 사진첩이 전시되어 있다. 2025.09.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나혜석의 사진첩은 2016년 수원시립미술관의《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전시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유족의 기증으로 미술관에 소장되었습니다. 현재 전해지는 사진은 96장입니다. 두 장의 풍경 사진을 제외하면 상당수는 인물 사진이며, 주요 촬영 시기는 김우영의 일본 유학 시기부터 나혜석이 해인사에 머물던 1930년대까지 분포합니다. 그러나 사진들은 연대기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고 명확한 범주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사진첩은 과학적 보존처리와 그 과정의 기록, 복제본 제작과 관련 연구를 거친 결과입니다. 이 과정에서 1928년 나혜석의 프랑스 체재기 사진과 해인사 여행 사진이 수집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첩의 제작 배경과 사진 속 인물들과 관계 그리고 장면들이 남겨진 맥락은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이 자리가 그 공백들을 메워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수원시립미술관)
◆나혜석의 흔적…‘한 예술가의 사진첩’
2017년 유족 기증으로 미술관에 들어온 사진첩은 최근 2년간 상태 조사와 보존 처리, 영인본 제작, 기초 해제 연구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발굴된 장면과 서사가 이번 전시를 통해 확장됐다.

가죽 표지와 검은 바탕지 48면에 96장의 사진과 101건의 자필 설명이 남아 있다. 이 사진첩은 나혜석이 생애 후반부, 건강이 악화되던 시기에 정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편 김우영의 일본 유학 시절부터 해인사에 머물던 1930년대까지의 기록이 뒤섞여 있고, 두 장의 풍경을 제외하면 대부분 인물 사진이다. 그중 많은 부분은 가족의 모습으로, 나혜석이 끝내 놓지 못했던 그리움과 애틋함을 증명한다.

전시장에는 김우영 부부의 초상, 아이를 안은 가족사진 등 흑백 장면들이 펼쳐진다. 붉은 글씨로 남겨진 이름표는 기억의 표식이자 상실의 증거다. 사진첩 앞에서 관람객은 나혜석이 끝내 확인하고자 했던 사랑과 삶의 무게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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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_자화상(여인초상)_1928년 추정_캔버스에 유화물감_89x76cm_수원시립미술관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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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수원시립미술관 '흐르는 마음, 머무는 순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흐르는 마음, 머무는 순간
전시 제목인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은 나혜석의 사진첩을 은유한다. 사진 속에 붙잡힌 순간들은 오래 머무르지만, 그 속의 마음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다른 감정들과 만나 울림을 만든다.

동시에 이 제목은, 작가들의 시선이 오래도록 정박했던 화폭과 그 위로 유영하는 복합적 감정을 드러낸다. 전시는 네 개의 장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 장 ‘한 예술가의 사진첩’에서는 사진 원본과 연구 성과, 보존 과정까지 공개해 아카이브가 전시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번째 장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평범한 순간으로부터’는 가족을 창작의 원형으로 삼은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등의 작품을 통해 나혜석의 그리움을 잇는다.

세 번째 장 ‘여정의 어딘가에서’는 세계 일주와 해인사 여행 등 나혜석의 여정을 따라가며, 배운성·백남순·이응노의 작업을 교차시킨다.

마지막 장 ‘나를 잊지 않는 행복’에서는 여행을 통해 예술적 변화를 추구한 박래현과 천경자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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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성, 가족도, 1930-35년_캔버스에 유화물감_ 140×200cm_ 대전프랑스문화원 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그룹 몬스타엑스(MONSTA X)의 민혁이 오디오가이드로 참여했다. 나혜석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소개하며, 관람객은 QR코드를 스캔해 개인 기기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남기민 관장은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관 소장 자원을 매개로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특별한 자리”라며 “개관 10주년을 맞아 뜻깊은 전시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여러 소장처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시는 2026년 1월 1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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