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국립농업박물관에서 만난 '앙부일구'…하늘로 농사의 때를 읽다[르포]

2025.06.17

16일 수원 국립농업박물관 현장 방문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

하늘 관찰하며 풍년 기원하던 선조들

해시계·별자리로 농사 작업 시점 결정

기획전, 9월 14일까지 3개월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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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박광온 기자= 지난 16일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올해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는 모습. 2025.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수원=뉴시스]박광온 기자 = "절기 따라 씨 뿌리고, 별자리 따라 낫을 들었다."

우리 선조들에게 하늘은 농사의 나침반이었다. 해가 뜨고, 달이 기울고, 별이 도는 그 흐름은 땅에서 일어날 모든 일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농부들은 하늘을 관찰하며 '앙부일구'(仰釜日晷)라 불리는 해시계를 통해 시간을 가늠했다. 절기를 짚어 농사의 타이밍도 놓치지 않았다.

시간과 계절을 읽어야 했던 사람들의 지혜는 지금도 유효하다.

뉴시스가 지난 16일 찾은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은 이 오래된 농사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했다. 국립농업박물관에서는 지난 13일부터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2022년 12월 문을 연 대한민국 유일의 농업 전문 국립 박물관으로, 조선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농업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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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지난 16일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올해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농업박물관 제공) 2025.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축만제(祝萬堤)와 농촌진흥청 구청사 등 한국 농업기술의 역사적 거점인 수원 서둔동에 위치하며, 농업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전시와 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박물관은 특히 최근 기후위기와 곡물 가격 급등, 식량안보 이슈가 커지는 가운데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방향성을 국민과 공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기획전은 그 메시지를 시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커다란 영상 화면 속 별자리가 천천히 움직이며 관람객들을 맞았다. 관람객은 마치 옛 농부가 된 듯 별을 따라가며 하늘과의 교감을 체험하게 된다.

1부 '하늘을 바라보다'에서는 하늘을 관찰하고 풍년을 기원하던 선조들의 세계관이 펼쳐졌다. '아득이 별자리 석판' '천상열차분야지도' 같은 유물을 통해 고대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천문기록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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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지난 16일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올해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농업박물관 제공) 2025.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기우제를 올리던 '농기'에는 용과 구름이 그려져 있었다. '천지신명'께 한 해 농사를 잘 돌봐달라고 기도하던 옛 선조들의 간절함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2부 '하늘에 물어보다'는 기획전의 중심 공간이다.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물론, 다른 국공립기관에서 빌려온 해시계 12점이 전시돼 있다.

앙부일구는 세 개의 용머리 받침대 위에 반구형 시계판을 얹고, 영침을 통해 태양의 그림자를 읽는 방식이다. 특히 한낮 정오 무렵 가장 정밀하게 작동하며 그 시각 농민들은 하루의 농사 작업 시점을 결정했다.

디지털 미디어아트와 결합된 앙부일구 전시는 옛 시간과 현대 기술이 교차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혼개통헌의' '아스트롤라베' 등 동서양의 천문기기도 함께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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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지난 16일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올해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농업박물관 제공) 2025.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3부 '하늘을 읽다'는 절기와 농업의 관계를 풀어낸 공간이다. '칠정산 내외편' '농사직설' '농가집성' 등 고전 속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역법과 절기에 맞춘 농사 흐름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

계절별 농사 도구와 '빈풍칠월도' '진주성도' 같은 회화작품은 절기의 미묘한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 '에필로그'는 디지털 체험 공간이다. 관람객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가장 가까운 절기를 확인하고, 해당 절기에 맞는 전통 농경 이미지를 스마트폰으로 전송 받을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농사의 '때'였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올랐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이를 통해 과거의 농업이 단지 노동의 역사만이 아니라, 자연과 시간을 읽는 지식의 역사였음을 말하고 있다.

오경태 국립농업박물관장은 "앙부일구는 농사의 시간을 정밀하게 조율해준 과학기술의 결정체"라며 "이번 전시는 농업이 지나온 길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전은 9월 14일까지 계속된다. 사라진 계절의 지식을 되새기고 싶은 이들에게, 수원 하늘 아래 '농사의 시간'이 다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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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뉴시스] 지난 16일 경기 수원시 국립농업박물관에서 올해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이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농업박물관 제공) 2025.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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