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손끝으로 남긴 안부, '이만 총총'…김환기·백남준 등 101명 미술인 편지
2025.06.03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8월8일까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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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신종섭에게 보낸 엽서, 1962.9.4.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만, 총총.”
편지를 마치며 바삐 남겼을 작별 인사가, 한 세기 예술가들의 삶과 마음을 담은 기록으로 되살아났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펼친 '이만, 총총: 미술인의 편지' 전시는 김환기, 백남준, 박서보, 이우환 등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101명이 남긴 편지를 만나볼 수 있다. 봉투, 엽서 등 136점을 선별해 그들이 나눈 문장 속 감정과 관계, 그리고 시대의 정서를 조명한다.
전시 제목 ‘총총(悤悤)’은 바삐 걷는 모습을 뜻하는 한자어이자, 별빛처럼 반짝이는 순우리말의 이미지로도 읽힌다.
박물관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총총’을 따라, 편지를 단순한 기록이 아닌 예술 아카이브로 재조명한다.
3개의 섹션으로 나뉜 전시는, 시대의 풍경과 미술인들의 인연, 그들의 자취를 따라간다.
1부 ‘시대를 말하는 글월’은 편지 봉투와 엽서를 연대순으로 전시하며, 필체와 우표, 종이의 질감 등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비춘다.
1927년 오지호가 친형에게 보낸 편지부터, 2014년 박서보의 친필 봉투까지, 한국 미술의 흐름을 편지의 외피로 따라가게 한다.
전시장에 울려 퍼지는 사운드 아카이브 '미술인의 편지'는 20세기 중반까지 존재했던 ‘전기수’ 개념에서 착안해 김기창, 오광수 등이 쓴 주요 편지 8점을 낭독 콘텐츠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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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이 이세득에게 보낸 편지, 1969 *재판매 및 DB 금지 |
2부 ‘인연을 띄우는 서신’은 미술인들이 가족, 제자, 동료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그들 사이의 애정, 존경, 미안함, 격려 같은 감정의 교차를 보여준다.
김환기가 제자 신종섭에게 “자네들은 훌륭한 예술가가 될 것일세”라고 전한 편지, 이우환이 선배 이세득에게 “고국에서 따뜻이 감싸주는 선생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했는지를 밝힌 글 등에서 그 진심이 묻어난다.
관람객은 전시실 중앙에 별처럼 매달린 편지들을 직접 펼쳐 읽으며, 그 관계의 결을 따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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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이 수도여자사범대학교 미술과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 1965 *재판매 및 DB 금지 |
3부 ‘편지 속 발자취, 총총’은 편지와 함께 원고, 아카이브, 작품 등을 함께 제시해 문장 뒤에 있는 예술가의 삶과 실천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968년 백남준이 '공간' 편집부에 보낸 ‘뉴욕단상’ 친필 원고와 그의 서명, 기호 등이 담긴 자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 전 백남준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1968~77년 평론가 오광수가 조각가 김청정에게 보낸 25통의 편지는 당시 부산 지역 미술계의 흐름과 단체 활동의 면면을 드러낸다. 또 장우성이 서예가 원충희에게, 하인두가 시인 김규태에게 보낸 편지, 백남순이 강정식에게 보낸 연하장 등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수집된 자료들도 함께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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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기가 황주리에게 보낸 편지,1994.4.26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장에는 수신인·발신인별로 편지를 검색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가이드도 마련되어 각 편지에 대한 해제와 설명을 통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김달진 관장은 “편지는 가장 사적인 동시에 시대를 관통하는 기록”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인들의 일상에 다가가고, 그들의 문장과 관계에서 한국 미술사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8월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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