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아트클럽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독립문' 쓴 김가진을 아시나요?
2025.04.11
경기도박물관, '광복80 –합合' 특별전 1부 11일 개막
독립전쟁 투신 후대 인물들 작품 120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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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 초상(1908). 경기도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우뚝 선 너의 몸, 바라는 게 없는 듯하나, 바짝 마른 너의 몸, 걱정 담긴 듯하구나. 하늘에 닿는 홍수의 소용돌이에서, 누구와 배를 함께 탈까. 재야와 정부에서 백발만 머리에 가득하구나.(광무 9년(1905) 동지에 육십 늙은이 동농)'
일본 화가 덴카이(田慶)가 유화로 그린 '김가진 초상'(1905년, 71.4×105.5cm, 동농문화재단 소장)을 본 김가진(1846~1922)이 초상화에 스스로 지은 시는 대한제국의 당당함 속에 을사늑약 이후 깊게 드리운 망국(亡國) 근심을 전한다.
대한제국 2등 칙임관 대례복을 입고 있는 김가진의 초상화는 조선왕조에서 황제국인 대한제국의 수립을 꽃과 색, 훈장으로 주체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금사(金絲)로 수놓은 활짝 핀 무궁화가 4개, 흰색 가죽장갑을 끼고 있는 손과 흰색 장식털을 두른 대례모, 오른쪽 가슴에는 훈2등 팔괘장, 목 아래에는 훈3등 팔괘장, 왼쪽 가슴에는 황제망육순등극10주년기념장을 비롯해 3개의 기념장을 패용하고 있다. 실제 '고종실록'에도 김가진을 1901년 훈3등, 1905년에 훈2등에 서훈해 팔괘장(八卦章)을 하사한 기록이 있다.
1886년(고종 23년) 41세에 문과병과에 급제한 김가진은 1887년(고종24)에 주차일본국서리판리대신(駐箚日本國署理辦事大臣)으로 임명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공사관의 판사 대신으로 승진하여 1890년까지 일본에서 4년간 주일공사관의 참찬관과 공사로서 조선의 자주외교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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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진이 직접 쓴 한글 '독립문'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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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김가진 :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지금은 잊힌 인물이 되고 있지만 그의 흔적은 '독립문'에 남아있다. '독립문' '獨立門'. 청나라로부터 조선의 자주독립을 대내외에 표방한 상징으로 김가진이 한글 한자로 직접 쓴 것이다. 독립문 완공 후 김가진이 ‘제국독립문(帝國獨立門)’이 새겨진 먹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 한글에 대한 선각자적인 인식과 면모를 보여준다.
독립신문 1898년 1월 25일자 기사다. “황해도관찰사 김가진씨가 해주 먹판을 금범에 새로 만들어 먹에 박아서 전국에 반포하였는데, 그 먹 전면에는 ‘제국독립문帝國獨立門’이라 박아 도금하였고, 후면에는 독립문을 온통 모본하여 박고, 국기와 독립문에는 또한 도금을 하였더라. 물건에까지 이렇게 판각하였으니 김씨의 마음에 독립 두 글자를 사랑하는 것을 깊이 치사하노라. 전국 인민이 일심으로 애국하여 독립 두 글자를 생각하기를 이 먹에 다 각한 것과 같이 함을 우리는 바라노라.”
김가진은 1918년 창립된 미술단체인 서화협회(書畫協會)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안중식·조석진·오세창 등 예술인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이 단체는 서화 협회전 개최, '서화협회회보' 발간 등을 통해 전통 회화를 계승하면서 주체적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다. 김가진에게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망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치열한 고민과 독립을 향한 간절한 염원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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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이 김가진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2025.04.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번 전시는 김가진과 후손들의 다양한 관계 인물망을 통해 개인 → 가족 → 대한민국의 역사가 독립과 통일로 하나 됨을 실증하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이 '광복80 –합合' 특별전 3부작 중 제 1부인 '김가진 :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를 펼친다.
이동국 관장은 "김가진의 시문(詩文)과 글씨, 사진, 그림을 중심으로 충절가문, 독립전쟁에 투신한 동시대와 후대 인물들의 작품 120여 점을 종횡, 대각으로 그물망처럼 엮었다"고 밝혔다.
오는 11일 개막하는 이 전시는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이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획됐다.
'합(合)'을 모토로 독립완성과 통일성취의 미래를 역사에서 찾는 3부작 특별전을 연중 개최한다. '김가진' 전시에 이어 '여운형 : 남북통일의 길'(7.17~10.26), '오세창 : 문화보국'(11.27~‘26.3.8)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출범, 1910년 한일강제병합, 1919년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945년 광복과 1950년 6.25전쟁, 그리고 남북분단으로 2025년 오늘날까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때 ‘광복80-합合’특별전 3부작은 역사 변곡점의 중심인물인 김가진, 여운형, 오세창의 정예일치의 삶을 거시적(巨視的)인 역사 맥락에서 되새김질하여 남북통일의 미래를 설계해 내는 데 목적이 있다.(경기도 박물관)
이 전시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약육강식의 혼란이 거듭되었던 시대에 개화선각자이자 혁신관료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로(國老 큰 어른)로 독립전쟁에 투신한 동농 김가진(1846~1922)의 정치와 예술 일체의 세계를 동시대 인물들과 함께 조명했다.
이동국 관장은 "김가진이 남긴 수많은 글과 글씨에는 척사(斥邪)와 개화(開化), 제국(帝國)과 민국(民國), 망국(亡國)과 건국(建國), 중국으로부터의 독립(獨立)과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이중 과제가 교차하는 시대 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한 고뇌와 실천이 녹아있다"고 했다.
이동국 관장은 "예술에 있어서도 김가진은 서화협회 고문으로서 오세창, 안중식, 정학교 등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야말로 정치와 예술의 모든 길이 김가진으로 사통팔달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엮는 정신 줄은 다름 아닌 마음 그림, 즉 심화(心畫)로서 ’서(書)‘라고 하는 언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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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경기도박물관 〈광복80 – 합合〉 특별전 '김가진 :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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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경기도박물관 〈광복80 – 합合〉 특별전 '김가진 :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런 맥락에서 전시는 ▲충절혈맥(忠節血脈), 개화선각(開化先覺)으로 ▲대한제국대신(大韓帝國大臣) ▲예술과 정치의 일치(政藝一致) ▲임정국로(臨政國老)등 4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선보인다.
▲겸재 정선이 그린 '백운동도' ▲김윤식, 김옥균, 김가진, 서재필 등 개화파들의 합작 '시축' ▲김가진이 만든 '주일공사관 외교서신 암호규칙 초고와 완성본', '암호 편지' ▲명성왕후가 영의정 심순택에게 휘호한 '옥골빙심(玉骨氷心)'과 김가진이 쓴 '이병직 묘표' ▲김가진이 휘호한 '독립문' '獨立門' 현판 ▲일본 화가 덴카이의 '김가진 초상' ▲을사늑약 때 자결한 민영환을 추모하는 '김가진의 만장' ▲‘수죽향(水竹鄕)’ 건설을 노래한 자작 행서 '칠언시' ▲김가진이 직접 짓고 쓴 '대동단大同團 선언서' ▲김구가 김의한에게 써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시'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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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대동단 선언서. 단군(檀君)자손으로 ‘제2독립운동’의 혈전(血戰)을 천명한 〈대동단선언大同團宣言〉 *재판매 및 DB 금지 |
이 가운데 조선민족대동단이 1919년 11월 발표한 제2의 독립선언서로 불리는 '대동단선언'이 눈길을 끈다. 대동단은 3·1운동 직후에 조직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로 김가진이 총재를 맡았는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항일 무장조직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고, 대동신보(大同新報)등의 선전물을 비밀리에 제작·배포하여 민중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자 총재인 김가진은 1919년 10월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다.
당시 75세였던 김가진이 직접 짓고 쓴 이 선언서는 상해로 망명한 뒤 11월 28일에 일어난 이른바 ‘제2차 독립 만세 운동’ 때 배포되었다. 단군과 고구려의 자손인 우리 민족의 자주(自主)를 선포하고, 일본의 폭압을 규탄하며 혈전(血戰)을 불사하겠다는 내용이 의친왕 이강, 김가진, 전협, 백초월(白初月), 나창헌, 이신애, 염광록(廉光祿) 등 33인의 조선 민족 대표 이름으로 적혀 있다. 1921년 북간도군정서 고문으로 활동했던 그는 1922년 77세에 영면했다. 상하이 홍차오로 만국공묘에 안장됐다.
이번 전시는 김가진과 후손들의 다양한 관계 인물망을 통해 개인과 가족의 역사를 통해 대한민국 근대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조선 → 대한제국 → 일제강점 →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개화선각자와 혁신관료로 일이관지(一以貫之) 해낸 김가진이 청(淸)과 일(日)로부터 '독립'이라는 2가지 과제를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보는 더없이 중요한 기회다.
이동국 관장은 "민주공화주의자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백의종군하여 '조선민족대동단 선언'으로 독립전쟁 현장에 투신하는 김가진의 정예일치의 철학과 실천은 광복 80년 우리 앞에 놓여 진, 하지만 박약해질 대로 박약해진 남북통일 과제 해결의 등불"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광복회 후원으로 진행된다. 오는 25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특강이 열린다. 전시는 6월29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