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판소리 들으니 흑인 가스펠 떠올라”…티에스터 게이츠가 발견한 한국의 울림

2026.11.03

화이트 큐브 서울서 한국 첫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

한국 도자에서 발견한 ‘고요함’…흑인 노동의 역사와 연결

마르지엘라 롤러스케이트부터 음반 아카이브까지

“예술가는 복합적인 존재”…12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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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티에스터 게이츠가 3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 기자간담회에서 메종 마르지엘라 신발을 개조한 롤러스케이트를 들어 보이며 작품 ‘아프리카 정물들’(African Still Life)을 설명하고 있다. 2026.11.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명품 신발에 바퀴가 달렸다. 메종 마르지엘라 신발을 개조한 롤러스케이트다. 그 옆에는 아프리카 조각상과 도자기, 중국의 수석, 가나 국기가 놓였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티에스터 게이츠(Theaster Gates)가 자신의 삶을 압축해 놓은 정물 작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롤러스케이트 한 짝이 제 삶 전체를 요약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3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만난 게이츠는 작품 ‘아프리카 정물들(African Still Life)’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는 이 작품을 자신의 삶 전체를 담은 ‘작은 우주’라고 소개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조각상, 처음 사용했던 시노 유약으로 만든 도자 작품, 직접 연마한 수석까지 그가 살아오며 수집하고 만들고 경험한 것들이 한데 모였다.

게이츠의 한국 첫 공식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이 4일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도자와 조각, 음악과 아카이브를 넘나드는 그의 작업 세계를 보여준다. 전시장은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이자 음악을 듣고 서로 다른 문화를 발견하는 장소로 변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판소리와 소울 가득한 블루스까지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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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큐브 서울 게이츠 ‘'아프리카 정물들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의 미학, 한국 도공들의 기여 없이는 불가능”
게이츠에게 한국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그는 약 30년 동안 점토를 다뤄왔다. 일본에서 도예를 공부하던 시절부터 한국 도자에 관심을 가졌다.

“일본의 도예가들은 늘 한국에서 만들어진 도자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는 일본 도예의 역사에서 한국 도공들의 역할을 발견했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미학은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도공들의 놀라운 기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는 미국에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과도 연결됐다.

“오늘날 미국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흑인들의 노동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문화적 성취의 이면에는 이름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노동과 기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 미술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특징은 ‘고요함’이었다.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의 작업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 친구들은 굉장히 복잡한 것을 만들어내면서도 아주 단순해 보이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반면 미국 학생들은 단순한 것을 만들고도 대단히 복잡한 작업인 것처럼 설명하려고 했죠.”

그는 한국 친구들의 작업을 떠올릴 때마다 ‘고요함(quiet)’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절제되어 있었고, 조용했습니다.”

그 경험은 이번 전시에 선보인 벽면 도자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자연에서 가져온 형태들이 차분한 리듬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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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티에스터 게이츠가 3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게이츠는 한국 판소리에서 흑인 가스펠 음악과 닮은 울림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2026.11.03. [email protected]



◆판소리에서 발견한 흑인 가스펠의 울림
전시장 한쪽에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리스닝 공간이 마련됐다.

음반과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이곳은 미술 전시장보다 음악 감상실에 가깝다.

게이츠는 한국의 음악 문화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제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는 한국 보이그룹들이 가스펠 음악을 부르는 영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정말 소울이 넘칩니다.”

한국의 가스펠 가수들이 보여주는 감정 표현에도 주목했다.

그는 판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흑인 교회의 가스펠 음악을 떠올렸다고 했다.

느리게 시작해 점차 리듬이 쌓이고, 감정이 고조되다가 다시 가라앉는 음악의 흐름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설명이다.

“예술이란 하나의 순간을 관찰하고 그 순간에 반응하는 우리의 능력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이츠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순간을 ‘우정’이라고 표현했다.

“저는 우정을 찾고 있고,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연결을 찾고 있습니다.”

리스닝 공간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어린아이와 노인도 찾아와 음악을 듣기를 바랐다.

한국의 음악 전문가 곽 씨와 협력해 사운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자신이 수집한 음반들도 가져왔다.

“제 음반 컬렉션을 우정의 선물처럼 이곳에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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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ster Gates - 'African Still Life', White Cube Seoul, South Korea - 4 November - 18 December 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음반을 수집하는 건 누군가의 슬픔까지 떠안는 일”
게이츠의 작업에서 아카이브는 중요한 재료다.

그에게 수집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모으는 일이 아니다. 사물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함께 받아들이는 행위다.

그는 이번 전시에 소개한 음반 컬렉션의 사연을 들려줬다.

원래 소유자는 딩이라는 인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음반들은 집 지하실에 남았다. 당시 17세가량이었던 딸 밀리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빠져 있었다.

수많은 음반을 정리하고 목록을 만드는 일은 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음반을 골라 사 가려는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가족들은 이를 모욕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게이츠는 컬렉션 전체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음반을 옮기려 하자 밀리는 다시 슬퍼했다.

그는 음반을 곧바로 시카고로 보내지 않았다. 프랑스 아를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에 컬렉션을 선보이고 밀리에게 음반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이후 밀리를 시카고로 초대해 아카이빙 작업을 이어가도록 했다.

“이제 밀리는 제 여동생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수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컬렉션을 모은다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잃은 가족들이 지닌 감정적 무게까지 함께 떠안는 일입니다.”

음반은 소유자를 바꿨지만 그 안에 담긴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이츠의 작업은 그 기억에 새로운 관계를 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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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티에스터 게이츠가 3일 서울 강남구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 ‘아프리카 정물들’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수집한 음반과 아카이브가 예술 작품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026.11.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가는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게이츠는 미술시장이 예술가에게 요구해 온 태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 80년 동안 미술계는 마치 예술가들이 그림만 그리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오직 한 가지 작업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인식이 작품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이용돼 왔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보이면 사람들은 그 예술가가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들이 본래 복합적인 존재라고 강조했다.

음악과 패션, 건축과 디자인, 수집과 공동체 활동은 그의 작업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저에게는 자연이 필요합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이 필요하고, 정보가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관찰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연결을 발견할 때 작품이 탄생한다고 했다.

이번 서울 전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국 도자의 고요함과 흑인 음악의 리듬, 아프리카의 조각과 시카고의 기억이 한 공간에서 만났다.

“저는 서로 다른 것들이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의미를 갖게 되며, 또 어디에서 흩어지는지를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전시는 12월 18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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