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성수나무 갤러리, 화병 없는 집…임리하·라이언 고 2인전

2026.11.03

재개발 앞둔 성수 옛 공장 기숙사 건물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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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재개발을 앞둔 서울 성수동의 오래된 주택가. 아직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문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왔다. 손때 묻은 문손잡이와 장식 창살까지 실제 크기로 그린 그림이다.

서울 성수동 성수나무 갤러리는 오는 5일부터 12월 1일까지 임리하와 한국계 미국인 작가 라이언 고(Ryan Ko)의 2인전 'House without a Vase'를 개최한다. 두 작가가 처음 함께 제작한 공동작업도 공개한다.

전시가 열리는 곳은 과거 공장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기숙사 건물이다. 재개발을 앞둔 이 공간은 이번 전시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임리하는 갤러리 맞은편 주택가의 대문을 반투명한 실크에 실물 크기로 그렸다. 실크 앞뒤에 색을 입히는 배채 기법을 활용해 문 너머의 빛과 형상이 비치도록 했다.

그림 속 문에는 오래된 동네의 시간이 남아 있다. 관람객은 자신의 키와 손이 닿는 높이에서 문을 마주한다. 괘종시계가 있는 복도, 사다리가 놓인 방, 고양이가 잠든 다락방을 그린 작은 작품들도 선보인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살아온 작가에게 집은 하나의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기억이 쌓이는 곳이다.

라이언 고는 서른 살이 되어 처음 방문한 한국에서 만난 꽃들을 작품에 담았다. 적외선 카메라로 같은 꽃을 반복 촬영하고 이미지를 겹친 뒤, 사진 위에 아크릴 물감과 드로잉을 더했다.

분홍빛 코스모스가 피어난 풍경은 빨강과 주황, 초록이 뒤섞인 낯선 이미지로 바뀐다. 약 100점의 작은 꽃 작업을 한쪽 벽에 설치해 멀리서는 하나의 꽃밭처럼 보이도록 했다.

작업에는 어머니의 기억도 스며 있다. 작가는 과거 오키나와에 주둔했던 어머니가 남긴 사진 속 장소를 다시 찾아가 촬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이 기록하지 못한 시간과 기억을 탐색해 왔다.

두 작가의 첫 공동작업에서는 라이언 고의 꽃 사진과 임리하의 실크 회화가 겹쳐진다. 사진 위에 신체 이미지가 포개지면서 서로 다른 기억과 시선이 하나의 화면을 공유한다.

전시 제목 'House without a Vase'는 '화병 없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과 꽃을 담는 그릇의 관계를 통해 기억과 존재가 머무는 공간의 의미를 되묻는다.

전시를 기획한 박민경 성수나무 디렉터는 "재개발을 앞둔 옛 공장 기숙사를 공간으로 사용하는 성수나무에서 이들의 작업은 공간과 몸의 관계를 교차시킨다"며 "집은 모든 것을 보존하는 그릇이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과 존재가 머물 자리를 계속 마련하는 일임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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