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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개인전, 미술·소비·환상의 플랫폼…롯데뮤지엄 ‘프로토타입’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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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_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사진=롯데뮤지엄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작업 방식이 다양해진 시점에서 그간의 궤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회화 외에도 조각 등 다양한 형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롯데뮤지엄의 400여 평 전시장은 화가 옥승철(37)의 말을 실감나게 구현하고 있다. 15일 문을 연 옥승철 개인전 '프로토타입(PROTOTYPE)'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그리고 회화에서 조각·설치로 확장된 작업 80여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베이전이다.

이미 갤러리와 아트페어에서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한 옥승철의 첫 대형전이다. 전시명 ‘프로토타입’은 본래 대량 생산 전 단계의 시제품을 뜻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를 하나의 고정된 원형이 아닌, 계속해서 호출·변형될 수 있는 유동적 데이터베이스로 해석한다.

미술시장에서 익숙한 그의 도상이지만,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대형 흉상과 굵은 벡터 라인의 얼굴들은 대중성과 자본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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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재판매 및 DB 금지


◆초록빛 로딩 화면을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십자 복도’가 시야를 가른다. 벽과 바닥을 물들인 크로마키 초록 조명은 마치 영화의 로딩 화면처럼 현실과 가상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세 개의 섹션인 ‘프로토타입-1, 2, 3’중 어느 쪽부터 탐험할지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경로는 직선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원, 반복되는 순환 구조다.

◆세 개의 프로토타입
프로토타입-1: 높이 2.8m의 대형 조각 'Prototype'이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서 있다. 거울과 조명이 둘러싼 이 조각은 ‘기본값’이자 전시의 좌표 원점처럼 느껴진다.

뒤이어 증명사진을 모티프로 인물의 정체성을 변주한 'ID Picture', 거울을 이용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시각화한 'Outline'이 이어지고, 흉상에서 석고상, 평면 회화로 이어지는 'Canon' 시리즈가 ‘원본’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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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롯데뮤지엄,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재판매 및 DB 금지


프로토타입-2:헬멧과 고글을 쓴 인물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지만, 그 긴박함은 회화의 평면성 속에 갇혀 비활성화된 장면이 된다. 'Helmet'과 'Player'시리즈가 전하는 묘한 정적이다. 여기에 'Mimic' 시리즈가 더해져, 주변을 모방하며 정체성이 흐려지는 자아를 은유한다.

프로토타입-3: 반복을 약물의 내성에 빗댄 'Tylenol',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녹차를 소재로 경험의 차이를 드러낸 'Taste of green tea', 같은 달빛 아래서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는 'Under the same moon'이 이어진다. 그리고 끝에서 만나는 금박 'Trophy'가 첫 섹션의 대형 조각과 시각적 ‘수미상관’을 이루며 여정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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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2024, Oil on canvas, 150 X 150 cm. 사진 제공: 롯데뮤지엄 *재판매 및 DB 금지


"그가 그리는 얼굴들은 하나의 레퍼런스에서 연유하기보다는 애니메이션, SNS의 프로필 등, 수 많은 이미지 아카이브 속에서 수집된 환영들의 조합이다. 관객은 이 과장되고 과도하게 정제된 조각 모음을 마주하며, 그 안에서 익숙하면서도 기이한, 불쾌한 정서가 떠오른다. 이는 작가 개인의 ‘기억된 파편들’에 불과하지만, 정작 관객은 역사와 사회, 대중문화와 같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임을 인지한다. 작가는 독창성, 진정성, 몰입 등 예술을 구성해온 본질적 가치들이 디지털 이미지의 소비 구조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조망한다."(롯데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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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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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철 '프로토타입'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만화라는 환상의 세계
옥승철은 디지털 이미지의 ‘가벼움’과 예술 작품의 ‘무거움’이 맞부딪히는 순간을 포착해왔다. 만화, 영화, 게임 속 끝없이 복제되는 캐릭터 이미지를 ‘원본’ 삼아, 컴퓨터 벡터 좌표에서 출발해 캔버스·물감 같은 전통 매체로 출력한다. 그는 회화를 과거를 복원하는 수단이 아닌, 언제든 조각·설치로 확장될 수 있는 ‘시작점’으로 본다.

 하지만 ‘프로토타입’의 여정은 결국 만화라는 환상의 세계로 귀착된다. 초록빛 복도를 지나 대형 흉상들이 늘어선 가상공간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듯한 연출 속에서 만화적 도상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그 이미지들은 때로 귀여움으로, 때로 허무함으로 다가오지만, 그 환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해체하려 한 디지털 이미지의 문법과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전시는 해체와 재구성의 경계에 서 있지만, 끝내 자신이 속한 세계의 일부로 돌아오는 작품들의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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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뮤지엄이 그간 셰퍼드 페어리, 장 미쉘 바스키아, 케니 샤프, 댄 플래빈, 다니엘 아샴 등 해외 유명 작가 전시에 집중해온 흐름 속에서, 프리즈서울 기간에 맞춰 젊은 한국 작가 옥승철을 단독으로 조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롯데라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뮤지엄 특성상, 이번 선택은 단순한 큐레이션이 아니라 굿즈·대중성·전시 콘텐츠를 맞물린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전략으로도 읽힌다. 초록빛 복도와 대형 흉상, 그리고 굵은 벡터 라인의 만화적 얼굴들은 전시장 밖에서 곧바로 상품 이미지로 확장된다. 실제로 한정판 소장품으로 제작된 굿즈는 출시와 동시에 무섭게 팔려나간다.

그러나 만화적 도상과 캐릭터성에 기댄 작업이 장기적으로 어떤 예술적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지는 여전히 질문으로 남는다. 같은 만화 캐릭터를 다루더라도 다니엘 아샴이 조각과 설치를 통해 시간과 물질의 층위를 파고드는 것과는 또 다른 궤적이기에, 옥승철의 ‘프로토타입’이 다음 단계에서 어떤 변화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이 전시 '프로토타입'은 미술과 소비, 환상과 자본이 어떻게 같은 플랫폼 위에서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0월 26일까지, 관람료 일반 2만 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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