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40년 미술관 지킨 경비원도 “가장 특별”…하종현의 ‘마대 추상’ 美서 통했다

2026.09.23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서 북미 첫 대규모 회고전

1960년대 실험미술부터 ‘접합’·2026년 신작까지

SK·포도뮤지엄 전시 리드 파트너로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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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40년 넘게 일한 미술관 경비원도 자신이 본 작품 중 가장 특별하다고 하더군요.”

이소영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 관장이 전한 한국 단색화 거장 하종현(91)의 작품에 대한 현지 반응이다.

마대 뒷면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으로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한 하종현의 북미 첫 대규모 회고전 ‘하종현: 회고전(Ha Chong-Hyun: Retrospective)’이 오는 25일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서 개막한다. 2025~2026년 제작한 신작을 포함해 회화 50점을 선보인다.

40년 넘게 미술관에서 수많은 작품을 지켜본 사람까지 멈춰 세운 것은 하종현 특유의 물성이다. 거친 마대 틈을 뚫고 나온 물감, 밀고 누른 흔적이 고스란히 화면에 남아 있다.

“하종현의 작품은 우리가 추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재정의한다.”

이 관장은 하종현의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 단색화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60년이다. 신문지와 철조망을 끌어들인 1960년대 실험미술부터 ‘배압법’, 대표 연작 ‘접합’, 아흔을 넘긴 지금도 이어지는 신작까지 한국 전후 추상미술의 한복판을 관통해온 하종현의 예술 세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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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 〈Conjunction 25-19〉 2025.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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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20일 오전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하종현 화백이 휠체어를 타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5.03.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관장은 “작가가 어떻게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해왔는지,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라는 현실을 작품에 어떻게 구현해왔는지를 이번 전시가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하종현에게도 이번 전시는 ‘회고’보다 ‘현재’다. 하 화백은 “아흔이 넘은 이 시점에 미국 미술의 문화적, 예술적 중심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갖게 된 것은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이번 전시는 과거의 유산이 아닌 지금도 작업실에서 땀 흘리며 그려 나가는 나의 현재진행형 흔적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어 무척 뜻깊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하종현을 ‘단색화’라는 하나의 미술사적 범주에서 꺼내 한국 전후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다시 바라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35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난 하종현은 한국전쟁 이후 앵포르멜과 기하추상, 실험미술, 단색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을 관통해왔다.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창립 멤버로 참여해 신문지와 철조망 등 일상의 재료를 작품에 끌어들였다. 1974년부터는 미군이 군량미를 담았던 거친 마대를 캔버스로 삼았다. 마대 뒷면에 물감을 바르고 밀어 앞면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독창적인 ‘배압법(背押法·back-pressure method)’을 발전시켰다.

물감을 캔버스 앞면에 칠하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말 그대로 뒤집었다. 마대의 성긴 틈을 뚫고 나온 물감은 압력과 저항의 흔적을 그대로 품었다. 작가의 신체적 행위와 시간까지 화면에 새겨졌다. 대표 연작 ‘접합’이 만들어진 방식이다.

이 같은 낯선 물성은 현지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23일 언론 사전 공개 행사에서 기자들은 화면 가까이 다가가 작품의 표면을 살피며 “사진으로 봤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시각적으로 대단하고 독특한 질감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관장은 “미국 관람객에게 놀랍고 새로운 한국 거장의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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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설치전경.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초빙 큐레이터로 참여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하종현을 단색화라는 하나의 미술사적 범주에 한정하기보다, 전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회화의 경계를 실험해온 작가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완성한 ‘접합 25-19’를 비롯해 올해 제작한 ‘접합 26-14’, ‘이후접합 26-503’ 등 최신작도 공개된다. 아흔을 넘긴 지금도 과거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화면을 실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는 하종현의 작업을 글로벌 전후 추상미술의 흐름에도 놓는다. 반복과 물성에 천착했다는 점에서 서구 미니멀리즘과 접점을 갖지만, 재료에 가해진 압력과 신체적 노동, 저항의 흔적을 화면에 남긴다는 점에서는 다른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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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가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은 고대부터 동시대까지 2만여 점의 아시아 및 아시아계 미국 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아시아 미술 전문 기관이다. 한국 미술을 전담하는 학예 부서를 두고 1970년대부터 한국 미술을 연구·전시해왔다. 올해는 서울시와 샌프란시스코 친선결연 50주년이기도 하다.

이번 하종현 회고전에는 SK와 포도뮤지엄(총괄디렉터 김희영)이 전시 리드 파트너로 참여해 후원한다. 포도뮤지엄은 세계 주요 문화예술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 미술의 국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전시는 2027년 1월25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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