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소녀’ 너머 감각의 폭발…아야코 록카쿠, 토탈미술관 첫 대규모 전시
2025.12.02
손끝의 제스처 회화 신작 24점· 대형 조각 최초 공개
전시 도시에서 정주 작업…평창동 머물며 한국서 직접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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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일 아야코 록카쿠 작가가 토탈미술관에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5.12.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일본의 스타 작가 아야코 록카쿠(43)가 한국에서 머물며 제작한 신작 전시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선보인다.
‘귀여운 여자 아이’ 이미지로 알려진 그의 회화는 국내 경매 시장에서 수억원대에 낙찰되며 MZ컬렉터 시장을 흔들어온 대표 사례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동안 상업갤러리에서 보여온 ‘카와이(kawaii)’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토탈미술관은 “이번 전시는 소녀의 형상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추상 제스처의 세계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분홍빛, 파스텔 톤, 유년의 질감은 화면 깊숙이 살아 있으며, 귀여움의 정서는 방식만 달라졌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는 5일 개막하는 전시는 회화 신작 24점과 국내 최초 공개되는 대형 조각 2점을 포함해 총 40여 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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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일 아야코 록카쿠 작가가 토탈미술관에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5.12.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감각으로 다시 나를 본다”
2일 미술관에서 만난 록카쿠는 작품 속 소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 있었다.
수줍은 표정과 장난스러운 기운이 자연스레 배어 있었고, 작은 체구에서 폭발하는 색채 감각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 달 이상 한국에 머물며 평창동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그는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도시에서 직접 ‘정주’하며 작업하는 스타일로 이번 서울 전시도 그 방식 그대로를 유지했다.
일본인이지만 독일 등 유럽에서 주로 생활해온 그는 “유럽에서는 늘 ‘이방인’이라는 감각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안에서의 나를 다시 보게 된다”며 “감각의 결이 자연스럽게 맞물린다”고 말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서울 체류도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한국 음식은 거의 다 잘 맞아요. 특히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죽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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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탈미술관 아야코 록카쿠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유년성의 전환…이미지에서 리듬으로
이번 전시의 핵심은 ‘유년성의 전환’이다. 초기 작업을 상징해온 귀여운 소녀 캐릭터보다 색채의 진동과 신체적 리듬으로 채웠다.
19살 때 공원에서 사람들 앞에서 그림을 그린 경험은 여전히 그의 예술을 지탱하는 중요한 장치다.
“사람들이 보고 있어도 괜찮아요. 오히려 기운이 손끝으로 들어와요.”
그의 작업 방식이 ‘드로잉’보다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록카쿠의 회화는 모두 손끝에서 출발한다. 골판지 위에 물감을 밀고, 문지르고, 긋는 행위는 기법이 아니라 그가 세계와 접속하는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그는 “물감이 묻은 손가락이 골판지를 문질렀을 때의 감각에 빠져 그림을 시작했다”며 “손으로 그리는 건 처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물감의 물성이 더 진하게, 더 직접적으로 들어와요”라고 말했다.
작가의 손가락은 가늘고 말랑하지만, 그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색의 에너지는 압도적이다. 붓처럼 쓰는 그의 손끝을 직접 만져보니 놀랍게도 손은 거칠지 않았고, 부드러웠다. 난폭하게 색을 밀어 올리는 화면과 달리, 그 손의 촉감은 더 어린 감성에 가까웠다. 그 대비가 오히려 록카쿠 회화의 핵심, ‘감각의 충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줬다.
스케치 없이 바로 화면을 밀어 올리는 작업 과정은 완성된 결과보다 ‘지속되는 생성의 순간’을 더 많이 품는다. 작업의 시간과 행위, 그리고 관객의 기운까지 뒤섞이며 그의 회화는 ‘보여지는 것’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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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아야코 록카쿠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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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아야코 록카쿠 브론즈 조각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회화가 조각이 되는 순간…흙과 손의 충돌
국내 최초 공개되는 대형 조각 2점은 회화적 제스처가 3차원으로 확장된 장면이다.
흙을 바르고, 긁고, 쌓아 올린 조형물은 생명체인지, 풍경인지, 감정의 응결인지 모호한 존재로 자리한다.
“손으로 흙을 만지면 새로운 생명 같은 감각이 계속 올라와요.”
미술관 유리창 너머 구름의 이미지를 모티프로 한 조각은 상상의 동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물주물한 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회화에서 조각으로의 이동이 자연스럽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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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코 록카쿠는 누구인가
비제도권 출신으로 스트리트에서 그림을 시작한 록카쿠는 GEISAI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에 의해 발굴되며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판지와 손가락을 이용한 즉흥 제스처, 유년의 감정·동화적 세계를 기반으로 작업해왔으나 최근에는 형상보다 색·리듬·신체적 움직임 중심의 추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 롱뮤지엄 등 대형 미술관 전시는 그의 회화가 몰입적 감각체험으로 확장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토탈미술관 신보슬 책임큐레이터는 “최근 록카쿠의 화면에서 형상은 점차 사라지고 색채와 제스처가 중심이 된다”며 “이는 단순한 스타일 변화가 아니라, 회화가 세계를 재현하는 행위에서 세계와 감각을 다시 구성하는 사건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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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아야코 록카쿠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감각으로 들어가는 문턱…핑크 카펫
전시장 입구의 핑크 카펫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관람자가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시각보다 먼저 감각의 층이 반응하도록 구성된 장치다. 그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관람자는 이미 록카쿠의 색채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전시는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호흡이 확장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전시 기간 동안 SF 소설가 김초엽은 록카쿠의 색채에서 영감을 받아 신작 초단편을 발표하고, 미학자 하선규는 회화·신체·혼돈의 미학을 해석하는 비평문을 더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호흡을 품어가는, 살아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는 취지다.
이번 전시는 만화같은 카와이(귀여움)미학을 전승하지만, 그를 발굴한 무라카미의 매끈한 표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록카쿠의 세계는 손맛, 물성, 촉각적 흔적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감각의 지층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그가 세계와 연결되는 가장 원초적 방식, 순수한 감정이 감각의 회로를 다시 열어주는 창구에 가깝다.
신체의 파동이 화면을 밀어 올리고, 경계 없이 드글거리는 색채는 호흡의 흔적처럼 스며든다. 그렇게 응결된 감각의 표면, 귀여운 그림앞에서 관람자는 설명보다 먼저 반응하게 된다.
어쩌면, 이 귀여움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세상을 가볍게 구원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전시는 2026년 2월 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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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아야코 록카쿠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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