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세잔 '막내 아들'·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서울에?”

2025.11.13

국내 최초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 피카소 작품 등 120점 전시

예당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 내년 1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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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복숭아’.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국내 최초로 오랑주리 미술관의 소장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국립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2016년 ‘오르세 미술관전’ 이후 10년 만에 서울을 찾은 프랑스 명작들의 귀환이다.

전시에는 두 미술관이 엄선한 유화 51점과 관련 사진·영상 70여 점이 소개되며, 작품 운송을 위해 비행기 4대가 투입될 만큼 규모와 위상을 자랑한다.

전시는 ‘야외에서’, ‘정물에 대한 탐구’, ‘인물을 향한 시선’ 등 총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두 화가의 작품은 주제별로 나란히 배치되어 감정과 구조, 빛의 결이 서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비교할 수 있다.

폴 세잔(1839~1906)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는 인상주의의 빛 속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발견한 화가들이다.

르누아르는 따뜻한 색채로 인간의 온기를 그렸고, 세잔은 형태와 질서를 탐구하며 회화의 논리를 세웠다. 한쪽은 감정의 화가, 다른 한쪽은 사유의 화가였지만 둘 다 ‘빛’을 믿었다. 그들에게 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는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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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 전경. 예술의전당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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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막내아들 ‘광대 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 예술의전당.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화가의 흑백 초상사진이 서로를 마주 본다. 그 아래,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1885~1895)과 르누아르의 막내아들을 그린 ‘광대 옷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1909)가 관람객을 맞는다. 가족을 향한 시선이자, 서로 다른 예술 철학의 결정체다. 세잔은 감정을 절제한 정밀한 묘사로 존재의 구조를 해석했고, 르누아르는 빛의 떨림 속에 사랑의 온기를 담았다.

세잔의 ‘화가 아들의 초상’과 르누아르의 ‘놀이 중인 클로드 르누아르’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세잔의 눈빛엔 고요한 응시가, 르누아르의 화면엔 따뜻한 숨결이 있다. 두 그림은 마치 서로 다른 온도의 빛처럼, 사유와 감정의 양극을 오가는 회화의 대화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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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사과와 비스킷’. 예술의전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눈길을 사로잡는 세잔의 '사과와 비스킷’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세잔의 사과는 성경 속 아담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 중 하나로 불린다. 그는 전통적 원근법을 무너뜨리고 여러 시점을 하나의 화폭에 담는 ‘다시점’ 기법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이 작은 정물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20세기 회화 혁명의 씨앗이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가 그 사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결국 세잔이 “모든 것은 원통, 구, 원뿔로 이루어진다”고 말한 그 신념의 예언적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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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 예술의전당. *재판매 및 DB 금지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작품은 르누아르의 대표작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가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그린 여섯 점의 변주 중 한 점으로, 음악과 회화가 교차하는 순간의 따스함이 물결친다. 오르세미술관 소장 작품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받지만, 이번에 전시된 것은 오랑주리미술관이 소장한 유화다. 르누아르의 손끝에서 피어난 빛의 떨림은 관람객의 시선과 함께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전시의 말미에는 피카소의 작품이 등장한다. 그는 “세잔은 우리의 아버지”라 말했고, 르누아르의 색채에서 인간미를 배웠다. 피카소의 ‘천을 두른 누드’는 르누아르의 여성 인체와 유사한 형태를 지니고, ‘대 정물’은 세잔의 ‘사과와 비스킷’의 구도적 흔적을 품고 있다. 세잔의 구조주의적 회화는 입체주의를 낳았고, 르누아르의 따뜻한 감성은 피카소의 고전 회귀에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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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진 예술의 계보, 그 빛의 전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세잔과 르누아르의 붓끝에서 피어난 ‘빛의 예술’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감동을 전한다. 전시는 2026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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