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멈추면, 보인다…구자승의 살아있는 정물[박현주 아트에세이 ③]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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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화랑에서 20년 만에 전시하는 구자승, 와인박스위의정물 2022 Oil on canvas 91.0 x72-s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자두가 빛을 머금은 채 멈춰 있다.
파란 병, 흰 도자기, 나무 박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시간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빠르게 지나치면 볼 수 없는 색의 떨림, 공기의 결, 작가의 숨.
구자승의 정물은 ‘멈춤의 예술’이다.
그의 붓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사물의 표면을 그리면서도, 그 안의 빛과 그림자.
질감 속에 숨어 있는 시간의 결을 담는다.
썩지 않는 과일, 식지 않는 유리잔의 냉기.
그것은 사라진 생명 대신 남은 온기다.
“유한한 오브제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의 공간 속에 담는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치유의 언어다.
그림 속에서 사라진 것은 다시 태어나고, 상처는 온전해진다.
팔순을 넘긴 화백은 여전히 매일 붓을 든다.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의 말처럼, 구자승의 그림은 ‘살아 있는 정물’이다.
화면엔 여백이 많다.
그 여백은 동양 문인화의 ‘사유의 공간’이자, 서양 구도 안의 ‘멈춤의 자리’다.
‘정말 사람이 그린 게 맞을까?’
그 의심이 멎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멈추면, 보인다.
그의 정물은 존재에 대한 명상이다.
60년 동안 그는 세상을 재현한 게 아니라, ‘보는 법’을 다시 썼다.
멈춤은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붓으로 그린 회화가 아니라, 시간 그 자체의 형상이다.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의 층이 보인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그의 붓이 멈춘 그곳에서, 시간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림은 거창한 예술이 아니라 인생의 별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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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승, 자두 2023 Oil on canvas 91 x 72.7 cm-s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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