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붉은 실·검은 실로 잇는 삶과 죽음…시오타 치하루, 존재론적 귀환

2025.07.25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Return to Earth'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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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3년 만에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이 열린 가운데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작가가 내한하여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5.07.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삶과 죽음, 기억과 존재의 경계를 실로 짜 내려온 작가 시오타 치하루(Shiota Chiharu·53)가 한국 관객 앞에 다시 섰다.

25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시오타의 신작을 중심으로 구성된 개인전 'Return to Earth'를 개막했다. 이는 2022년 'In Memory'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한국 개인전이다.

현재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그는 프랑스 그랑팔레(2024), 일본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2024), 미국 ICA 워터셰드(2025)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가며 국제적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에서 소개한 주요 작품들을 한국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로, 삶과 죽음, 실존과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집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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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25일 가나아트센테에서 시오타 치하루의 개인전이 열렸다. 시오타가 마지막으로 그린 회화 3점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20205.07.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나는 더 이상 회화를 지속할 수 없었다”
“유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누군가의 모방처럼 느껴졌다. 그림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감각에,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시오타는 “이번 전시는 내가 왜 회화를 멈추고, 실로 전환했는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라며 “그 과정을 마주하며, 마지막으로 그린 유화 세 점을 이번에 처음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을 멈춘 이유를 다시 마주하며, 동시에 나는 여전히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실로 캔버스를 짜고, 그 위에 감정을 얽는 작업은 결국 나에게 또 다른 형태의 회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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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에 선보인 붉은 드레스와 붉은 실로 드레스 상자를 만든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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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캔버스에 검은 실을 엮은 작품은 마치 신경망처럼 보인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실은 나의 신경이다”
시오타에게 실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실은 감정, 기억, 신경과 연결된 존재의 언어다.

“실은 곧 연결이다. 현대인치고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은 내 기억의 시냅스를 보여주는 도구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중심작 'Return to Earth'는 검은 실이 천장에서부터 바닥의 흙더미로 촘촘히 내려오며, 자아와 타자, 현실과 비가시적 세계를 교차하는 구조를 시각화한다.

“이 검은 실은 생과 사의 흐름, 존재와 비존재의 순환,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연결을 나타낸다.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숨결은 공기가 되며, 정체성과 영혼은 또 다른 자연의 일부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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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시오타 치하루의 난소, 자궁 등 인체 장기조각들을  선보인 설치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예술을 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이다”
시오타는 작업이 곧 삶이라고 단언했다. “24시간 내내 작품 생각을 한다"며 "전시 준비 작업을 하는 게 삶의 보람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작 의욕이 샘솟는다. 자유로운 비어있는 시간인 그때에도 작업 구상을 한다"고 했다.

암 투병을 두 차례 겪은 그는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다”며 “시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를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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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2025) 연작. 2017년 암이 재발한 이후 항암 치료를 받으며 죽음과 마주했던 시오타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이 경험은 작가로 하여금 삶과 죽음의 경계,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생명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조차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암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시오타는 생명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는다.  *재판매 및 DB 금지


◆"나는 어디까지가 나고, 어디서부터 타인인가"
이번 전시는 시오타의 자전적 사유가 존재론적 탐구로 확장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친구의 신장 이식 경험에서 비롯된 질문 “그 친구는 수술 후 생선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장기 하나로 취향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인가”는 전시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다.

시오타에게 실은 ‘연결’이자 ‘상처’, ‘치유’이자 ‘흔적’이다.

붉은 피처럼 번진 드로잉, 공중에 매달린 붉은 드레스, 속이 빈 붉은 철사 형태까지 모두는 한때 ‘입었던 존재’의 껍질이자, 감정의 외피를 시각화한 형상이다.

실을 따라 얽힌 삶의 선들은 곧 감정의 지도이며, 시오타 자신이 세계와 맺는 존재의 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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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명과 동명인 설치 작품 <Return to Earth>(2025). 이번 전시에서 시오타의 예술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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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명과 동명인 설치 작품 <Return to Earth> *재판매 및 DB 금지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 다시 시작되는 예술”
전시 제목 'Return to Earth'는 단순한 귀환이 아니다.

이는 2000년 첫 개인전 'Breathing from Earth'부터 이어온 존재에 대한 질문이 25년에 걸쳐 집약된 결과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여정의 한 장면이다.

“나는 종종 자연과 인간 신체 사이의 유사성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토양에 나무를 키우기 위한 영양분이 있듯, 우리의 몸도 뼈와 피, 살을 만들기 위해 영양분을 흡수한다.”

시오타 치하루는 개인의 내밀한 감정을 형상화하면서도, 그것을 생명과 존재라는 보편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실로 직조된 기억과 정체성은 공간을 덮고, 관객의 몸과 감각을 휘감으며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전시는 9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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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시오타 치하루 개인전 'Return to Earth'에 선보인 설치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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