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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를 관통한 ‘존재’의 공명…류경채·류훈의 ‘공-존’적 대화

2025.07.08

작고 '부자 작가' 2인전…학고재서 9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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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류경채-류훈 부자의 2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부자의 혈연을 넘어, 두 조형 언어가 하나의 전시 공간에서 겹쳐진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는 9일부터 8월 9일까지, 류경채(1920~1995)와 류훈(1954~2014) 부자의 2인전 '공(空) - 존'을 개최한다. 회화와 조각, 두 매체가 시대와 세대를 가로질러 서로의 흔적을 공명시키는 자리다.

전시는 류경채의 추상회화 15점과 류훈의 조각 24점으로 구성된다. 형식과 사유는 다르지만, 모두 ‘존재’라는 심연의 화두를 향해 조형적 응답을 시도해왔다.

'공(空)'은 단순한 비움이 아니라 생성의 여백이며, '존'은 그 여백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의 흔적이자 현재성의 무게를 상징한다. 두 작가는 바로 그 여백과 충만, 질서와 파열 사이를 오가며 예술을 통한 존재 탐구를 이어왔다.

류경채가 세계와 인간의 조화를 통해 존재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조형을 통해 질서를 구축했다면, 류훈은 그 조화가 불가능한 세계에서 존재의 불확실성을 드러내고, 질서를 해체함으로써 존재의 내면을 마주한다. 조형 언어의 방향은 다르지만, 두 작가는 형상 너머의 공백을 응시한다. 그 끝에는 모두 ‘살아 있음’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학고재)
◆류경채 '서정에서 구조로'
류경채는 해방 직후 한국 현대미술의 태동기와 함께 등장한 화가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작 '폐림지 근방'으로 주목받았으며, 이후 국전 운영위원장,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창작미술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초기 회화는 서정적 풍경에 기반을 두었지만, 1960년대 이후 비구상적 추상으로 방향을 튼다. 자연을 외형으로 묘사하기보다, '자연을 감각하는 내면의 구조’에 집중하며 모노톤의 색면과 구조미로 한국적 자연주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회화는 생성과 소멸, 순환의 질서를 담아내는 시각적 통로다. 절제된 조형성과 조화 속에서 ‘존재’는 비워지며 드러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카이스트미술관, 성신여대중앙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 되어 있다.

◆류훈 '균열에서 감각으로'
류훈은 류경채의 아들이자, 조각가로서 전혀 다른 방식의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고전 조각의 핵심인 인체를 해체하고, 기하학적 구조물로 재조합함으로써 존재의 불안과 모순, 해체의 미학을 드러냈다.

그는 '질서의 해체'라는 방법으로 아버지의 조형언어를 계승하면서도, 전복시켰다. 파편화된 형태와 구조적 긴장은 불완전한 자아의 형상학으로 이어지며, 고요한 조화보다는 내적 충돌의 미학에 가까운 접근을 보여준다.

1985년 첫 개인전을 연 이후, 총 5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공공 조형물 제작, 교수 활동을 병행하며 독립적인 조각세계를 전개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경인교육대학교, 인천시립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인천대한교원공제회, 지하철건설본부, 포항제철 등 여러 기관에 공공 조형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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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꿈>, 2012, 캔버스에 혼합재료, 54x40x10cm *재판매 및 DB 금지


◆“단절 아닌 변형된 계승”
'공(空) - 존'은 세대와 시대, 평면과 입체, 조화와 균열 사이의 병치이자 대화다.

공백을 응시하는 두 작가의 시선은 동일한 질문,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다. 류경채가 자연과 조화를 통해 존재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류훈은 조화의 불가능성을 전제로 존재의 불확실성과 해체의 감각을 밀어붙였다.

이 전시는 결국, 단순한 부자전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가 남긴 흔적과 작가가 구축한 언어, 예술이 계승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다.

학고재는 “‘공(空) - 존’은 단절이 아니라 변형된 계승”이라며 “세월의 밀도와 삶의 흔적이 응축된 침묵 속의 대화이자, 비움 속의 충만함”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형상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세계와 인간, 자연과 존재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묻는 예술적 실천을 보여준다. 두 작가의 궤적을 따라가며 예술이 시간과 세대를 관통해 어떻게 계승되고 변주되는지를 체험하는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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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류경채-류훈 부자의 2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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