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새소리 흐르고 지진파 울리는 아르코미술관…‘드리프팅 스테이션’ 개막
2025.06.26
예술위원회 시각예술 창작산실 지원 선정 전시
조주현 큐레이터 기획…‘탈-인류세 뮤지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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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26일 아르코미술관에서 조주현 큐레이터가 드리프팅 스테이션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2025.06.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언어는 근대의 도구였어요. 그 언어 아래 비인간은 배제되고 열등하게 여겨졌죠. 이번 전시는 소리·후각·촉각처럼 ‘말 이전의 감각’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개막한 창작산실 협력전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는 ‘떠도는 미술관(Drifting Museum)’이라는 파격적 모델을 제안한다. 과정과 관계의 생성을 전시에 앞세우며, 인간 중심 제도·언어를 비틀고 비인간 존재와의 감응을 시험한다.
기획자 조주현 큐레이터는 2021년 출범한 국제 다학제 네트워크 ‘드리프팅 커리큘럼’의 중간 경유지라고 전시를 규정한다.
“애초엔 충남 천수만 철새도래지를 무대로 한 모바일 공공미술이었어요. 전시는 탈(脫) 인류세 뮤지엄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전시 제목인 ‘드리프팅(Drifting)’은 정착·제도화·언어화된 흐름에서 벗어나 떠도는 행위, ‘스테이션(Station)’은 잠시 머무는 간이역을 뜻한다.
조 큐레이터는 “법·학교·뮤지엄 같은 근대 시스템을 해체하고 다시 짜는 비서사적 큐레이션”이라며, ‘행성 시학(Planetary Poetics·지구를 넘어선 시공 상상력)’아래 감정·기억·공존의 감각을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20여년간 미술기관에서 일한 뒤 2021년 독립 큐레이터로 전향한 그는 예술·과학·환경을 넘나드는 다학제형 프로젝트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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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아르코미술관은 26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창작산실 협력전시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안데스 작가의 '지질학적 테크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질학적 테크노'는 지진파와 테크노 비트가 교차하는 다중적 설치작업이다. 2025.06.26.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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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아르코미술관은 26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창작산실 협력전시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6.26. [email protected] |
전시장에는 데이터, 사운드, 오브제, AR 등 다양한 매체가 동원돼 총 8팀의 작가가 구축한 ‘다종 오페라’가 펼쳐진다.
전시장 입구 바닥에서 시작되는 김정모의 작업은 관객의 ‘발걸음’을 매개 삼는다. 바닥에 깔린 센서는 움직임을 수집해, 멸종 생명종의 신호를 호출하는 데이터로 바꾼다. 조용한 관람도, 북적이는 동선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어지는 천경우의 설치작 '버드 리스너'는 청각장애인의 상상 속 ‘새소리’를 사운드로 구현했다. 지휘자와 협업해 녹음한 다채로운 음향은 전시장 전체를 감싸며, 보이지 않는 새들의 서식지를 감각적으로 상기시킨다. 한편 벽면엔 관람객이 완성하는 ‘초록의 판화’도 준비돼 있어, 시각뿐 아니라 참여의 경험도 유도한다.
대만 작가 장은만은 아프리카 대왕달팽이의 이주 경로와 대만 원주민 여성의 서사를 엮는다. 느리고 무거운 존재의 궤적은, 신화와 기억의 층위를 따라 전시장 안을 이동한다.
안정주, 전소정, 안데스는 각기 다른 형식으로 데이터를 청각과 촉각의 감각으로 전환한다. 특히 안데스의 작업은 지질 데이터와 테크노 리듬을 혼합한 ‘지질학적 테크노’로, 지진파가 바닥과 벽면을 울리는 다중 설치작이다.
마지막으로 인도 기반 콜렉티브 ‘하이로조익/디자이어스’는 새의 시선을 상상해 구성한 오페라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비인간 존재의 시점에서 펼쳐지는 감정과 신화를 조합한 이 작업은, 다종 존재들과 감응하는 윤리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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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아르코미술관은 26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창작산실 협력전시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안데스 작가의 '지질학적 베이커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6.26.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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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아르코미술관은 26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미술관에서 창작산실 협력전시 '드리프팅 스테이션-찬미와 애도에 관한 행성간 다종 오페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주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6.26.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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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프팅 스테이션' 천경우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이 전시는 끝이 아닌 프로젝트의 시작이기도 하다. 조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와 함께 '드리프팅 스테이션'은 오는 7월 천수만 철새도래지 현장 워크숍이 예정돼 있고, 2027년에는 영국 리버풀예술대학 미디어고고학자들과 확장형 전시가 추진된다"고 말했다. “협업을 플랫폼 삼아 환경운동가·인문학자·행동주의자들과 다학제 실험을 계속할 겁니다.”
오감으로 체험하며 쉽게 다가오는 전시와 달리, 영어로 쓰인 긴 제목은 마치 ‘개념의 교도소’에 갇힌 듯하다. 언어가 과잉일 때 감각은 오히려 닫히기도 한다. ‘드리프팅 스테이션’이라는 명칭이 어렵다는 지적에 대해 조 큐레이터는 “결국 부제로 단 찬미와 애도가 감정이자 윤리를 강조하는 의미”라며, “제목이 낯설어도 관람객들이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와 닿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근혜 아르코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팬데믹 이후 꾸준히 이어온 기후위기 담론과 예술 실천을, 인류세 연구자·기획자들과 함께 심화·확장할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8월 3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