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겸재 정선’展 11만 돌파…"이 작품은 꼭 봐야 해요”

2025.06.03

용인 호암미술관서 29일까지 개최

조지윤 리움미술관 실장이 추천하는

'놓치지 말아야 할 정선 그림' 10선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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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을 총망라한 대규모 전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겸재 정선'전은 4월 2일 개막 이후 관람객 11만 명을 돌파하며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는 오는 29일 마무리된다.

이번 전시는 국보 2건과 보물 10건을 포함해 총 165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금강전도’(개인 소장), ‘풍악내산총람’(간송문화재단), 34억 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았던 ‘퇴우이선생진적첩’(삼성문화재단 소장) 등 화제의 작품들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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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호암미술관 '겸재 謙齋 정선 鄭敾'전시 전경. 2025.03.31. [email protected]


겸재 정선(1676~1759)은 중국 화풍을 좇던 전통에서 벗어나 한국의 산천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려낸 진경산수화의 선구자다. 그가 담아낸 우리 땅의 풍경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번 전시는 장대한 금강산을 한 폭에 담은 것처럼, 정선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정선의 대표작들 가운데 “국보 보물 등 문화재 지정 여부를 떠나 꼭 눈여겨봐야 할 그림들”이라며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10선’을 꼽았다.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하는 이 추천작 리스트는 정선의 화풍과 예술관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안내서다. 전시가 끝나기 전, '꼭 챙겨봐야 할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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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내산총도(신묘년풍악도첩) 金剛內山總圖(辛卯年楓嶽圖帖) General View of Inner Geumgangsan (Album of Geumgangsan Mountain in the ‘Sinmyo’ Year) 정선 조선, 1711년 비단에 수묵담채 36.0 × 37.5 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재판매 및 DB 금지

◆보물 '금강내산총도'(1711)
정선의 첫 금강산 여행을 기록한 대표작이다. 내금강의 명소들을 한눈에 담아낸 이 작품은, 마치 여행 지도를 펼쳐놓은 듯한 구성으로 금강산 연작의 시작점을 알린다. 정선은 36세 때, 신태동·김창흡 등이 기획한 가을 금강산 여행에 동행했으며, 당시의 여정을 ‘신묘년풍악도첩’이라는 화첩에 담았다. 이 그림은 그 가운데 하나로,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목부터 내금강과 해금강의 절경까지 빠짐없이 포착하며, 젊은 화가 정선이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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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毘盧峯 Birobong Peak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 99.6 × 47.4 cm 국립중앙박물관 *재판매 및 DB 금지

◆진경산수화 교과서…비로봉 (18세기)
비로봉을 중심으로 한 강렬한 구도와 극적인 대비가 돋보인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처럼 묵직하게 표현됐고, 그 아래를 받치듯 늘어선 만이천봉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뾰족하게 묘사됐다. 두 형태의 극명한 대비는 비로봉의 웅장함과 상징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정선은 이처럼 자연의 실경을 마주한 감동을 개성적인 필치로 풀어내며, 풍경이 가진 ‘참(眞)’의 의미까지 담아냈다. 진경산수화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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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사동구(관동명승첩) 水泰寺洞口(關東名勝帖) Entrance to Sutaesa Temple(Album of Scenic Sites in Gwandong) 정선 조선, 1738년 종이에 수묵담채 32.3 × 57.8 cm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보이지 않는 기운 담은 '수태사동구'(1738)
숲 깊은 산중, 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수태사는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휴전선 북쪽 금화군 오신산에 있던 사찰이다. 정선의 스승 삼연 김창흡이 이곳에 머무르며 남긴 “숲이 빽빽하고 아지랑이 더해 절이 보이지 않는다”는 시구에 영감을 받아, 정선은 절을 드러내지 않고 산과 숲만으로 수태사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보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 공간의 기운과 정서를 깊이 있게 그려낸 이 그림은, 62세 무렵 정선이 진경산수화의 본질을 확립해가던 시기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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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암 通川門岩 Munam Rocks in Tongcheon 정선 조선, 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131.8 × 53.8 cm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80대에 그린 진경산수화의 진수…'통천문암'(18세기 중엽)
색 없이도 생생하다. 잉크 한 자락으로 바다를 흔든다. 문암은 강원도 통천군의 바닷가, 두 개의 바위가 마주 서 있어 문처럼 보이던 그곳이다. 정선은 이 풍경을 수묵으로만 담아냈다. 그런데도 그 생생함은 오히려 더 강렬하다. 화면의 3분의 2를 넘실대는 파도로 채우고, 굵고 가는 선, 짙고 옅은 먹의 농담으로 파도의 리듬을 빚었다. 하늘 위로는 안개가 걷히며 마치 용이 날아간 흔적처럼 상서로운 기운이 퍼진다. 80대에 그렸다고 전해지는 이 그림은, 겸재 정선이 평생 쌓아온 진경산수의 완성형을 보여주는 숨은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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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동(장동팔경첩)水聲洞 Suseongdong Valley(Album of Eight Views of Jangdong)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33.7 × 29.5 cm 간송미술문화
 *재판매 및 DB 금지

◆푸른색으로 청량한 여름 '수성동'(18세기)
여름이 머무는 골짜기, 수성동의 청량함을 담았다.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 아래, 옥인동의 깊은 골짜기 수성동. 한때 아파트에 묻혀 잊혔던 그 풍경이, 지금은 복원되어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정선의 이 그림은 수성동 복원 사업의 핵심 참고 자료로 활용되며 더욱 주목받았다. 그는 화면 가득 푸른 물감과 먹선을 쏟아내듯 사용해, 여름날 수성동 계곡의 청량함을 맑고 시원하게 그려냈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와 우거진 수풀, 정선이 품은 수성동의 ‘여름’은 지금도 보는 이의 마음을 씻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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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산삼용추 內延山三龍湫 Samyongchu Falls on Naeyeonsan Mountain 정선 조선, 18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 160.0 × 56.0 cm 개인소장
 *재판매 및 DB 금지

◆경북 영일군 명산·조영석과 우정…'내연산삼용추'(18세기 전반)
경북 영일 내연산의 삼용추 폭포를 그린 작품.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재직했던 경북 영일군에 위치한 명산으로, 이 작품은 내연산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다고 하는 삼용추를 생생하게 그린 명작이다. 정선의 예술적 동반자이자 조선후기 문인화가였던 관아재 조영석(1686-1761)이 발문에서 “정선의 붓을 따르니 비로소 내연산의 참모습을 알았다”고 극찬하고 있어서,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관아재 조영석의 미감과 둘 사이의 우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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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산수도 夏景山水圖 Landscape in Summer 정선 조선, 18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179.7 × 97.3 cm 국립중앙박물관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경치 보는 듯한 문인화…'하경산수도'(18세기)
문인화가로서도 빼어난 성취를 남긴 겸재 정선의 대표 문인화 작품. 이 그림은 중국 문인화의 화보를 바탕으로 한 관념산수화지만,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다. 화면을 가득 채운 장대한 구도 속에 섬세한 디테일을 가미해, 실제 경치를 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자아낸다. 관념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겸재는 회화의 새로운 감각을 실현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강세황은 “겸재 정선 중년기의 대표작”이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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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미주도(경교명승첩) 虹貫米舟圖(京郊名勝帖) Mi Fu’s Boat under the Rainbow(Album of Scenic Sites in the Capital and Suburbs) 정선 조선, 1740 – 1741년 비단에 수묵담채 27.0 × 29.3 cm 간송미술문화재단 보물
 *재판매 및 DB 금지


◆무지개가 미불의 배에 걸린 우정…보물 '홍관미주도'(1740–1741)
무지개로 그은 우정의 다리, 시와 그림의 약속. 겸재 정선과 그의 문인 친구 사천 이병연 사이에는 특별한 약속이 있었다.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詩去畵來之約)”는 시거화래지약. 이 작품은 이병연의 싯구 “용들이 황산곡 부채를 다툴까 겁내었으나, 무지개는 반드시 미불 집 배에 걸려오리라”를 정선이 그림으로 화답한 장면이다. 전통 회화에 드물게 등장하는 무지개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자연의 경이와 예술가 간의 우정을 한데 아우른, 회화와 시의 아름다운 교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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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부과도 刺蝟負瓜圖 Hedgehog Carrying a Cucumber on Its Back 정선 조선, 18세기 종이에 채색 28.0 × 20.0 cm 간송미술문화재단
 *재판매 및 DB 금지
◆고슴도치가 오이를 서리하는 '자위부과도'(18세기)
오이 하나 쏙-정선의 유머 한 입! 고슴도치가 오이밭에서 오이 하나를 몰래 쥐고 달아나는 순간. 익살맞고 생기 넘치는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은 겸재 정선의 유쾌한 관찰력이 빛나는 화조영모화다. 고슴도치의 눈망울, 촘촘한 가시, 오이의 디테일까지 놀라울 만큼 정밀하게 그려낸 반면, 꽃과 배경은 여백을 살린 소박한 터치로 서정성을 더했다. 정선이 보여주는 유머와 현실 감각, 그리고 그만의 일상 관찰의 미학이 이 한 장면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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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폭 廬山瀑 Waterfall of Lushan Mountain
정선 조선, 18세기 비단에 수묵 100.3 × 64.2 cm 국립중앙박물관
 *재판매 및 DB 금지

◆붓으로 다시 쓴 중국 여산 거센 폭포…여산폭(18세기)
낙수如銀, 시와 그림이 만났다. 정선의 ‘여산폭포도’ 중국의 명산 여산을 노래한 이백의 시 「망여산폭포」를 겸재 정선은 붓으로 다시 썼다. 세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 속, 깎아지른 절벽 끝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마치 은하수가 떨어지는 듯 웅장하고도 시원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은 그 거대한 자연의 위엄을 더욱 극적으로 전하며, 시와 그림의 교차점을 극대화한다. 이 작품은 전시 후반부인 3일부터 새롭게 공개되며,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진경의 세계를 선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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