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되어보는 회화’…김남표, 감각의 수행자[박현주 아트클럽]
2025.05.16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 개인전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16일 개막
30년 회화 여정 집약…산·바다 풍경 등 30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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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남표 작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나는 그 대상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대상이 되려는 사람이다.”
존재를 감각하고, 그 감각을 물질로 환원하는 고유한 행위. 김남표(55)는 ‘지독한 회화주의자’다.
그에게 회화는 형상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실재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수행이다.
‘그린다’는 행위에 오롯이 몰두해온 그는 아카데믹한 구성에서 초현실적인 화면까지, 인상주의적 색채에서 극사실주의적 묘사까지 회화사의 다양한 문법을 끌어안고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16일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는 그의 30년 회화 여정을 집약한 장면이자, 동시대 회화의 의미를 다시 묻는 조용한 반성문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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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표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
전시 제목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바넷 뉴먼의 작품에서 착안했다.
회화의 본질과 숭고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질문하고자 하는 김남표의 태도가 제목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화면 위에서 오직 손과 감각, 물감과 시간만으로 말한다. 기술과 매체가 무한히 확장된 시대에도 그는 끝까지 ‘묵묵히 존재하는 것’을 택했다.
회화의 형식과 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언제나 회화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향해 되묻는다.
김남표는 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되어보는 것’이라 말한다. 배우가 인물을 연기하듯, 그는 풍경과 존재를 감각하며 그 안으로 진입한다.
"대상의 존재는 시각적 향상을 뛰어넘어 대상의 실재, 즉 현실에 존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대상이 현실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는 그 시대와 현실을 인식하는데 매우 중요하며, 그러하기 때문에 회화는 리얼리티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대상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되어보기 - Becoming - 가 필연적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되어보기(Becoming)'를 배우가 특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유사하여 '화가의 연기'라고 보고있다."(화가 김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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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성남작가조명전2_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려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 풍경을 응시하며, 감각으로 바꾸다
이번 전시의 중심축은 ‘Instant Landscape’ 연작이다. 산과 바다 등 자연 풍경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 30여 점이 소개된다.
2007년부터 이어져온 이 연작은 풍경을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이 된 순간의 감각을 환기하는 작업이다.
산과 바다, 수평선과 채광, 미세한 온도와 바람의 감각까지-그의 대형 회화는 찰나의 경험을 화면 위에 ‘붙잡아두는 숭고’를 보여준다.
프랑스 파리 시테 레지던시에서 제작한 드로잉과, 제주에서 채집한 실경 수채화는 유화의 밀도와는 또 다른 투명한 감성으로 다가온다.
회화의 물성은 곧 감정의 물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안엔 빛보다 빠른 감각의 결이 흐른다. 산과 바다, 수평선과 채광, 바람의 온도와 소리까지-감각이 지나간 자리들이 즉흥적으로 발현된다.
한 번 본 그의 바다는, 이후의 바다를 바꾸어 놓는다. 어느새 ‘김남표의 바다’가 되어 감각의 잔상처럼 눈에 맺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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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김남표 바다 시리즈 신작. 2025.05.08. [email protected] |
◆‘색으로 공을 긁다’…'김남표식 실존 회화'
김남표의 회화는 관념을 말하지 않는다.
극사실의 밀도와 초현실의 감각이 교차하지만, 그의 회화는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작품에는 고요함 속의 필사적인 감각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 회화를 끝까지 믿는다는 것-그 자체가 어떤 예술보다 급진적인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보는 이를 멈춰 세운다.
물감이 덕지덕지 얹힌 화면, 면봉과 손끝으로 그려낸 형상은 과잉의 물성으로 밀고 들어와, 때로는 ‘촌스럽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존재의 결핍, 그리고 실존의 울림이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형상이 곧 공(空)이요, 공이 곧 형상이라는 그 말처럼, 김남표의 회화는 색(形)을 통해 공(空)에 이른다.
김남표 그림은 단지 시각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에서 실존으로 이행하는 통로이며, 김남표는 그 물질의 덩어리 속에서 실존의 고유성을 긁어내는 화가다.
"예술가의 고유한 매체라는 것은 오리지널을 의미한다. 예술가 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반복과 중복이 불가능한 고유한 감각, 혹은 본능적 물성작 체계를 말하는데, 이것은 예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감각의 체계는 학습과 사회화의 결과물이 아닌 숙명과 같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고유한 본능적인 것이다."(화가 김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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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표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라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그에게 회화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론적 언어다. 손끝의 촉각, 반복 불가능한 감각의 구조, 그 모든 것이 회화의 숙명이 된다.
김남표는 말한다. “존재를 감각하고, 감각을 물질로 환원하는 그 고유의 행위가 회화다.”
회화는 끝나지 않았다.
김남표는 여전히, 물감과 손으로 실존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회화를 믿는다. 그 믿음은 어떤 첨단 기술보다 묵직하고, 어떤 유행보다 고집스럽다.
그의 화면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 전시는 7월 1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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