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일본관 땅 밑까지 파고들었다…베니스 한국관 ‘해방공간’

2026.05.07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개막

한국관·일본관 첫 국가관 협업

최고은, 혈침 같은 ‘메르디앙’ 동파이프 눈길

노혜리, 4000개 세포막처럼 펼친 ‘베어링’

옛 화장실 자리서 출발한 한국관…‘경계의 공간’ 되다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일본관 사이로 최고은 작가의 설치작품 ‘메르디앙(Meridian)’ 일부가 연결돼 있다.  2026.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베니스=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비 내린 베네치아 자르디니 끝자락. 한국관에서 뻗어나온 붉은 동(銅) 파이프 한 줄기가 수풀 아래를 지나 일본관으로 스며들었다. 국경처럼 나뉜 국가관 사이를 가르는 대신, 혈관처럼 연결됐다.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올해 가장 먼저 ‘공간’을 건드린 전시다. 일본·러시아·독일관 사이 자르디니 끝자락에 자리한 한국관은 단순한 전시장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경계와 긴장, 개방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구조적 상징처럼 읽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한국관과 일본관은 처음으로 국가관 협업을 선보였다. 일본관 전시 ‘달 아기, 풀 아기(Moon Babies, Grass Babies)’와 연계해 최고은 작가의 설치작품 ‘메르디앙(Meridian)’ 일부가 일본관 부지까지 이어졌고, 두 국가관 경계 역할을 하던 수풀을 가로지르며 연결 구조를 만들었다.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최빛나 예술감독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내부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관 내부 벽면은 오래된 목재 질감을 살려 새롭게 구성됐으며, 왼쪽에는 노혜리 작가가 4000개의 오간자 원형 조각으로 만든 설치작품 ‘베어링(Bearing)’ 일부가 보인다. 2026.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관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 천장을 통과한 빛과 벽·기둥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동파이프, 4000개의 반투명 오간자 원형 조각으로 이어진 가림막이 얇은 막 같은 풍경을 만든다. 빛을 머금은 직물 구조는 보는 각도에 따라 세포막이나 껍질처럼 보였고, 안과 밖의 경계 역시 느슨하게 흐려졌다.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한국관에서 공개된 이번 전시는 최빛나 예술감독과 최고은·노혜리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 제목인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는 해방 직후의 정치적 의미를 넘어, 경계와 이동, 불안과 공존이 교차하는 상태 자체를 공간 감각으로 풀어낸다.

역사적이고 개념적인 제목과 달리 입구부터 관람객의 시선을 붙드는 건 최고은 작가의 설치작품 ‘메르디앙’이다. 수도설비용 동파이프를 활용한 작업은 한국관 내부를 관통해 일본관 부지까지 이어진다. 벽과 기둥, 천장 틈새를 비집고 지나가는 금속 배관은 혈관과 신경망처럼 공간 전체를 휘감는다.

associate_pic
최고은, 메르디앙, 2026.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설치 전경. 사진 감동환. *재판매 및 DB 금지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일본관 사이 수풀 아래로 최고은 작가의 설치작품 ‘메르디앙(Meridian)’의 동파이프가 길게 이어져 있다. 침술의 바늘처럼 공간의 경계를 관통한 이 작업은 국가관 사이의 연결과 흐름을 상징한다. 2026.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관 쪽 땅바닥으로 파고든 동파이프는 마치 거대한 침처럼 보였다. 수풀 아래를 지나 일본관 방향으로 이어진 붉은 선은 침술의 바늘처럼 공간의 경계를 관통했다.

서양 관람객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사이, 동양 관객들은 그 금속 관의 흐름을 오래 바라봤다. 동양 의학의 경락을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막힌 혈을 뚫고 기의 흐름을 순환시키는 침술의 제스처처럼 읽힌다.

국가관의 경계를 넘어 일본관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는 닫힌 구조보다 이동과 침투, 연결의 감각을 드러낸다.

최고은 작가는 “한국관의 여러 공간을 가로지르면서 마치 막혀 있는 혈을 뚫는 것 같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최빛나 감독은 “작업의 출발점은 한국관 건축 구조 자체였다”고 말했다. 과거 옥상으로 이어지던 나선형 계단이 철거되면서 동선이 끊기고, 실린더 공간이 창고처럼 사용되기 시작한 점에 주목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관을 하나의 신체로 보았을 때 혈이 막힌 부분처럼 느껴졌다”며 “보이지 않던 인프라 구조를 열고 흐름을 복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창고처럼 쓰이던 2층 화장실 공간까지 처음 개방해 관람객들이 위층에서 1층 전시장과 바깥 풍경까지 내려다볼 수 있도록 했다.

associate_pic
최고은, Meridian - Pillar, 2026.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설치 전경. 사진 감동환.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 작가는 기둥 내부를 열어 화장실 배관과 전기 시설 등 한국관을 유지하는 인프라를 노출시켰다. 기능적 구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하나의 조각적 장면으로 전환한 셈이다.

특히 동파이프를 반으로 갈라 벽과 기둥을 관통시키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기능적으로는 파손된 상태지만, 조각적으로는 오히려 유연하고 유기적인 선으로 변형된다.

최빛나 예술감독은 이번 한국관을 “한국이라는 나라의 어떤 화신 같은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자르디니 끝자락의 비정형 구조, 안과 밖이 뒤섞인 동선, 오랫동안 ‘불리한 공간’으로 평가받아온 조건 자체를 오히려 ‘해방공간’의 감각으로 읽어냈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오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공격이라고 보셔도 된다”며 “‘야, 나가자’라는 제스처로 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최빛나 예술감독과 최고은·노혜리 작가가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한국관에서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뒤편으로 노혜리 작가의 오간자 설치작품 ‘베어링(Bearing)’이 펼쳐져 있다. 2026.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associate_pic
노혜리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설치 전경. 2026. 사진 감동환. *재판매 및 DB 금지


노혜리 작가의 설치작품 ‘베어링(Bearing)’ 역시 공간 전체를 유기적으로 확장한다. 약 4000개의 오간자 직물 조각이 휘어진 벽면을 따라 반투명 막처럼 펼쳐지며 공간 사이에 느슨한 경계를 만든다.

빛을 머금은 직물 구조는 보는 각도에 따라 세포막이나 얇은 껍질처럼 보였다. 작품은 애도, 기억, 돌봄, 전망 등 여덟 개 스테이션으로 구성됐다. 노혜리는 “연약한 오간자가 모여 둥지 같은 구조를 만든다”며 “한국관의 피부이자 보호막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특히 ‘베어링’을 수행하는 ‘베어러(bearer)’는 일본관 전시의 주요 요소인 아기 인형을 매일 한 차례 한국관으로 데려와 여덟 개 스테이션을 순환한다. 국가관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이 퍼포먼스는 돌봄과 이동, 공존의 감각을 하나의 의례처럼 수행한다.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일본관에 설치된 큐레토리얼 스테이트먼트. 일본관 공동 큐레이터 호리카와 리사와 다카하시 미즈키는 “아이들은 전쟁과 테러, 보이콧과 무관하게 태어나지만 동시에 폭력 속에서 희생되기도 한다”며 급격한 저출생 시대 속 돌봄과 미래에 대한 공동 책임을 화두로 제시했다. 2026.05.06. hyun@newsis.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내부 전경. 노혜리 작가의 오간자 설치작품 ‘베어링(Bearing)’이 공간을 감싸고 있으며, 중앙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설치작품 ‘더 퓨너럴(The Funeral)’도 전시됐다. 2026.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설치작품 ‘더 퓨너럴(The Funeral)’도 전시장 안에 포함됐다. 농부 김후주, 작가 겸 가수 이랑, 사진작가 황예지, 예술가 크리스티앙 니얌페타 등 다양한 분야 참여자들의 작업도 함께 배치됐다.

빛과 비, 바람이 스며드는 유리 천장 구조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일부다. 안과 밖의 경계가 완전히 닫히지 않은 한국관 특유의 구조는 이번 전시에서 오히려 개방성과 흐름의 감각을 강화했다.

최 감독은 “관람객들은 우선 감각적으로 반응한 뒤 의미를 궁금해한다”며 “접근하기 어렵다기보다 아름답고 유려하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범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해방공간’은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동시대 감각으로 확장해 국제 미술 현장과 연결하려는 시도”라며 “수행과 협업, 네트워크로 확장되는 전시 형식 역시 한국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associate_pic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한국관 전경. 2026. 사진 감동환.(1)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이번 한국관 전시는 주변 국가관들과 비교하면 또 다른 방식의 긴장감을 드러낸다. 바로 옆 일본관을 비롯해 독일·프랑스관 등이 거대한 스케일과 압도적 설치로 관람객을 사로잡는다면, 한국관은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 안에서 틈과 연결, 흐름의 감각에 집중한다. 그래서 ‘해방공간’이라는 제목 역시 거대한 선언이라기보다, 한국관이 놓인 물리적·역사적 조건 자체를 드러내는 표현처럼 읽힌다.

실제 한국관은 태생부터 경계의 공간이었다. 자르디니 공원 끝자락,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 옛 화장실 부지에 세워진 한국관은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 가운데 26번째로 뒤늦게 들어섰다.

당시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은 국가관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지만, 1993년 백남준의 황금사자상 수상 이후 한국관 건립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백남준은 당시 “유일한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한 한국관은 숲 사이에 UFO가 내려앉은 듯한 곡선 구조와 유리 천장으로 완성됐다. 안과 밖이 뒤섞이고, 빛과 비, 나무 그림자까지 내부로 스며드는 독특한 구조다.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가수 겸 작가 이랑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한국관에서 열린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 개막 퍼포먼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날 퍼포먼스는 일본관과 한국관이 함께 진행됐으며, 관람객들이 빗속에 모여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2026.05.0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associate_pic
[베니스=뉴시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열린 제61회 베니스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관람객과 관계자들이 우산을 쓴 채 길게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오전부터 세계 각국 미술계 인사와 관람객이 몰리며 개막 열기를 이어갔다. 2026.05.06. hyun@newsis.


한편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는 지난해 타계한 카메룬 출신 큐레이터 코요 쿠오(Koyo Kouoh)가 생전 구상한 ‘인 마이너 키즈(In Minor Keys·단조로)’를 주제로 열린다. 본전시에는 111명(팀)의 작가가 참여하며, 한국 작가로는 요이(Yo-E Ryou), 한국계 미국 작가 마이클 주(Michael Joo),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 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이 초청됐다.

1895년 시작된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로 꼽힌다. 올해는 99개 국가관과 31개 공식 병행전시가 베네치아 전역에서 펼쳐진다.

세계 미술의 올림픽이자 국제정세의 축소판처럼, 전쟁의 그림자 역시 비엔날레 현장에 드리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단됐던 러시아관은 올해 제한적으로 다시 문을 열었지만 거센 반발과 시위가 이어졌다. 이스라엘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고, 이란은 불참을 선언했다. 러시아와 이스라엘 참여 문제는 심사위원단 전원 사퇴까지 불러오며 이번 비엔날레의 정치적 긴장감을 드러냈다. 공식 개막은 9일이며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이어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보기

5억년 화석 진동시킨 마이클 주 "검은 건반처럼 감정을 울리고 싶었다”[문화人터뷰]

2026 베니스비엔날레 개막…국제갤러리 마이클 주 본전시 참여

2026 베니스비엔날레 개막…연기 속 러시아관 퍼포먼스 눈길

한쪽 눈으로 그려낸 12년의 색, 향기와 만나다…소영 작가 '향기마을'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