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이우성, 인물에서 풍경으로…감정의 회화로 확장[박현주 아트클럽]
2026.03.17
갤러리현대 전속 첫 개인전
3년 만의 전시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만화적 인물 눈길…회화 40여 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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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우성 작가가 17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에 선보인 주요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2026.03.17. [email protected]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 그림을 보고 나갔을 때, 뭔가 감정이 남았으면 좋겠다.”
서울 삼청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이우성(43)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는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는 인물 중심으로 전개해온 작가의 회화가 ‘풍경’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3년만에 열린 이번 전시는 갤러리현대와 전속계약 후 처음 열리는 개인전이다.
이우성의 작업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인물이다.
그동안 친구와 가족, 일상의 인물을 중심으로 작업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강대교, 종로3가역, 제주 애월과 성산일출봉 등 익숙한 장소를 호출하며 기억과 감각이 중첩된 풍경을 제시한다.
초기 작업이 구체적 인물과 시대적 서사를 통해 동시대 청년의 초상을 드러냈다면, 최근 작업은 인물의 정체성을 지우고 풍경 속 익명적 존재로 전환되며 존재론적 감각으로 확장된 변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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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성, 새로운 시작 앞에서 우린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었어,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과슈 130.5 × 162 cm. *재판매 및 DB 금지 |
풍경은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그 위에 시간의 흐름과 감정, 관계의 흔적이 겹쳐지며 하나의 복합적 장면으로 재구성된다. 구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띤다.
보랏빛 하늘과 물, 과장된 초록의 밀도 노을의 붉은 색 등 비현실적 색채는 특정 순간의 정서와 감각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풍경은 더 이상 대상이 아니라, 경험된 시간의 집합으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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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성, 새벽녘 폭포 아래서, 2025-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5 × 162.5 cm *재판매 및 DB 금지 |
특히 인물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인간 같기도, 생명체 같기도 한 만화적 형상은 성별과 나이, 개별적 특징이 지워진 채 단순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인물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풍경 안으로 스며들게 한 결과에 가깝다.
17일 전시장에서 만난 이우성은 이를 “누구도 아니지만 누구도 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사람을 그리는 데에는 부담이 있었어요. 아무리 그려도 실제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성을 덜어낸 화면에서 인물은 초상이 아닌, 기억 속에 남은 감정의 형상으로 작동한다. 익명성과 낯섦이 공존하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정서를 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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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성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가 18일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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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애월읍 풍경을 담은 작품은 인물의 캐릭터가 빛을 받은 듯 노란색 윤곽선이 돋보인다. *재판매 및 DB 금지 |
인물의 노란 윤곽선은 이번 작업의 핵심 요소다.
작가는 “빛을 받았을 때 드러나는 실루엣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윤곽선은 형태를 채우는 색이 아니라, 존재의 경계를 드러내는 빛의 흔적이다.
해가 지기 직전,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경계의 시간에 대한 관심 역시 화면 전반에 스며 있다. 물결과 구름, 인물의 이동은 곡선적 리듬으로 표현되며, 정적인 화면 속에서도 흐름과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 물결의 리듬은 겸재 정선의 산수에서 착안한 것으로, 전통적 풍경 감각을 동시대적으로 변주한 결과다.
AI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그린다’는 행위의 밀도를 환기시키는 작업이다. 익숙한 구상회화의 형식을 취하지만, 감각은 오히려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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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갤러리현대 이우성 작가의 개인전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에 선보인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내가 보일 꺼야' 작품. 2026.03.17.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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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성, 날이 샐 때까지 우리는, 2025-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62.5 × 130.5 cm *재판매 및 DB 금지 |
이우성의 풍경은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분포하는 장면이다.
세밀하게 묘사된 도시와 자연 풍경 위에 단순화된 인물이 겹쳐지며, 현실과 감정의 이중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상반된 표현이 아니라, 이전 자화상을 그리던 시선의 연장선이다.
작가는 “눈을 그리듯 풍경을 들여다봤다”며 “풍경도 하나의 얼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결국 사람을 드러내기 위해 풍경을 그린 셈이다.
이러한 시선의 배경에는 어린 시절 즐겨 봤다는 쾨테 콜비츠와 뭉크, 신학철, 최민화 등 감정과 서사를 다뤄온 작가들, 그리고 신문 만평과 겸재 정선의 풍경까지 서로 다른 계보가 겹쳐져 있다. 이 이질적인 흐름은 그의 화면 안에서 교차한다. 그 결과 풍경은 재현이 아니라 감정이 작동하는 장면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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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갤러리현대는 이우성 작가의 개인전 대형 걸개그림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2021).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해물 선전마을 풍경. 2026.03.17. [email protected] |
대형 걸개그림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2021)는 이러한 시선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Real DMZ Project)’ 커미션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김포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개풍군 해물 선전마을 풍경을 담고 있다.
4m가 넘는 대형 화면에는 산속 마을이 펼쳐진다. 그러나 이 풍경은 한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작가는 “애기봉에서 북쪽을 바라봤지만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쌍안경으로 봐야 했고, 그러면 또 전체를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화면을 확장했다. “북에서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지 상상하며 한 인물을 그렸다”며 “결국 이 작은 인물을 그리기 위해 큰 풍경을 그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하단, 산길 가장자리에는 개미처럼 작게 그려진 한 인물이 서 있다. 보이지 않는 타자를 향해 서 있는 이 장면은, 성소수자이자 탈북자의 서사를 다룬 장영진의 소설 ‘붉은 넥타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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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성, 너에게 물으면 알 수 있을까?, 2026,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200 × 200 cm *재판매 및 DB 금지 |
감정의 표현 방식도 변화했다. 작가는 “이번 작업은 일기처럼 시작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 했다”고 말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분출하기보다, 시간 속에서 가라앉은 상태로 다루는 방식이다.
과거 ‘불’이 내면의 불안을 드러내는 이미지였다면, 이번 전시에서의 불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감정은 더 이상 분출되지 않고, 공유되는 상태로 이동한다.
이우성은 지난 15여 년간 ‘현재’라는 시간에 주목해온 작가다.
자화상에서 출발한 초기에는 불안과 분열의 정서를 강하게 드러냈고, 이후 실제 마주한 사람과 순간을 보다 밀도 있게 화면에 담아왔다.
작업에 더욱 몰두하며 그가 탐구해온 ‘현재’는 고정된 순간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중첩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성되는 감각이다. 결국 이우성의 회화는 ‘현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이전보다 그리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은 풍경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제 작업을 보며 풍경의 상징이나 장소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만, 누구나 어떤 장소에서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의 밀도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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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성, 뚝섬유원지에서, 2025, 캔버스에 아크릴릭, 아크릴릭 과슈, 130 × 48 cm *재판매 및 DB 금지 |
유망작가로 학고재와의 5년 전속을 마치고 갤러리현대와 새롭게 전속을 맺은 그는, 청년작가에서 40대 작가로 이동하는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전업작가이지만 생활과 작업을 분리하지 않는 태도로 동시대의 감각을 화면에 반영해 나가고 있다.
약 40여 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는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 작품은 예약과 판매가 이뤄지며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작품 가격은 100호 기준 1800만 원 선이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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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우성 작가. 2026.03.17. [email protected] |
◆작가 이우성은?
1983년생으로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2008년 첫 그룹전을 시작으로 서울시립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전시를 이어왔다.
그동안 학고재(서울, 2023·2017), OCI미술관(서울, 2013), 서교예술실험센터(서울, 2012)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타이완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에서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13년 OCI 영 크리에이티브 수상 작가로 선정됐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