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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건용은 이건용”…50년이 지나도 파격, 퍼포먼스의 현재형

2026.02.05

페이스서울서 이건용 예술 50주년 전시

1970년대 퍼포먼스 아카이브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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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행위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가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사유하는 몸' 간담회에서 퍼포먼스를 재연하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흰 백묵으로 삥 둘러 원을 그었다. 그리고 그가 반듯하게 서서 원의 금을 밟았다.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딱 펴 '저기'를 가리켰다. 다시 원 안으로 들어가 '여기', 다시 원 밖에 서서 뒤로 손가락을 돌려 '거기'라고 말했다. 이내 둥근 원을 차례차례 밟으며 “어디, 어디, 어디”라고 말하며 원의 둘레를 돌았다.

퍼포먼스는 끝났지만 관객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행위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자리를 지켰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반응은 같다. “이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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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이건용이 '장소의  논리' 퍼포먼스를 재연하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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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가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에 앞서 '장소성의 논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1975년 퍼포먼스 ‘장소의 논리’를 재연한 한국 행위미술 거장 이건용(84)은 여전히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로 해맑았다.

그는 “원 하나를 그은 것이 정확한 하나의 설정”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설정’이 만들어내는 사건성이다. 정해진 중심을 향해 수렴하는 방식이 아니라, “선을 밟으면서 계속 이동”하는 방식. 그 이동 속에서 ‘여기’와 ‘거기’는 절대 좌표가 아니라, 각자가 서 있는 자리와 몸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바뀌는 관계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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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행위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가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사유하는 몸' 간담회에서 '장소성의 논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지금  재연한 '장소의 논리'도 거창한 걸 올리는 게 아니라 흔적만 만들어 장소를 설정했다”는 그의 말은, 작품을 ‘전시’하기보다 정확한 조건을 설계해온 작가임을 드러낸다.

그가 말하는 ‘정확성’은 미술의 기술이 아니라 언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언어의 정확성과 소통의 불가능성을 혼자 고민했다고 회고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문장을 붙들었던 시간도 떠올렸다.

“나는 그전부터 혼자 공부했어요. 언어의 정확성에 대해서.”

그러나 그는 동시에 과잉 해석을 경계한다. ‘원’에 지나친 상징과 거대한 철학을 덧씌우는 순간, 작업은 끝없이 부풀어 오르고, 그때부터 ‘정확한 설정’은 흐려진다는 것이다.

“원을 그어놓고 그 이상의 상상이나 철학을 붙이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럼에도 그의 퍼포먼스는 때때로 누군가의 사유를 ‘리셋’시켰다. 한 연구자는 이건용의 ‘여기·거기’ 퍼포먼스를 본 뒤 “쇼크를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며 “이제까지 쓴 글을 다 없애버리고 새로 써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몇 년 뒤 우연히 길에서 그를 붙잡은 한 관객은 “그 이후 많은 글을 썼다”고 고백했다. 이름도 주소도 남지 않았지만, 사건은 남았다. 이건용의 ‘정확한 행위’는 누군가의 언어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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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현대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의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가 열린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하지만 1970년대 한국에서 그 ‘정확한 행위’는 종종 위험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 사건성은 미학의 차원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공기를 통과한다. 의도성은 없었지만 은밀한 저항으로 보였던 그의 작업은 정권의 탄압 대상이 됐다.

그는 1970년대 경복궁 인근에서 ‘폭발물 의심’을 받으며 작업 해체를 요구받았던 일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미술교사 시절, 학생들과 함께 진행하려던 퍼포먼스가 강제로 중단됐다. “청와대와 가깝기 때문에 폭발물 장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작업을 파헤쳤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목사 아들이고, 공산주의자도 아니며 청와대를 폭파하려 한 적도 없다”며 당시의 억울함과 황당함을 함께 전했다.

이후 '이리 오너라' 등 이해할 수 없는 엉뚱한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국가안전기획부 연행과 고문, 감시를 겪었고,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앞으로 이벤트 퍼포먼스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받았다고도 회고했다. 그는 젊은 동료들을 불러 그 공문을 “불 태워버렸다”는 일화는, 제도와 권력 앞에서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자존을 지켜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국립군산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었던 것조차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세상이 잘 이해해주지 않았던 순간이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그대로 다 이해되고 받아들여졌다면,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할 계기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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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현대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의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가 열린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내 퍼포먼스는 즉흥이 아니에요. 논리와 체계, 시나리오가 준비된 사건이죠. 회화도 그리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움직이면서 그림이 발생하는 거예요.”

그의 퍼포먼스는 실제로 수행 규칙을 갖춘 ‘Event Logical(논리적 사건)’의 계보다. 그는 퍼포먼스 이전에 작가 노트를 통해 시나리오를 짜고 지시문을 남겼다. 사진과 영상, 메모는 회화의 부속물이 아니라 ‘행위 자체’를 증명하는 아카이브가 된다.

이건용. 그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주요 인물이자, 한국 전위예술 그룹 ST(Space and Time)의 창립 멤버로 활동해 온 한국 행위미술의 대표 작가다. 그는 신체와 행위가 시간의 구조 안에서 어떻게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 왔으며, 이를 통해 신체를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매체로 확장해 왔다.

1975년 스스로 ‘이벤트(Event)’라 명명한 퍼포먼스 작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장소의 논리’(1975), ‘이어진 삶’(1977), ‘달팽이 걸음’(1979) 등 다수의 실험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 작업들은 신체를 단순한 표현 수단이 아니라 인식과 관계를 발생시키는 주체로 다루며, 한국 행위미술의 지형을 형성해왔다.

가장 잘 알려진 연작 중 하나인 ‘바디스케이프(Bodyscape)’(1976~)는 이러한 방법론을 회화로 확장한 작업으로, 작가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화면이 생성되는 방식을 제시하며 회화와 미술 제작의 기존 관습을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최근에는 팔라초 카보토 개인전(베네치아, 2022), 경남도립미술관 개인전(2023), 페이스갤러리 개인전(2023) 등을 통해 활발한 국제 전시 활동을 이어왔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리움미술관(2021~22), 롱뮤지엄(2022~23),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2023~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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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현대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의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가 열린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Body as Thought’는 이건용의 1970년대 퍼포먼스와 회화를 다시 현재로 불러낸다.

회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몸의 움직임과 지시문, 사진과 영상으로 남은 ‘행위 자체’가 전시의 중심에 놓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 활동 50주년을 기념한 기획전으로, 1970년대 중반에 초연된 초기 퍼포먼스의 기록 영상과 사진, 작업 노트 등 역사적 의의가 깊은 아카이브 자료와 회화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특히 ‘동일면적’(1975), ‘실내측정’(1975)의 초연 영상과 함께 ‘건빵먹기’(1977), ‘화랑 속의 울타리’(1977), ‘손의 논리 3’(1975) 등 당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들을 작품으로서 처음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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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거장 이건용 작가와 부인 승연례 작가가 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개인전 '사유하는 몸'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건용 작가는 '손의 논리'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02.04. [email protected]


캔버스 앞에서 서서 팔을 뒤로 돌려 붓질하는 일명 ‘거꾸로 그리는 그림(Body scape)’과 ‘하트 그림’으로 더 유명해진 그는 2022년 80세에 세계 적인 갤러리 페이스와 전속을 맺은 국내 유일 생존 작가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 신체성의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몸이 젊든, 늙든, 떨리든, 힘이 부족하든 우리는 모두 몸을 가지고 있어요. 그 조건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죠. 힘이 모자라서 드러나는 것도, 그 자체로는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어요.”

50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파격적이다. 반세기 만에 다시 본 자신의 작업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이건용은 이건용이죠. 하하하.”

전시는 3월 28일까지.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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