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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청포도까지…‘제39회 시(詩)가 있는 그림’전

2026.01.05

갤러리서림, 화가 10인 초대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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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서림, 박돈 '광야'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민족시인들의 시가 회화로 번역됐다. 갤러리서림에서 열리는 ‘제39회 시(詩)가 있는 그림’전이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1987년 시작돼 올해로 39회를 맞은 ‘시가 있는 그림’전은 매년 시를 시각예술로 재해석해온 장기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광복을 염원했던 민족시인 8인의 시를 10명의 화가가 각자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 작품들로 구성됐다.

전시에 소개된 시인은 한용운, 이상화, 이육사, 박용철, 윤동주, 심연수, 함형수, 김영랑 등이다.

특히 박돈 화백의 작품이 특별 출품됐다. 평소 이육사의 ‘광야’를 즐겨 그려온 그는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질주하는 천마로 형상화해, 시인의 결연한 의지와 고향 황해도 장연에 대한 그리움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 작품은 제33회 ‘시가 있는 그림’전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색면추상 작가 이명숙은 윤동주의 ‘서시’를 바탕으로, 기도하듯 광복을 기다린 시인의 마음을 희망의 푸른 색조로 표현했다. 맑고 절제된 색면은 통한의 시대를 정화된 시어로 승화한 윤동주의 정신을 시각화한다.

광주·담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김재성은 옷핀을 재료로 한 작업으로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해석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봄의 기척처럼, 절망 속에서도 끈을 놓지 않는 의지의 소리가 작품에 스며 있다.

화가이자 문학가로도 활동해온 황주리는 박용철의 ‘연애’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암울함을 오히려 행복과 즐거움의 역설적 이미지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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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서림, 황주리 해바라기의 비명(박용철의 ‘연애’)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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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서림, 정일 '모란이 피기까지는'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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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서림, 안윤모 '청포도' *재판매 및 DB 금지


동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작업해온 정일은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봄 향기 가득한 꽃의 이미지로 풀어내며, 광복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인내의 시간을 그려냈다.

자폐아와 함께하는 전시와 유니세프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이어온 안윤모는 이육사의 ‘청포도’를 동화적이고 싱그러운 초록의 세계로 표현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노태웅은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를 통해 떠남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끝내 버리지 않는 희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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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서림, 노태웅 '떠나가는 배'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하석홍은 심연수의 ‘대지의 모색’, ‘후조’를 추상과 극사실을 넘나드는 회화로 재구성하며 시인의 강렬한 정신세계를 드러냈다.

초상화 거장인 이원희는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숲과 가을나무, 빛의 조화로 표현해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다”는 만해의 철학을 시각화했다. 또한 임상진은 ‘알 수 없어요’를 통해 인생과 깨달음에 대한 만해의 사유를 따뜻하고 중후한 화면으로 풀어냈다.

한편 ‘시가 있는 그림’전은 지금까지 593편의 시를 124명의 화가가 작품으로 제작해온 장기 프로젝트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내년 ‘시가 있는 그림 달력’으로도 제작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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