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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의 도발…황창배미술관, '숨은그림찾기' 연작 공개

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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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배, <무제>, 52x76cm, 화선지에 먹과 분채, 1987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먹과 색이 번지며 하늘과 땅, 물과 꽃이 동시에 출현한다. 화면 속에는 분명 자연이 있지만, 정해진 풍경은 없다. 형상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인물의 흔적은 암시처럼 스친다. 한국화가 황창배(1947~2001)가 1980년대에 전개한 이 실험은 ‘확장’이라기보다 하나의 도발에 가까웠다.

황창배미술관은 15일부터 2026년 1월 9일까지 전시 ‘하늘과 땅과 물과 꽃’을 열고, 1987년 발표된 이른바 ‘숨은그림찾기’ 연작을 중심으로 황창배의 조형 실험을 재조명한다. 1981년 동산방화랑 개인전 출품작 일부도 함께 소개된다.

‘숨은그림찾기’ 연작은 먹과 색의 번짐에서 비롯된 비정형적 형상 속에 자연 이미지와 인간의 단편을 병치한 작업군이다. 화면에는 하늘·땅·물·꽃 같은 요소가 압축된 기호로 등장하고, 일부 작품에서는 인물의 서사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전통 회화의 감수성과 1980년대 황창배가 시도한 조형 실험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공개 초기부터 이 연작은 즉흥적 제작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황창배의 즉흥성은 충동이 아니라 축적된 기초 위에서 작동한 선택에 가까웠다. 그는 전각, 서예, 한학, 전통 복식, 고화 연구 등 한국화의 기반과 연결된 영역을 꾸준히 학습했고, 그 축적이 화면의 분방한 구성과 자유로운 붓질을 가능하게 했다.

이번 전시는 황창배가 1980년대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꺼낸다. 한국화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가. 황창배의 ‘숨은그림찾기’는 그 질문을 여전히 유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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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배, <무제>, 152.5x192.5cm, 화선지에 먹과 담채, 1986 *재판매 및 DB 금지


출품작들은 발표 당시 모두 ‘무제’로 소개됐다. ‘숨은그림찾기’라는 명칭은 이후 전시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한 비공식적 제목이다. 이번 전시는 1987년 연작과 1981년 초기 작업을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자연 이미지, 비정형적 형상, 인물 요소가 어떻게 변화하고 결합되는지를 비교·관찰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기획을 맡은 김준희 테오화랑 대표는 18일 오후 4시 오프닝 행사와 함께 세미나를 열고, 황창배의 1980년대 조형 실험을 둘러싼 미술사적 맥락을 짚을 예정이다.

황창배는 1979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한국화가로, 명지전문대, 동덕여대, 경희대, 이화여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에 소장돼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황창배미술관은 작가의 예술 세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작가 기념 미술관으로, 황창배 작업의 실험성과 행위성, 한국화 형식의 확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연구·전시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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