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신상호 "반복은 No, ‘무한변주’가 내 체질"…흙으로 재부팅한 60년(종합)

2025.11.2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서 60년 회고전

도자·조각·회화·설치 160여 점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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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가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흙은 한 번 굽히면 사라지는 재료지만, 어떤 예술가에게는 끝없이 되살아나는 세계의 문이다. 올해 일흔여덟, 한국 현대 도예의 지형을 바꾸어 온 신상호는 그 문을 반세기 넘게 두드려왔다.

26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막한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제목 그대로, 흙의 무한한 변주(變奏)를 실감하는 자리다. 전통 도자에서 출발해 조각·회화·건축으로 끝없이 확장해 온 그의 궤적을 도자·조각·회화·설치 160여 점으로 조망한다.
 
전시를 기획한 윤소림 학예연구사는 신상호를 “구상·추상의 구도를 고민하는 작가가 아니다. 그의 핵심 축은 호기심·경외·생명성”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형식에도 고정되지 않는 작가”라는 말은 이번 전시에서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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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가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 “나는 같은 방법을 반복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날 과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상호는 특유의 꾸밈없는 어조로 자신의 작업 세계를 정리했다.

“점 찍으면 평생 점 찍고, 물방울 하면 평생 그것만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나는 한 방법에 안주할 수가 없어요. 흙을 만지면 새로운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을 따라가면 또 다른 길이 열립니다.”

그 말은 작품 곳곳에서 그대로 읽힌다.

도자기, 도자 조각, 추상 회화, 건축 타일까지 뻗어가는 작업들은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채롭다. 흙의 질감과 빛, 추상적 패턴, 생명체의 울림이 결합된 작업들은 그가 말한 ‘흙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입증한다.

그가 말한 또 하나의 핵심 문장은 이번 전시의 존재론적 바탕을 요약한다.

“흙은 보관되지 않는 자원입니다. 아이디어도 보관되지 않죠. 둘이 만나면 계속 다시 태어날 수 있어요.”

젊은 도예가들에게는 이렇게 당부했다.

“어렵다는 이유로 멈추지 마세요. 극복하면 어렵지 않아요. 넘어서면 새로운 것이 되고, 자기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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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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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 ‘흙의 예술가’가 걸어온 60년…도예 국제화의 출발점
신상호의 작업은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한국 도예의 현대화 과정이다.

1965년 홍익대 입학과 동시에 이천의 장작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를 익힌 그는, 국내 최초로 가스가마를 들여오며 “전통에 과학을 더한 현대 도예”를 직접 개척했다.

그는 전통을 단순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개념’으로 봤다. 일본 백화점 전시를 비롯해 국제 도예전, 화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도예의 국제화를 몸으로 열어젖혔다.

1980년대 이후 그는 도예의 규범을 과감히 벗었다. 도자 조각의 개척자로 흙으로 동물 형상을 빚어낸 ‘꿈’·‘아프리카의 꿈’ 연작은 흙을 생명체의 에너지를 담는 매체로 바라본 대표작들이다. 이후 도자 타일을 이용한 외벽 설치 ‘구운 그림’, 센트럴시티 ‘밀레니엄 타이드’, 금호아시아나 사옥 외벽(현 콘코디언 빌딩) 등 건축과의 결합까지 이어졌다.

그의 변주는 전통 → 조각 → 회화 → 건축 → 회화적 도자 → 생명·추상 결합으로 이어진다. 흙에서 출발하지만, 흙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흙이 언어가 되고, 빛이 되고, 또 다른 예술이 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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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가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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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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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신상호 대규모 회고전 ‘무한변주’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 손가락 자국, 적층된 색, 조각된 화면…장르가 무너진 회화적 도자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회화적 패널들이다.

손가락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표면, 수십 번 구워낸 색의 적층, 흙의 양감을 밀어 올린 화면. 회화인지 조각인지 장르가 무너진 작품들이다.

흙의 질감과 빛, 추상적 패턴, 생명체의 울림이 섞인 작품들은 그가 말한 ‘흙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거대한 토템 형태의 얼굴은 도자이면서 조각이고, 동시에 회화다. 이 '장르 해체의 지대'야말로 신상호가 60년간 밀어붙여온 본질적 질문, '흙은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강렬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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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신상호 대규모 회고전 ‘무한변주’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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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 작가의 회고전 '신상호: 무한변주' 언론공개회를 26일 경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갖고 60여 년간의 흙으로 보여준 작가의 조각적·회화적 창작 여정을 조명하고 있다. 2025.11.26. [email protected]

◆ “도예과 폐과 1순위였던 시절…이제 흙의 시대가 돌아온다”
신상호는 도예의 생존을 위해 싸워온 세대다.

“홍익대 21개 학과 중 도예과가 항상 폐과 1순위였어요. 정말 억울하고 분했죠. 그래도 도예의 생존력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변화를 ‘기적’처럼 바라본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 도예 관심이 커졌대요. 정말 고맙고 기쁘죠. 흙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니까요.”

몇 달간 파주 작업실과 과천을 오가며 전시를 준비했다는 신상호는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소감이 아니다. 이번 회고전은 한 예술가의 수고와 열정이 만들어낸 기록이며, 한국 도예가 세계적 현대미술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전시는 내년 3월 29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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