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이헌정, 사유의 도예·항아리…우손갤러리 서울·대구서 개인전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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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서울 이헌정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흙을 주무르고, 물감을 올리고, 손끝으로 미세한 리듬을 이어가며 몸속에 쌓인 기억을 밖으로 흘려보내는 과정. 도예작가 이헌정은 이를 “결과에 대한 기대에서 벗어난 정신적 여행”이라 설명한다.

13일부터 우손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에 개막한 이헌정 개인전은 도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든다. 전통을 넘어선 실험을 거친 그의 작업은 도예 같으면서도 도예가 아닌, 파괴 속에서 자유를 획득하는 미묘한 긴장을 품고 있다.

서울 전시 ‘흙의 기억에 색을 입히기’는 회화로 확장된 도예적 사유를, 대구 전시 ‘항아리’는 도예의 원형으로 돌아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울 전시는 그의 몸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흙을 쌓고, 물레를 돌리고, 유약을 입히는 반복의 리듬은 캔버스 위 점과 선으로 번역된다. 흙이 시간을 거쳐 형상으로 응결되듯, 회화 역시 즉각적이면서도 집중을 요구하는 수행적 행위다.

“가슴으로부터 손끝으로 이루어지는, 결과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들은 내 몸 속에 쌓인 기억을 밖으로 풀어내며 정신적 여행을 반복하게 한다.”(이헌정 작가)

1층에 펼쳐진 색채 페인팅은 도예의 ‘기다림’과는 다른 속도의 자유를 보여준다. 색은 화면 위에서 곧장 반응하며, 손끝은 흙을 만지듯 유연하게 리듬을 잇는다. 반면 2층은 흑백의 장면으로 구성돼 점·선·면의 긴장과 작가의 내면적 구조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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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서울 이헌정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도자 조각 ‘Boy(소년)’와 ‘Island(섬)’은 흙이 불을 통과하며 얻는 생명력을 응축한 작업이다. 의도와 우연, 노동과 관념의 경계에서 탄생한 미세한 비정형의 굴곡은 완벽함 대신 생명성을 품는다. 작가가 말하는 ‘소성된 생명’은 기술을 넘어선 정신적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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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손갤러리 대구 이헌정 개인전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우손갤러리 대구의 ‘항아리’ 전은 그의 도예적 태도를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회화, 만다라 형식의 작업, 비디오 영상 등을 병치해 ‘노동하는 예술가’로서의 이헌정을 드러낸다. 흙을 주무르고 불 앞에서 땀 흘리며 예술을 만들어내는, 머리보다 몸으로 사유하는 작가의 모습을 마주하게 한다.

우손갤러리 이은주 실장은 “이번 전시는 이헌정의 도예적 태도를 바탕으로 이어온 탐구의 궤적을 하나로 연결한다”며 “서울과 대구 전시는 재료나 형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가 몸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감각이 사유를 거쳐 다시 다양한 시각 언어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026년 1월 1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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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헌정. 사진=우손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헌정 작가는?
 도예를 기반으로 조각, 가구, 설치, 건축, 회화까지 넘나드는 작가다.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조각을 공부했으며, 귀국 후 건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달항아리와 백색 도자를 비롯해 도자가구, 대형 설치, 회화 등으로 작업을 확장해왔고, 과정·재료·흐름을 중시하는 태도로 정교함과 즉흥성을 조율한다.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2005), 사평역 도자 벽화(2009) 등 공공미술 작업을 진행했으며, 2018년 ‘제1회 올해의 공예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LACMA,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과 여러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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