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영화감독을 꿈꿨다”…천재 화가 아닌 '청년 바스키아'
2025.09.30
서울 DDP서 대규모 기획전시
3700여 점 남기고 27세 요절
여동생 추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은
삼각형 꼭대기에 학이 서있는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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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오빠는 항상 뭔가를 그리거나 끼적였다. 아빠가 가져온 회사 노트에도 캐릭터를 그려 넣었고, 장난처럼 넘기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되곤 했다.”
‘낙서 화가’로 불렸던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의 여동생 제닌 바스키아(58)는 그를 “다정하고 장난스러운 평범한 혈육”으로 기억한다. “때로는 ‘요즘 누구와 데이트하냐’고 묻던 보통 청년이었다”는 회고는, 천재 화가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 가려졌던 인간적인 초상을 드러낸다.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 뉴욕 현대미술관과 브루클린 미술관을 다녔다. 그러나 여덟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함께 성장했고, 청소년기에 가출과 전학을 반복하다 결국 고교 자퇴에 이른다.
거리의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시작해 자작 엽서와 티셔츠를 팔아 생계를 잇던 그는, 27세 요절까지 단 8년 동안 3700여 점을 쏟아냈다.
길에서 만난 노숙자에게 말을 걸고 100달러를 쥐여주던 따뜻함, 농담을 즐기던 유머감각. 여동생의 증언 속 바스키아는 ‘억만장자 컬렉터들의 스타’라는 대중적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얼굴, 인간 바스키아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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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 “화가가 아니었다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에는 영상 속 바스키아의 목소리도 담겼다.
그는 차분히 “만약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영화감독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이어 “24시간만 있다면 엄마, 여자친구와 시간을 보낼 것 같다”고 답한다. 세계 미술시장을 뒤흔든 아이콘이 아닌, 스물두 살 청년의 평범한 소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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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그래피티에서 출발해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이 된 바스키아. 이번 전시는 드로잉 노트, 회화, 미발표 문서 등 그가 남긴 3700여 점 가운데 일부를 망라해 한국 관객 앞에 내놓았다.
낙서처럼 휘갈긴 단어, 해부학적 드로잉, 원시적 이미지와 대중문화 기호가 얽힌 화면은 여전히 오늘의 언어와 충돌하며, 전시 제목 그대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시차를 뛰어넘는다.
이번 전시는 9개국에서 모은 회화·드로잉 70여 점과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작가 노트북 155장을 포함해 총 230여 점을 11개 섹션으로 선보인다. 거리에서 ‘SAMO©’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초기작부터 마지막 영적 자화상까지, 불과 8년간 집약된 창조의 폭발을 압축했다. 보험가액만 약 1조4000억 원으로, 국내에서 열린 미술 전시 중 최고액 수준이라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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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그림에 다가서면 불이 켜지면서 이중의 그림이 보인다.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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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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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무제’(1986)
이번 전시에서 여동생 제닌이 관객에게 “놓치지 말라”고 권한 작품은 1986년작 ‘무제’다. 삼각형 꼭대기에 학이 서 있고, 화면은 수많은 단어로 빼곡하다. 제닌은 이 그림을 두고 “사람들의 마음에 와 닿을 보편적 메시지가 가득하다”고 강조했다.
언뜻 보면 낙서(doodle)와 텍스트의 집합 같지만, 실제로는 바스키아의 세계관이 압축된 ‘시각적 사전’이다. 화면 곳곳의 박쥐 모양 기호(배트맨 로고를 연상케 한다)는 대중문화 아이콘의 차용인 동시에 권력과 히어로 신화에 대한 패러디로 읽힌다.
별, 십자가, 눈, 말풍선 같은 종교·신화적 기호는 바스키아 작업의 핵심 모티프인 ‘영웅, 순교, 죽음’과 연결된다. 반복되는 “HEY HEY HEY”는 재즈와 힙합 리듬을 시각화한 듯한 효과를 주며, 화면을 가득 메운 단어와 메모는 해독조차 힘들 만큼 빽빽하다. 이는 곧 ‘정보 과잉 시대’의 혼란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인 전략이다.
1986년, 요절 2년 전의 작품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미 명성과 고립 사이에서 번민하던 시기, 이 그림은 정리되지 않은 정신의 지도를 연상시킨다. 언어와 이미지가 뒤엉킨 방식은 바스키아가 평생 시도한 “언어와 시각의 혼합” 실험의 정점이자, 내적 불안을 투사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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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전경. 2025.09.3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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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quiat, Great Jones Street (C) Lizzie Himmel *재판매 및 DB 금지 |
‘스타 작가’라는 이름 뒤에는 가족과 하루를 보내고 싶어하던 스물여덟의 청년이 있었다. 동시에 화면 가득 흩뿌려진 언어와 기호는 관객에게 여전히 질문을 던진다. 바스키아는 생전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의 그림과 메모, 심지어 농담까지도 세계를 해석한 또 하나의 사전이었다.
서울 DDP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그 모순된 두 얼굴 '평범한 인간과 시대의 아이콘'을 동시에 비춘다. 천재 화가 이전에 그는 ‘휴머니스트 바스키아’였다. 검은 낙서, 해부학 드로잉, 장난스러운 단어들은 결국 인간을 향한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일깨운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