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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展 간송미술관 덕분"…'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10선'

2025.04.01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4월2일 개막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 10년 간 기획

간송미술관 보물 등 79점 대여 전시 성사

총 165점 한자리…보험가액만 수천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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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호암미술관은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 공동으로 조선 회화의 거장이자 진경산수화의 창시자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회화를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 '겸재 謙齋 정선 鄭敾' 언론공개회를 31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갖고 정선의 진경산수화, 인물화, 화조영모화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25.03.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간송미술관 덕분입니다."

국내 최초 최대 규모로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10년 만에 한 풀이를 했다. 조선 회화사를 이야기할 때 '진경산수화' 거장 겸재 정선(1676~1759)을 빼놓을 수 없는 일. 언젠가 꼭 한번 치러야 할 전시지만, 국내 최초의 고미술 미술관 간송미술관 때문에 멈칫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문화유산 지킴이로 나선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평생 모은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과 청자 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 등 1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겸재 정선의 최고작이 소장되어 있지만 미술사 연구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조 실장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4년 전. 2021년 간송문화재단이 대구간송미술관을 건립하면서 작품 대여의 문이 열렸다. 이번 전시에 간송미술관은 보물 등을 포함해 진품명품 79점을 호암미술관에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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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겸재 정선' 1부 전시장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간송미술관의 협력을 통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대규모 '겸재 정선'전이 성사되었다. 이번 전시는 마치 장대한 금강산을 한 폭에 담아내 듯, 정선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조지윤 실장)
오는 4월 2일부터 6월 29일까지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펼치는 전시는 그야말로 '겸재 정선'의 축제다. 이건희컬렉션으로 유명한 '인왕제색도', '금강전도'(개인소장) 국보 2건을 비롯해, '풍악내산총람(간송문화재단)', 금강내산(간송미술문화재단)등 보물 10건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인왕제색도’는 국내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기회다. 고서화 보호를 위해 5월 6일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돌아간다. 이후 이건희컬렉션 해외 순회전에 출품,  11월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박물관을 시작으로 3년 간 해외에 머무른다.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의 협력으로 이뤄낸 전시는 의미가 크다. 간송 전형필(1906~1962)과 호암 이병철(1910~1987)의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을 일깨우며 그동안 다각적으로 조명해왔던 겸재 정선의 광대한 회화 세계를 일시에 조망하게 한다.

겸재 정선은 18세기 조선 회화의 전성기를 이끈 화가다. 중국 화보의 모방에 그쳤던 문인화를 떨치고 우리나라의 경관을 개성적인 필치로 그려낸 진경산수화 (眞景山水畵)를 정립, 당대는 물론 후대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들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담아내며,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자산이 됐다.

조지윤 실장은 "현 시대 대중적으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도 겸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 전시는 정선이 남긴 위대한 회회적 성취는 물론 '문인 화가'로서 자부심으로 18세기 조선을 살고 간 한 예술가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총 165점이 모인 이번 전시는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지만, 보험가액만 수천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국내 고미술 경매 사상 첫 '보물'이자 최고가인 34억 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던 '퇴우이선생진적첩'(삼성문화재단 소장)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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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조지윤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이 31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 공동으로 기획한 조선 회화의 거장 겸재 정선(謙齋 鄭敾)의 회화를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 '겸재 謙齋 정선 鄭敾' 언론공개회에 참석하여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를 설명하고 있다. 2025.03.31. [email protected]


'K 아트 원조'이고, '진경 산수화 걸작'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너무 많은 작품 때문일까? 300여 년의 세월의 더께를 쓰고 고풍스러워진 그림들은 현대인들을 쉽게 매혹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누렇게 변한 그림들은 '은근의 미학'을 전한다. 지나치게 거칠고 화려한 현대미술에 찌들어 있는 시대속에 '자연 순 맛', 한국 전통 고유의 미감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전시다.

조지윤 실장은 "전시를 기획하고 보니 정선의 총체적인 예술세계는 문인 의식과 집안에 대한 자부심까지 볼 수 있었다"며 문인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한번 봐서는 모른다. 천천히 여러 번 관람하는 것"을 당부했다.

겸재 정선의 역대급 그림 165점이 쏟아진 이번 전시에서 조 실장이 추천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 10점을 작품 설명과 함께 소개한다.

◆①국보 금강전도: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30.8 x 94.5cm(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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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금강전도, 정선, 조선, 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30.8 x 94.5 cm, 개인소장.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금강산은 정선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가장 많이 그린 주제다. 정선은 평생 여러 차례 금강산 일대를 여행했고, 수많은 금강산 진경산수화를 남겼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강전도'는 겨울 금강산인 개골산을 그린 것으로,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모두 한눈에 들어오도록 위에서 내려다 본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정선은 뾰족한 암산과 나무숲이 우거진 토산을 오로지 점과 선 만으로 뚜렷하게 대비시켜 표현했다.

이처럼 금강산의 전체 모습을 그린 전도(全圖) 형식의 그림은 금강산을 그릴 때 오랫동안 애호했던 형식이다. 일종의 회화식 지도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금강산의 경치와 명소를 상상하는 와유(臥遊)의 목적으로 널리 그려졌다. 당시 사람들은 금강산을 직접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 작품을 머리맡에 두고 마음 편히 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②국보 '인왕제색도': 조선, 1751년, 종이에 수묵 79.2 x 138.2cm(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회장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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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인왕제색도.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선이 76세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쌓아 온 진경산수화의 대가 다운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인 대작이다. 정선은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후 개이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인왕산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하였다. 물기가 남아 있는 거대한 암벽을 진한 먹으로 중첩시키고 다른 산들은 빠른 필선으로 간략하게 표현하여 인왕산의 육중한 골격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다. 양감이 풍부한 암벽의 처리, 농묵으로 능란하게 처리된 소나무들, 걷히는 비구름 밖으로 돋보이는 굴곡이 심한 산봉우리, 생동하는 전체의 경관 등에서 완숙한 경지에 오른 정선의 필치를 그대로 엿볼 수 있다.
 

◆③보물 '풍악내산총람' 18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100.8 x 73.8 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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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풍악내산총람'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그림은 단발령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금강산의 독특한 지형적 특징을 섬세한 필치와 색채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거친 암산(岩山)은 녹색 바탕 위로 흰색이 더해져 마치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깎아지른 듯한 암봉들은 날카롭고 기묘한 형상을 띤다. 반면, 수풀이 울창한 토산(土山)은 부드러운 붓 터치와 짙푸른 색채, 길쭉한 점 형태의 나무 표현으로 생동감을 더한다. 또한 단순한 자연 경관 묘사를 넘어, 금강산의 조화로운 음양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험준한 바위산과 부드러운 흙산이 조화를 이루고, 그 사이로 자리 잡은 사찰과 암자, 형형색색의 단풍이 어우러지며 금강산의 깊은 가을 정취를 완벽하게 전달한다. 정선이 64세 무렵, 채색을 다루는 데 완숙한 경지에 오른 정선의 대표작으로 '금강전도'와 또 다른 묘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인왕제색도와 교체 후 5월7일부터 전시한다)


◆④보물 '금강내산'(해악전신첩)1747년, 비단에 수묵담채, 32.6 x 49.6 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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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금강내산(해악전신첩).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해악전신첩'은 ‘바다와 산의 정신을 담은 화첩’ 즉 금강산과 동해 바다의 초상화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711년 정선의 오랜 벗 이병연은 금강산 초입의 금화현에서 현감으로 재임하던 중 스승인 김창흡과 정선을 초청하여 함께 금강산을 여행하고 김창흡과 이병연은 시로, 정선은 그림으로,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그 감상을 표현했다. 이때의 그림과 시가 합쳐져 (전)'해악전신첩'(1712년)을 만들었다. 아울러 이 화첩은 '신묘년풍악도첩'과 함께 정선이 화단에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해악전신첩'은 소실되었는데, 겸재가 72세에 금강산을 여행하고 노대가의 솜씨로 그려낸 것이 1747년에  제작된, 동일한 명칭의  (후)'해악전신첩'이다. 이 화첩에는 21면의 그림과 78세로 생존해 있던 이병연이 쓴 시, 당대 명필인 홍봉조가 쓴 김창흡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필법은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되었고, 화면 구성은 생략과 강조가 자재롭게 구사되어 각 화면의 주제가 더욱 부각되어 정선 진경산수화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⑤보물 '사선정(해악전신첩)' 1747년, 비단에 수묵담채 32.5 x 25.1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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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사선정(해악전신첩).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선정'은 강원도 고성군의 삼일포 또는 삼일호 라고도 부르는 호수 중앙의 큰 바위섬에 건립된 정자이다. 이 섬은 신라 때 국선 4명이 이곳에 왔다가 그 경치에 홀려 3일 동안 돌아가는 것도 잊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정선은 '신묘년풍악첩'(1711년), '관동명승첩'(1738년), '해악전신첩'(1747년), '관동팔경도'(1751년경) 등에서 이 삼일호를 그렸으며, 72세에 그린 '해악전신첩'의 '사선정'은 정선의 화면 구성의 대담성, 필법의 완성도, 대상의 추상화 등이 가속화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사선도의 바위나 그 위쪽 문암봉 등의 바위를 조개껍질처럼 표현하거나, 사선정 아래 우뚝 솟은 바위는 합장하고 서 있는 사람처럼 그리는 등의 필법이 눈에 띈다.


◆⑥청풍계(장동팔경첩),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33.7 x 29.5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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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계(장동팔경첩).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장동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일대로, 정선이 태어나 평생 평생 살았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정선은 장동의 모습을 진경산수화로 정립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장동의 여러 명소를 그림으로 담아내었다. 정선이 76세경인 1756년에 제작한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의 '장동팔경첩'은  정선이 노년기에도 화법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 더욱 원숙해진 필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선은 80대 초반에 제작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장동팔경첩'도 남겼다.

청풍계는 인왕산 동쪽 기슭의 북쪽에 해당하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 52번지 일대의 골짜기를 일컫는 이름이다. 이곳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던 선원 김상용이 살던 곳이다. 김상용은 당시 세도가이자 정선의 후원자였던 장동 김씨 가문의 선조였다. 이 그림은 태고정에 초점을 맞춰 늠연당과 청풍지각 등 건물을 오른쪽으로 배치하고, 만송강과 창욱봉을 왼쪽에서 대응하게 했다. 장맛비 그친 여름날의 경치인 듯 주변의 수림과 바위들이 물기에 젖어 온통 짙푸르게 표현됐다.

◆⑦보물 '압구정(경교명승첩)' 1740~1741년 비단에 채색 20.0×31.0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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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압구정(경교명승첩).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은 1740년 65세의 나이로 양천현(현재 서울 강서구 가양동 일대) 현령(종 5품)으로 발령받았다. 이듬해인 1741년 2월에 겸재의 친구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병연이 겸재에게 편지를 보내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자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의 약속을 제안하였다. 이 약속대로 겸재가 양천현령 시절(1740–1745) 한강을 비롯하여 서울의 빼어난 경치와 다양한 고사를 그려 만든 화첩이 '경교명승첩'이다.
 
'압구정'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옛 모습으로,    강변을 따라 높은 언덕이 줄지어 있고, 주변으로 기와집,   초가집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가장 끝 언덕 위 높이 지어진 큰 기와집이 압구정으로 권신 한명회(1415-1487)가 건립한 정자이다. 압구정 앞 강 건너는 중종 때부터 독서당(젊고  총명한 관리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하게 하던 집)을 두었던 두무개이고, 그 뒤로 짙은 녹색으로 그린 산이 남산이다.    남산의 정상에는 큰 소나무가 그려져 있는데, 한국 전쟁 때 까지도 이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압구정 주변의 산 언덕은 연둣빛으로 칠하고 초록으로 덧칠해 높은 언덕의 그늘을 표현하고, 먼 산들은 군청색을 옅게 칠해 서울 주변의 산들을 그윽하게 그렸다. 다만 남산은 멀리 있지만 짙푸른 소나무 숲을 강조하기 위해 짙은 녹색으로 그려 다른 산들과 구별되게 했다.

◆⑧박생연,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98.2× 35.8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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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연.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개성 대흥산 대흥산성 밖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박연폭포이며, 박생연은 박연폭포의 다른 이름이다. 박연폭포는 돌 항아리같이 생겼는데, 너럭바위가 연못 중심에 솟구쳐 올라와 있어, 도암(島巖)이라고 한다.
 
박진사라는 사람이 이 연못 위에서 젓대를 불었더니 용녀가 그것에 감동하여 물속으로 끌어들여 남편으로 삼았기 때문에 박연이라 하며, 그 어머니가 와서 울다가 아래 연못에 떨어져 죽으니 고모담이라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박연폭포가 거대한 암석이 층층이 쌓여서 천길 벼랑을 이룬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폭포 좌우에 기암괴석이 자리잡고 있어 폭포가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데, 특히 폭포 우측에 솟구쳐 오른 암봉은 마치 독수리가 날개를 접으며 내려 앉는 박진감 넘치는 자태라서 화면에 긴장감을 주고 있다. 폭포는 바탕색을 그대로 두면서 그 위에 호분을 덧칠하여 가을 물의 흰빛을 강조해 놓았다. 폭포 아래쪽에 범사정이 있고 그곳에서 갓 쓴 선비 세 사람이 두 명의 시동을 거느리고 단풍 든 폭포를 감상하고 있다.  마치 폭포의 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실감나는 작품이다.

◆⑨보물 '여산초당' 18세기 비단에 채색 125.5 x 68.7cm(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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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여산초당.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작품은 당 나라의 시인 백거이(772-846)의 여산초당을 그린 것이다. 「여산초당기」에 묘사된 여산초당은 북쪽엔 향로봉, 동쪽엔 폭포가 있으며, 남쪽 네모난 연못에 백련이 피어있고, 개울 따라 늙은 소나무와 삼나무가 있어 그 키를 알 수 없다 했다.
 
겸재 정선은 이 글을 읽고 시정과 화흥이 넘쳐 이 그림을 그린 듯 하다. 초당에 앉은 백거이의 모습은 정선이 자주 그리던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의 모습으로 붉은 난간을 두른 초당에 앉아 백련이 핀 연못과 벌레 쪼러 거니는 단정학을 바라보고 있다. 초당 뒤편의 대나무, 주변의 소나무와 향나무, 동구의 소나무도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으로 그려 놓았다. 혹시나 백거이의 여산초당임을 잊을까 봐 동구 밖의 동자는 중국풍의 멜대를 어깨에 메고 초당으로 오르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 둥근 돌이 쌓여 있는 듯 표현하는 반두준, 와운준과 수직 절벽의 필법, 대담하고 짙푸른 수목 등이 정선 특유의 화법이라서, 그가 진경화풍을 확립해 정형산수에 응용하는 단계인 70대 중반 이후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⑩우화등선·연강임술첩서문 홍경보 27.6 x 94.6 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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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등선(연강임술첩) 사진=호암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기도 관찰사였던 홍경보(1692-1744)는 1742년 임술년에 이 화첩의 제작을 기획하였다. 임술년은 과거 북송대 지식인인 소식의 '적벽부'가 집필된 해(1082)이다. 홍경보는 동일한 임술년인 1742년에 소식의 행적을 따라 정선과 신유한(1681-1752)을 초청하여 임진강에서 뱃놀이를 하였다. 또한 그는 이 때의 행적을 기록하기 위해 정선에게는 그림을, 신유한에게는 글을 요청하였다. '연강임술첩'은 홍경보의 서문을 시작으로 정선의 두 그림과 신유한의 '의적벽부'로 완성되어 총 세 벌이 제작되었으며, 현재 두 벌 만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정선의 관직 생활과 함께 주변인들과의 교유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전시에는 겸재본, 홍경보본 두 벌을 최초로 동시에 전시한다.

우화정은 경기도 삭녕 임진강 상류에 위치한 정자이다. 이 정자는 1667년에 삭녕군수였던 이산뢰(1603-1671)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이름은 소식이 저술한 「(전)적벽부」의 ‘날개가 돋혀 신선으로 오름이라’ 이라는 구절에서 차용되었다. 이 구절은 우화정 아래의 포구에서 배에 오르는 장면이 묘사된 '우화등선' 작품명에도 응용되었다. 정선은 강에 잇닿은 절벽을 짙은 먹과 거친 부벽준으로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반면 절벽 뒤로 봉긋 솟아있는 토산은 느슨한 필치의 피마준과 미점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대조는 강에 인접한 절벽을 부각시켜 이 행사의 주된 목적인 '적벽부'의 재현을 연상하게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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