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방탄소년단 RM "지루한 부자 돼버린 걸까 죄책감…'모르지만 좋아해서' 나눕니다"

2026.09.30

10월3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서 'RM x SFMOMA' 개막

29일(현지시간) 비공개 미디어 프리뷰 리셉션 연사로 나서

RM, 수집으로 건네는 내밀한 자기소개

작업실 'rkive' 넘어 미술관에 첫 공개된 소장품 140점

韓 근현대미술 향한 애정 담아

로스코·마틴과 韓 거장의 유기적 조우

비공개 행사에도 런던 등서 몰려든 아미

현지 매체 사적 응시가 일군 문화적 파동 현지 집중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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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AP/뉴시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29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열리는 ‘RM X SFMOMA: 당신과 나 사이’ 특별 전시회 사전 공개 행사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RM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는 이번 특별전은 다음 달 3일 개막해 2월 7일까지 열린다. 2026.09.30.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한 사람이 자신이 디딘 땅을 온전히 믿지 못할 때, 예술은 발판이 아니라 차라리 그가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르는 난간이 돼주곤 한다. 세계의 가장 높은 무대 위에 서면서도 끝내 '부유(浮游)의 감각'을 떨쳐내지 못했던 한 청년에게, 그림과 조각은 그렇게 삶을 지탱하는 침묵의 기둥이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 서서 여러분께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도 저는 늘 어딘가를 표류하고 떠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그렇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시다시피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감정 때문에 미술에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이자 한 사람의 집요한 감상자, RM(32·김남준)이 마이크 앞에 섰다. 환호와 조명이 쏟아지는 스타디움이 아니라, 흰 벽과 고요한 공기가 내려앉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의 전시실 앞이었다.

소속사 빅히트 뮤직(하이브)과 미국 서부 유력 일간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San Francisco Chronicle) 등에 따르면 RM은 29일(현지시간) 오후 SFMOMA에서 열린 특별전 'RM x SFMOMA: 비트윈 유 앤 미(Between You and Me)'의 비공개 미디어 프리뷰 리셉션의 연사로 나섰다. 미술관 설립 이래 최초의 K-팝 아티스트 협업이자, 그가 수년 동안 모아온 140여 점의 개인 소장품을 공공 미술관이라는 열린 장소에 처음으로 내어놓는 자리였다.

이날 그는 완성된 권위를 과시하기보다, 여전히 자신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미완의 혼란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편을 택했다. 정돈된 문장 뒤로 숨는 대신 자신의 결핍과 망설임을 그대로 꺼내놓는 태도였다.

"공동 큐레이터로서는 오늘이 제 데뷔인데요. 긴장되네요. 우선 저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사람입니다. 아마 나중에 아시게 될 거예요. 이 연설문을 한 열 번 정도 고친 것 같아요. 그런데 늘 그렇듯 고치면 고칠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RM은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모으는 걸 좋아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명은 'rkive'다. 자신의 활동명 RM의 첫 글자 'R'에 '아카이브'(archive·파일 저장고)를 합했다. 그의 음악 작업실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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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AP/뉴시스] 29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RM의 ‘RM X SFMOMA: 당신과 나 사이’ 특별 전시회 사전 공개 행사 방문객들이 전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RM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는 이번 특별전은 다음 달 3일 개막해 2월 7일까지 열린다. 2026.09.30.
RM은 이어 예술을 소유하는 일 뒤편에 드리운 내밀한 죄책감, 그리고 그 사적인 벽을 허물어 공공의 시선 앞에 세우기까지의 윤리적 번민을 차분히 털어놓았다.

"죄책감도 느껴집니다. '내게 필요하지도 않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정말 짊어지고 살아야 하나?', '결국 그냥 지루하고 돈 좀 있는 사람이 돼버린 건가?' 뭐,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것들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오랜 시간 돈과 삶, 노력, 심지어 집의 벽까지 내어주며 만들어온 컬렉션만큼 그 사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꽤 긴 자기소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의 벽을 내어준다는 것은 결국 자기 세계의 가장 내밀한 여백을 타자의 시선과 온기에 내맡기는 일이다. 현지 유력 언론 역시 스타라는 거대한 외피를 벗고 그 취약한 고백의 자리에 선 한 개인을 포착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이날의 공기를 전하며 "평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무대 위의 퍼포머가 비공개 미디어 프리뷰에서 긴장감을 떨쳐내며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솔직한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짚었다.

현장의 열기 또한 조용한 파동을 일으켰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초청받은 언론과 관계자만 입장할 수 있는 비공개 행사였음에도, RM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한 수십 명의 방탄소년단 아미(ARMY)가 미술관 밖 거리를 메우고 줄을 섰다"며 런던에서 개막 주간을 보기 위해 날아온 열성 팬들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풍경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RM은 휴가 등 틈이 날 때마다 국내외 여러 미술관을 순례해 온 소문난 미술 애호가다. 과거 국내에선 경주엑스포대공원 솔거미술관 등을, 해외에선 뉴욕 근교 미술관 디아 비컨(Dia Beacon), 텍사스의 치나티 파운데이션·로스코 예배당·휴스턴 미술관, 워싱턴 D. C. 인근 글렌스톤 미술관 등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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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AP/뉴시스] 29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열린 방탄소년단(BTS) RM의 ‘RM X SFMOMA: 당신과 나 사이’ 특별 전시회 사전 공개 행사를 찾은 크리에이터들이 인증샷을 찍고 있다. RM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는 이번 특별전은 다음 달 3일 개막해 2월 7일까지 열린다. 2026.09.30.
이후 팬덤 아미들이 미술관을 잇따라 방문하며 각 지역의 미술관과 해당 지역 활성화에 적잖은 도움을 줬다. 혼자만의 조용한 응시가 타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문화적 파동으로 번져나간 셈이다.

RM은 카우스(KAWS)와 무라카미 다카시 등 세계적인 현대 작가들뿐만 아니라 이대원·김종학과 같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있게 모아온 '열렬한 수집가'이기도 하다. 단순히 작품을 그러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해외에 있는 한국 문화재 보존 및 복원에 써달라"며 각각 1억 원씩 총 2억 원을 기부하는 문화재 지킴이로서의 소명도 묵묵히 실천해왔다. 2022년 미국 미술 전문매체 아트넷 뉴스가 그를 '혁신가 35인'으로 선정하며 '투자자(The Investors)' 카테고리에 포함시킨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에게 예술은 감상의 취미를 넘어 삶의 태도를 벼리는 엄격한 나침반이었다. 그의 솔로 정규 1집 '인디고(Indigo)'(2022)의 첫 트랙 '윤(Yun)'은 '한국 단색화의 거목(巨木)' 윤형근 화백의 나직한 육성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그는 말했지 늘, 먼저 사람이 돼라 / 예술 할 생각 말고 놀아 느껴 희로애락"이라는 노랫말처럼, 기교나 명성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품과 인간됨을 먼저 묻던 거장의 가르침은 RM이 예술을 대하는 윤리적 밑바탕이 됐다.

이번 전시의 단초 역시 군 복무 중이던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RM은 2025년 6월 전역하기까지 복무의 시간 틈틈이 미술관과 대화를 나누며 전시를 벼렸다. "당시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는 제안이라면 어떤 것이든 반가웠을지 모른다"는 특유의 담담한 유머를 곁들이면서도, 그는 '아웃사이더'로서 마주해야 했던 치열한 노동의 순간을 회고했다.

"미술계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자유로운 것 같아요. 대신 작품 설명을 100단어 안에 맞추는 훈련은 전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죠.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순수함 때문에 수백 장의 작품 설명을 쓰고 지우고 또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언어를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정직한 문장 하나를 남기는 일. 전시는 오는 10월3일부터 내년 2월7일까지 미술관 7층에서 열린다. RM의 소장품 140여 점과 SFMOMA 소장품 36점 등 총 180여 점이 8개 섹션으로 나뉘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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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AP/뉴시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29일(현지 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열리는 ‘RM X SFMOMA: 당신과 나 사이’ 특별 전시회 사전 공개 행사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RM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는 이번 특별전은 다음 달 3일 개막해 2월 7일까지 열린다. 2026.09.30.
윤형근, 박래현, 장욱진, 권옥연, 김윤신, 도상봉 등 식민과 전쟁, 급격한 근대화의 상흔 속에서도 묵묵히 붓을 들었던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마크 로스코, 아그네스 마틴, 앙리 마티스, 조지아 오키프, 김환기, 백남준의 명작들과 한 공간에서 마주 본다. 국경과 시대를 건너뛴 작품들이 서로의 그림자를 비추며 자연, 기억, 실존이라는 인간 본연의 화두로 수렴된다. RM은 SFMOMA의 아메리카 카스티요(América Castillo), 김효은 공동 큐레이터와 함께 작품 선정과 전시 구성 등 큐레이션 전반에 직접 참여했다.

RM은 또한 큐레이션뿐만 아니라 전시장 벽면의 국·영문 해설 글을 직접 썼고, 제 목소리로 양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녹음했으며, 공간을 채울 배경음악까지 정성스레 골랐다. 이론의 무게에 짓눌리기보다 자신의 직관을 온전히 신뢰하기로 한 한 섹션에는 '아이 돈 노, 벗 아이 라이크 잇(I Don't Know, But I Like It)'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른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진정한 애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태도다.

"마찬가지로 저는 늘 스스로의 한계를 느낍니다. 때로는 제 자신이 굉장히 자랑스럽다가도 또 굉장히 부끄러워져요. 그 사이를 계속 오갑니다. 결국 저는 저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이것이 정말 나를 움직이는가?'였고, 또 하나는 '2026년 바로 지금 이 작가와 이 작품이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가?'였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소모되는 시대에 저는 과거 몇몇 예술가들의 태도가 오히려 오늘날 더 깊이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응시하고 '나 이상이 될 수 없다'는 명제를 통과한 자만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화려한 수사나 맹목적인 과시가 증발한 자리에서, 그가 붙든 것은 결국 예술가들이 삶을 대하던 '태도' 그 자체였다.

이날 질의응답에서 관람객들이 이 공간에서 무엇을 건져 올리길 바라느냐는 물음에 그는 다시 한번 담백한 진심을 건넸다.

"이 전시는 저에 대한 소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저를 조금 더 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전시가 꽤 많은 부분에서 제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느끼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전시를 보러 가는 일이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지 그냥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전부에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시작한 긴 자기소개는, 결국 소유를 덜어내고 자신을 비워 타인과 예술이 만나는 너른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로 맺어지고 있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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