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소식

프랑스 콩소르시움 50주년, 서울서 먼저 열었다…'벽'이 작품 된 전시

2026.09.16

더페이지갤러리 'Up Against the Walls!'…9팀 참여

대형 벽화·포스터·회화·조각 한자리에

7m 층고에 대형 작품 시원하게…'작은 비엔날레' 방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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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더페이지갤러리 프랑스 디종 콩소르시움 미술관 그룹전 전경. 2026.09.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그림을 걸던 벽이 작품이 됐다.

커다란 벽화 위에 다시 그림을 걸고, 포스터 수십 장이 복도를 뒤덮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조각이 벽을 타고 이어진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 있던 흰 벽이 전시장 앞으로 튀어나왔다.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에서 프랑스 디종 콩소르시움 미술관(The Consortium Museum)의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Up Against the Walls!'가 열리고 있다.

콩소르시움은 1977년 설립돼 내년 50주년을 맞는다. 이번 전시는 2027년 본격적인 50주년 프로그램에 앞서 서울에서 먼저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첫 무대로 서울을 택한 데는 한국 미술계에 대한 관심과 그동안 이어온 인연이 작용했다. 콩소르시움 측은 최근 국제 미술계에서 서울이 보여주는 역동성과 한국 미술에 주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콩소르시움 공동 디렉터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가 기획했다. 장-마리 아프리우(Jean-Marie Appriou), 존 암리더(John Armleder), 이사벨라 두크로트(Isabella Ducrot), 나탈리 뒤 파스키에(Nathalie du Pasquier), 앙헬라 페라리(Ángela Ferrari), 실비 플뢰리(Sylvie Fleury), M/M(파리)(M/M (Paris)),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비비안 장(Vivien Zhang) 등 9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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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Gallery, Up Against the Walls_Isabella Ducrot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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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Gallery, Up Against the Walls_Vivien Zhang *재판매 및 DB 금지


전시의 키워드는 제목 그대로 '벽'이다.

작품을 거는 배경에 머물던 벽을 캔버스처럼 사용한다. 벽화를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회화를 걸거나 벽 전체를 포스터와 이미지로 덮는다. 회화와 조각, 그래픽디자인이 벽을 타고 이어지며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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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Gallery, Up Against the Walls_Angela Ferrari *재판매 및 DB 금지


◆벽화 위에 다시 그림을 걸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작품보다 먼저 벽이 눈에 들어온다.

이사벨라 두크로트는 이번 전시를 위해 대형 작업 세 점을 제작했다. 종이에 콜라주와 안료, 목탄을 사용한 작품들이다. 'Terra'는 가로 5.9m, 두 점의 'Vaso'는 각각 높이 2.7m에 달한다. 가볍고 유연한 종이와 직물의 물성을 벽의 규모까지 확장하면서 평면이 공간을 점유한다.

앙헬라 페라리의 공간에서는 꽃과 식물, 새와 곤충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벽 전체로 번진다. 멀리서는 거대한 한 점의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벽화 위에 크기가 다른 회화들이 다시 걸려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대형 삼면화와 작은 회화에는 야생동물과 꽃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 사이로 벌레와 잠자리, 벌 같은 작은 생명체가 숨어 있다.

1990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하는 페라리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가는 화면을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는 벽과 캔버스의 경계까지 흐렸다.

나탈리 뒤 파스키에는 서로 마주 보는 벽을 이용했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색으로 벽을 구성하고 그 위에 별도의 회화를 배치했다.

벽은 그림을 받치는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화면이 된다. 캔버스 안에 머물던 회화가 벽을 타고 공간으로 확장되는 방식이다.

비비안 장도 전시를 위해 제작한 벽지와 회화를 결합했다. 그림 속에서 반복되던 이미지와 패턴이 캔버스 밖으로 빠져나와 전시장으로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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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더페이지갤러리, 프랑스 그래픽디자인 듀오 M/M(파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포스터 42장이 복도를 점령했다
두 전시장을 연결하는 복도도 그냥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다.

프랑스 그래픽디자인 듀오 M/M(파리)는 양쪽 벽면을 포스터로 뒤덮었다. 3열 7행으로 배치한 포스터는 양쪽 벽을 합쳐 모두 42장이다.

이미지는 서로 겹치고 이어진다. 관객은 작품 앞에 멈춰 서서 보는 대신 이미지 사이를 직접 걸어간다.

한국 전시를 위해 한글 타이포그래피도 새롭게 디자인했다. 글자와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복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그래픽 작업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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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더페이지갤러리 존 암리더 전시 공간. *재판매 및 DB 금지


 존 암리더의 공간은 또 다르다.

벽을 뒤덮은 반복적인 이미지 사이로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구조물이 걸려 있다. 대형 트럭에 쓰이는 스포일러다.

암리더는 대형 회화와 트럭 부품인 스포일러를 한 작품 안에 결합했다. 본래 자동차의 기능적인 부품이 전시장으로 들어오자 매끈한 곡면과 반짝이는 표면이 조각처럼 도드라진다.

회화와 일상적 사물, 벽과 공간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벽 역시 작품을 걸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이 만나고 중첩되는 작품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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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Gallery, Up Against the Walls_Sylvie Fleury *재판매 및 DB 금지


실비 플뢰리는 벽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았다.

반복적인 수직 줄무늬가 벽면을 가로지른다. 다니엘 뷔렌의 작업을 연상시키지만 엄격한 직선은 중간중간 곡선으로 휘어진다. 창살처럼 공간을 막아선 선 사이로 틈이 생긴다.

패션과 화장품, 자동차, 광고 등 소비문화의 이미지를 현대미술의 형식과 결합해온 플뢰리는 이번에는 모더니즘 미술의 엄격한 형식을 비틀었다. 작품을 거는 배경이었던 벽이 그 자체로 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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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ge Gallery, Up Against the Walls_Ugo Rondinonejpeg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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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Up Against the Walls_Ugo Rondinone. 영상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떠난 연인이 두 화면에서 마주 본다
화려한 벽화와 이미지가 이어지던 전시장은 우고 론디노네의 영상 앞에서 갑자기 고요해진다.

론디노네는 미국 시인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였던 존 조르노(1936~2019)를 촬영한 영상 설치 'thanx 4 nothing'을 선보인다.

조르노는 론디노네의 오랜 파트너이자 남편이었다. 196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고 앤디 워홀의 초기 영화 'Sleep'에 등장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상에는 조르노가 자신의 시 'thanx 4 nothing'을 낭독하는 모습이 담겼다. 70세 생일에 쓴 시로 자신의 삶과 사랑, 죽음과 기억을 돌아본다.

두 영상은 서로 마주 보는 벽에 설치됐다. 한쪽에서는 흰색 정장을, 맞은편에서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조르노가 같은 시를 낭독한다.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두 벽 사이를 오간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두 개의 조르노 사이에 서게 된다.

벽이 이번에는 한 사람의 기억과 시간을 마주 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콩소르시움×김승덕…1977→2027→2077
이번 전시는 콩소르시움 공동 디렉터인 김승덕과 프랑크 고트로가 기획했다.

김승덕은 프랑스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큐레이터로 콩소르시움의 국제 전시와 프로젝트를 이끌어왔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고,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장소특정적 커미션 등 국내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1977년 프랑스 디종에 설립된 콩소르시움은 당대의 실험적인 작가들을 일찍 발굴하고 장기적으로 협업하며 독자적인 역사를 만들어왔다.

1980년대에는 신디 셔먼, 리처드 프린스, 존 암리더 등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1990년대에는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마우리치오 카텔란, 우고 론디노네 등과 지속적으로 협업했다. 유명 작가를 불러 모으기보다 동시대 작가를 일찍 발견해 장기간 관계를 이어온 방식이다.

활동 무대도 미술관에 머물지 않았다.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과 2003년 제7회 리옹비엔날레,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을 비롯해 릴 유럽문화수도, 발렌시아비엔날레,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등을 기획했다. 도하 도시재생 프로젝트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장소특정적 커미션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출판과 영화도 미술관 활동의 일부다. 출판사 레 프레스 뒤 레엘(Les presses du réel)과 영화제작사 안나 샌더스 필름(Anna Sanders Films)을 함께 운영하며 전시와 컬렉션을 넘어 출판과 영화 제작까지 영역을 확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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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더페이지갤러리 콩소르시움 미술관 전시 입구.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50주년 프로젝트가 내건 시간은 '1977-2027-2077'이다. 1977년에서 출발해 설립 50주년인 2027년을 지나 다시 50년 뒤인 2077년을 바라본다.

서울 전시는 규모를 키우기보다 밀도를 높였다. 9팀의 작업을 압축해 보여주지만 답답하지 않다. 6.8m에 이르는 더페이지갤러리의 높은 층고가 한몫했다. 대형 벽화와 회화, 조각을 시원하게 펼쳤다. 두 전시장을 잇는 복도까지 포스터 작업으로 연결하면서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설치처럼 이어진다.

회화와 조각, 영상, 그래픽디자인이 공간 전체를 점유한다. 압축된 구성과 탁 트인 공간이 맞물리면서 작은 비엔날레를 보는 듯한 밀도와 개방감이 동시에 살아난다.

50년을 돌아보는 전시지만 시선은 다시 50년 뒤를 향한다.

전시는 10월3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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